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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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 중이던 일본 상선과 조우가 나의 첫 상선 경험이다. 일본 상선은 고향 축산항 모래사장 앞 바닷가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그 배는 인근에서 나는 석영을 싣고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국제 해운을 체험한 셈이었다. 작은 어촌에서 해운이라는 진귀한 경험을 한 나는 행운아였다.

항구에서 물이 솟구치는 장면을 몇 번 본 적 있다. 조선소에서 배를 내릴 때 와이어를 풀면 선박이 빠른 속도로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생기는 광경이다. 작은 어촌이지만 고향에는 어선을 위한 슬립웨이(slipway·선박을 넣고 빼는 경사진 길)가 두 곳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어선에 페인트칠하는 일을 맡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어선용 조선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정작 선박 제작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은 이웃인 목수의 집에서였다. 학교를 오가며 하루가 다르게 나룻배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았는데, 특히 용골(龍骨·배의 중심축)을 설치하는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나룻배가 완성되면 동네 장정 스무 명이 모여 배를 들어 50m쯤 떨어진 백사장으로 옮겼다. 그렇게 진수가 이뤄졌다. 현대의 선박 건조와는 다르지만, 원시적인 건조 과정을 어촌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역시 나는 행운아였다.

김인현 -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한국해양대에 입학하면서 해운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그럼에도 1학년 때는 ‘선박의 설계’라는 과목을 배웠고, 3학년 때는 ‘조선학 개론’을 수강했다. 조선과 해운을 함께 배우며 두 분야와 인연을 이어간 것이다. K 교수님은 한국해양대 조선학과 1기 졸업생이었다. 해양대에는 항해학과와 기관학과 두 과만 있었지만,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1기에서 3기까지는 조선학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서울대 조선공학과로 이전됐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선각자들은 해운과 조선을 한 묶음으로 보았다. 해운을 위해서는 선박이 필요했기에 해양대 학생이 조선을 익히는 것은 당연했다.

선장으로 근무하면서 조선소가 만든 배를 운항했다. 도면과 항해 장비 설명서 역시 모두 조선소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조선소가 지은 선박을 조종하는 선장에게 해운과 조선은 그야말로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그러나 선장을 그만두고 육지로 올라와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며 해상법을 강의하게 되자, 해운과 조선이 서로 다른 영역으로 분리돼 있음을 알게 됐다. 그 원인은 우리나라 조선업이 수출 주도형이라는 데 있었다. 국내 수요는 5~10%에 불과했고, 90% 이상은 외국 선주가 발주한 선박을 건조해 수출하는 구조였다. 결국 외국 선주의 발주가 우리 조선업의 성패를 좌우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조선소는 우리 해운과 연관성이 점차 약해졌다. 해운인과 조선인의 접촉도 멀어져 갔다. 그 결과, 조선업은 수출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 됐고, 해운업은 바다 업무를 맡는 해양수산부 소관으로 나뉘게 됐다. 반면 일본은 자국 선주의 선박을 50% 이상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기 때문에, 해운과 조선을 국토교통성이 함께 맡고 있다.

선박은 무엇보다 안전하게 건조돼야 한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안전 기준을 마련하면, 한국에선 해양수산부가 맡는다. 앞으로 북극 항로를 개척하려면 얼음을 깨고 항해할 선박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수출입 업무가 아니라 안전 문제이며, 혹한의 바다를 견딜 수 있는 선박이 핵심이다. 따라서 해운과 조선이 머리를 맞대야 할 필요성은 크다. 북극 항로 개척과 관련해 해운과 조선을 모두 해양수산부로 일원화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선박 건조법 연구를 시작했고, 이를 해상법의 일부로 승화시켰다. 또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를 13년간 이끌었으며, 대형 조선소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다. 나에게 해운과 조선은 언제나 한 몸이었다. 조선이 없으면 해운이 없고, 해운이 없으면 조선도 없다. 유년 시절부터 해운과 조선을 함께 경험한 나는 행운아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