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대표는 아주 잘나가는 50대 여성 CEO(최고경영자)다. 그녀는 자기 경력 관리도 잘해 왔을 뿐 아니라 교수인 남편을 잘 챙기고, 자녀 둘을 해외 명문대에 입학시킨 소위 ‘육각형 인재’다. 그녀는 3개월 전, 우연히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처음 의사에게서 ‘유방암이 의심된다‘라는 말을 듣고 그녀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그 후 수술이 잘됐고 재발을 막기 위한 약물도 복용하고 있지만, 숨 막히는 죽음의 공포는 그녀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유방암은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암이다. 1999년 10만 명당 11.0명이던 발생률은 2022년 56.5명으로 20년 새 5배나 증가했다. 증가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동안 흔한 암이던 갑상샘암을 제치고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이 됐다. 인구 고령화, 비만의 증가, 서구식 식생활, 결혼과 출산 나이 증가, 늦추어진 폐경 나이와 관련이 깊다.유방암은 초기에 전이가 잘되고 예후가 나쁘다고 알려져 있다. 상당수 환자가 A 대표처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유방암 환자 50%가 우울증을, 40%가 불안증을 앓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 유방암을 잘 몰라서 비롯되는 일이다.

유방암 완치율이 높은 이유는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통해 증상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유방 촬영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50대 말부터 유방암이 증가하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40대 말, 50대 초에 많이 발견된다. 대개 이 나이의 한국 여성은 유방 촬영에 적극적이고 이 과정에서 치밀유방(유방 내에 지방조직보다 유선 조직의 비율이 높은 상태)으로 판독되면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받는다. 이렇게 암 조기 발견에 힘쓴 덕분에 세계적으로도 월등히 높은 완치율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최근 유방암의 분자아형 정밀 검사가 발전해 치료를 세부화하고 분자아형별로 적절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게 되면서 최선의 결과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비만은 여성호르몬을 증가시켜 유방암 발생과 재발 우려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과식과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며, 음주와 흡연을 중단하면 암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특히 하루 30분 이상 걷기, 조깅, 수영 같은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하면 유방암 재발을 50%나 줄일 수 있다.
유방암은 이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병이 아니지만 여전히 그 공포는 환자를 사로잡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2018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유방암 환자는 높은 코르티솔(스트레스에 반응해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수치를 보였고, 이런 환자는 유방암 재발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나친 걱정이 오히려 유방암 재발을 증가시킨다는 뜻이다. 정확히 병을 알고 공포를 희망으로 대치하는 것이 유방암을 완치로 이끄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