1 9월 10일 프랑스 남동부 리옹에서 ‘국가 마비 운동’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2 프랑수아 바이루(왼쪽) 전 프랑스 총리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신임 총리가 10일 파리 마티뇽 총리 관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1 9월 10일 프랑스 남동부 리옹에서 ‘국가 마비 운동’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2 프랑수아 바이루(왼쪽) 전 프랑스 총리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신임 총리가 10일 파리 마티뇽 총리 관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프랑스가 연이은 내각 붕괴와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발한 대규모 시위로 시끄럽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며 긴축 예산안을 내놨다가 실각한 데 이어 정부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국가 마비 운동(Bloquons tout·모든 것을 막아라)’이 벌어지면서 전국 곳곳이 봉쇄됐다. 지난해 12월 전임 미셸 바르니에 내각이 긴축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려다 출범 3개월 만에 단명했는데 이번에 바이루 내각이 9개월 만에 다시 실각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위기를 맞게 됐다. 프랑스 하원은 9월 8일(이하 현지시각) 오후 바이루 총리의 신임을 묻는 표결에서 반대 364표, 찬성 194표의 압도적 표차로 불신임을 결정했다. 이날 투표에서 하원의 양대 축인 좌파 연합과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 모두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우파 성향인 공화당(LR)의 일부 의원도 불신임에 동참했다. 

3년 새 5번째 총리 임명

야당은 최근 2년 새 정국 혼란의 책임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있다며 좌파는 대통령 탄핵을, 극우는 조기 총선을 주장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에겐 정치적 부담이 있지만 가장 안정적인 새 총리를 임명하거나 의회를 해산할 카드가 있다. 자진 퇴진 카드도 있지만 평소 “주어진 임기를 다 채우겠다”고 말해온 터라 가능성이 크지 않다.

마크롱 대통령은 투표 이튿날인 9월 9일올해 서른아홉 살의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 장관을 후임 총리로 임명했다. 우파 성향의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이 2022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임명한 다섯 번째 총리다.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이 2022년 재임에 성공한 이후 국방 장관에 임명돼 3년 넘게 자리를 맡았던 핵심 측근이다.

바이루 전 총리는 그동안 정부의 재정 정책 방향을 두고 야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그는 지난 7월 공휴일 2일 축소, 연금 동결, 의료 예산 감축 등을 포함해 총 440억유로(약 64조원)의 지출을 줄인 2026년도 예산안을 내놨다가 여론과 야당의 반발을 샀다. 사실 프랑스의 공공 부채 문제는 심각하다. 올해 1분기 기준 누적 국가 부채는 3조3454억유로(약 5461조원)에 이른다. 지난 수십 년간 재정 적자가 계속되면서 2000년대 초반 국내총생산(GDP)의 60% 수준이던 국가 부채 비율은 현재 114%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스(153.6%), 이탈리아(135.3%)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높다. 연간 재정 적자도 2024년 1697억유로(약 268조원)로, GDP의 5.8%에 달한다. 유로존 평균 적자율(3.1%)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는 저성장과 감세로 세입은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로 지출은 계속 늘어나 재정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부 지출은 GDP의 57.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핀란드 다음으로 높다. 복지 지출 비율이 23.4%로, 핀란드(25.7%)와 스웨덴(25.0%) 다음이다. 하지만 조세 감면과 사회 부담금 감면으로 세입 구조가 악화하고 있다. 세수는 주는데 연금과 사회보장 같은 재정 지출에 대한 압박이 큰 구조다.

국가 신용 등급 하락 프랑스의 고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5월프랑스의 국가 신용 등급을 AA에서 AA-로 내렸다. 무디스도 지난해 프랑스 국가 신용 등급을 Aa2에서 Aa3로 하향했다. 10년 만기 프랑스 국채 금리는 2022년 초 1%대에서 현재 3.5%까지 올랐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프랑스에 국가 부채를 감시 시정하는 과도 적자 절차(EDP) 개시를 권고했다.

에리크 롱바르 재무 장관은 8월 26일 한 인터뷰에서 “정부가 재정 상태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할 위험이 있다”며 “2026년 예산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사람과 계속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좌파 진영은 감세안이 “부자와 대기업 증세 없이 서민만 희생시키는 방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극우 진영도 “전기 요금 인상과 의료비 부담 확대로 서민과 고령층의 생활고가 심해진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신인민전선을 이탈하면서 올해 2월 긴축 예산안 통과에 협조했던 온건 좌파 사회당마저 이번에는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우파도 공휴일 축소와 연금 동결에 반대하며 등을 돌렸다.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에서도 긴축 예산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반 시민을 중심으로 소셜미디어(SNS)에서 9월 10일에 국가를 마비시키자는 캠페인이 시작됐다. 원래는 대형 마트 불매, 대형 은행 카드 사용 금지 등 평화적 보이콧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이날 일부 극단 성향의 정치 단체가 가세하면서 일부 지역에선 시위대와 경찰이 맞붙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바이루 전 총리는 반발이 거세자 8월 25일 프랑스가 처한 재정 위기를 설명하며 본인이 직접 나서 자신의 신임투표를 요청했다. 바이루 전 총리는 표결 직전 의원들에게 “여러분은 정부를 전복시킬 힘은 있지만, 냉혹한 현실에서 도망칠 능력은 없다”며 “지출은 더 늘고, 이미 과중한 부채 부담은 더욱 무겁고 비싸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끝내 통하지 않았다.

좌우 모두 반발하는 긴축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국민연합이 프랑스 내 1위를 차지하자 이들의 세 확산을 저지하겠다며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불리했다. 중도 범여권은 의회 내 다수당 지위를 잃었고, 오히려 좌우 양 진영의 의석수만 늘려줬다. 어느 정치 세력도 절대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범여권은 좌우 양 진영이 손만 잡으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불안한 상태에 놓였다. 당시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좌파 연합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좌파 출신 인사를 총리로 지명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좌파에 정부 운영권을 넘겨줄 수 없다며 요구를 거부했다. 대신 범여권과 성향이 비슷한 공화당 출신 바르니에를 총리에 임명했다. 하지만 바르니에는 지난해 말 예산안을 두고 야당과 갈등을 빚다 출범 3개월 만에 하원의 불신임을 받아 무너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그 뒤 찾은 후임자가 자신의 오랜 우군이자 중도 진영 인사인 바이루 전 총리다. 하지만 그 역시 의회 내 야당의 협조를 얻는 데 실패한 채 더 강경한 긴축정책을 추진하다 전임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정국 혼란과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복지 확대, 세금 감면 약속을 했고, 이후 긴축은 좌우 모두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혼란 당분간 이어질 듯

야당은 당장 마크롱 대통령이 측근을 다시 총리로 임명한 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마누엘 봉파르 의원은 9월 9일 BFM TV에서 “르코르뉘를 총리로 임명한 것은 대통령이 국민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국회가 이미 두 차례나 그의 정부를 불신임했는데도 같은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LFI와 녹색당, 공산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하원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 의원은 SNS 엑스에 “대통령이 소수의 충성파와 함께 벙커에 틀어박힌 채 마크롱주의자 가운데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며 마크롱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거듭 요구했다. 

박근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