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글로벌 안보 환경이 급변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방산·항공 조달 시장은 규모뿐 아니라 속도 면에서도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각국 정부는 납기 단축과 생산능력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기존 조달 절차와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마크 뤼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우리는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경고를 거듭하며, 동맹국 전체가 생산 속도와 운영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폴크스바겐, 포르쉐 등 전통적인 제조업 기업까지 방산 분야 진출을 모색하며, 생산 설비와 기술을 전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시장과 정책 환경이 모두 ‘속도’와 ‘효율’을 향해 압축적으로 움직이는 지금, 방산·항공 산업이 직면한 필수 과제는 운영 혁신이다. 기존의 단계별 승인 절차나 부서 중심 분업 체계로는 단축된 납기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운영 혁신은 업무 프로세스를 원점에서 재설계해 불필요한 절차를 제거하고, 핵심 인력을 가장 가치 있는 활동에 재배치하며,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 의사 결정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업무 구조를 원점에서 재설계, ‘바쁜데 느린’ 조직을 바꾼다
베인앤드컴퍼니 조사에 따르면, 항공·방산 엔지니어는 근무시간 절반만 본연의 엔지니어링 업무에 쓰고, 40%는 보고·승인·회의 등 낮은 가치의 활동에 소모한다. 나머지 10%는 부서 간 대기, 자료 검색 등 기타 업무다. 이 구조적 비효율은 제품 개발 주기를 길게 하고, 개발 비용을 높이며, 납품 지연과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방법론이 제로베이스 재설계(ZBR)다. ZBR은 기존 절차의 개선을 넘어, 필요한 활동 자체를 다시 정의하고, 불필요한 절차와 중복 공정을 제거하며, 가능한 모든 업무를 표준화·자동화한다. 예를 들어, 한 글로벌 방산 대기업은 사업 개발 조직에서 제안서 작성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과거에는 프로젝트마다 제안서를 처음부터 새로 작성했다. 그러나 프로세스 개편을 통해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표준 양식과 과거 사례를 축적해 두고, 필요한 부분만 수정·갱신하도록 했다. 이 변화로 제안서 제출 주기가 절반 이하로 단축됐고, 영업 인력의 고객 대면 시간은 20% 이상 늘었다. 또 다른 항공기 제조사는 지역과 사업부에 분산된 고객 데이터를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에 통합했다. 과거에는 동일 고객을 여러 부서가 중복 접촉하거나, 협상에 필요한 과거 계약 데이터가 누락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고객 데이터를 체계화하고 중앙화한 이후 한 화면에서 고객 이력과 기술 사양, 가격 조건을 즉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협상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계약 성사율까지 끌어올렸다.
인재 재배치는 미래지향적으로
운영 혁신의 두 번째 축은 인재 포트폴리오 재배치다. 많은 방산·항공 기업이 고숙련 엔지니어를 안정화된 성숙 프로그램에 남겨둔다. 그러나 이는 장기 성장에 역행한다. 인재는 자본처럼 수익이 가장 큰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한 글로벌 방산 대기업은 프로그램별 엔지니어링 지원 수준을 정기적으로 검토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사업에서 상위 10% 엔지니어를 신규 개발 프로젝트로 재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생긴 공백은 숙련도가 낮은 인력을 단기 집중 교육해 메웠다. 업계에서는 이를 업스킬-백필(Up-skill & Backfill) 전략이라 부른다. 이런 재배치는 공급망 위기에도 효과적이다. 한 항공기 제작사는 특정 부품 병목이 발생하자 설계·조달·품질 전문가를 하나의 다기능 팀으로 묶었다. 설계 변경과 승인 절차를 현장에서 즉시 처리하게 했다. 보고 단계를 줄이고 권한을 현장에 위임하자, 리드타임이 크게 단축됐다. 외부 인력 수급 상황은 이런 전략의 필요성을 더 부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대형 민항기 생산량은 예측 대비 보잉 43%, 에어버스가 49% 늘었지만, 부품· 엔진·전자 장비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병목을 줄이려면 설계·조달·품질 관리를 한 흐름으로 묶는 조직 운영이 필수적이다.
인재 몰입도를 성과로 연결: 영감을 받은 직원의 힘
운영 혁신의 세 번째 축은 인재 몰입도다. 베인앤드컴퍼니 분석에 따르면, ‘동기 부여가 된(inspired)’ 직원은 ‘만족하는(satisfied)’ 직원보다 두 배, ‘불만족하는(dissatisfied)’ 직원보다 세 배 더 생산적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의 직원은 8분의 1에 불과하다. 보잉의 ‘리더십 프로그램(Accelerated Leadership Program)’은 몰입도 강화와 인재 확보를 동시에 달성한 모범 사례다. 공대 2학년생을 파트타임으로 채용해 실무 경험을 제공하고, 성과 우수자에게 장학금과 정규직 기회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숙련 인력 부족을 완화하면서도 장기 헌신 가능성이 큰 인재 풀을 조기에 확보한다. 다른 방산 대기업은 불필요한 보고 절차와 중복 검토를 줄이고, 엔지니어와 생산직의 의사 결정 권한을 현장에 위임했다. 이로 인해 자율성과 책임감이 높아졌고, 이직률이 감소했으며, 생산성이 향상됐다. 미국의 한 항공기 엔진 제조사는 지역 대학과 기술학교와 협력해 맞춤형 견습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재학 중에도 현장 경험을 쌓게 해 졸업 직후 바로 투입 가능한 인재 풀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와 관계를 강화해 채용 경쟁력을 높였다.
기술혁신과 결합한 운영 혁신의 시너지
운영 혁신이 조직과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내부 변화라면, 기술혁신은 이를 가속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최근 방산·항공 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실제 건축물이나 공장과 동일한 디지털 모델), 예측 분석, 고급 시뮬레이션 등 첨단 기술이 운영 혁신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숙련 인력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던 의사 결정이, 이제는 실시간 데이터와 알고리즘 분석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업무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오류와 재작업을 줄여 전체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AI 기반 예측 정비 시스템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기술은 항공기나 무기 체계에 장착된 센서를 통해 수집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부품 고장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한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정비 일정을 줄이고, 계획되지 않은 장비 가동 중단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투기 부품의 교체 시점을 ‘고장 난 후’가 아니라 ‘고장 나기 직전’으로 정확히 맞추면, 유지· 보수 인력과 예비 부품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 역시 운영 혁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실제 무기 체계나 항공기를 가상 환경에 그대로 재현해, 설계 변경이나 업그레이드가 실제 운용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물리적 시제품 제작과 시험 절차를 크게 단축할 수 있으며, 개발 과정에서 위험을 최소화한다. 더 나아가, 데이터 분석 플랫폼과 통합되면 수십 개 부서에 흩어진 기술·운영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협업과 의사 결정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인다. 이러한 기술 도입은 단순히 ‘첨단 장비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 혁신이 지향하는 ‘절반의 시간을 되찾는’ 목표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최근 K-방산이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수출 실적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K-방산 기업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지정학 환경과 고객 요구에 발맞춘 운영 혁신이 필수적이다. 프로세스를 원점에서 재설계하고, 인재를 가장 필요한 곳에 재배치하며, 조직 구성원 모두가 사명과 목표에 몰입하는 체계를 갖춘 기업만이 절반의 시간을 되찾고, 생산성을 두세 배 높이며, 세계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