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중 회장이 이끌던 시절 대우그룹과 관련해 이런 유머가 돌았다. 경기고와 연세대를 나온 직원은 ‘광어’이고,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직원은 ‘도다리’, 그 밖의 학교를 나온 사람은 ‘잡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뼈가 있는 유머다. 김우중 회장이 경기고와 연세대를 나왔기 때문에 퍼진 말이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사내 파벌이 생기면 결국 조직이 병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본 기업 흥망사를 연구해서 얻은 교훈이다. “삼성이 무너진다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파벌 때문일 것이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삼성은 순환 보직과 성과주의 인사를 중시하고 교육을 통해 출신 배경과 관계없이 ‘삼성맨’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끌어냈다. 그룹 비서실을 통해 사내 파벌이 형성되는지를 살피고 조금이라도 조짐이 보이면 초기에 싹을 잘라냈다.
기업의 힘은 인재에서 나오고, 인재가 힘을 합쳐 협업할 때 비로소 성과가 창출된다. 그러나 협업은 종종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다. 그동안 흔히 국내 학연과 지연을 배경으로 한 파벌이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최근에는 해외 특정 대학 출신 파벌이 기업 내 협업을 해치는 새로운 장벽으로 부상했다.
미국의 시카고대, 조지워싱턴대, 위스콘신대, 미시간대 등은 한국의 대기업 오너 일가나 2세 경영인이 다녀온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총수의 학맥(學脈)이 곧 권력의 학맥으로 확대되면서 같은 대학 출신이 요직을 독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시카고 스쿨’이나 ‘위스콘신 라인’ 같은 별칭이 붙을 정도로 해외 학맥은 은밀하면서도강력한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특정 학연에 기반한 파벌은 조직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인사의 불공정이다. 능력보다 인맥이 앞서면 유능한 인재는 의욕을 잃는다. 둘째, 불신이 확산한다. 파벌 밖에 있는 인재는 내가 도움을 줘도 성과는 저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여기게 돼 협업을 기피한다. 셋째, 사일로(silo·부서 이기주의)의 고착화다. 각 집단은 자기 이익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게 되고 조직 전체의 시너지는 무시하게 된다.
특정 해외 학맥이 부각되면 겉으로는 글로벌 경영을 위한 인재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협업의 다양성을 해치는 폐쇄적 집단이 되기 쉽다. 해외 학맥이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될 경우에는 오히려 기업 내부의 견제 장치는 약화하고 권력 독점이 심화하기도 한다.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폐단과 부작용을 파악하고 이를 막아야 한다. 본인부터 솔선수범해 조직 구성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협업의 핵심은 다양성과 공정성이다. 그러나 해외 대학 출신이 파벌을 형성하면 다양성을 억누르고 공정성을 흔든다. 특히 특정 학맥이 그룹의 의사 결정을 장악하면 위기 상황에서 잘못된 판단이 견제 없이 관철될 위험성도 커진다. 결국 글로벌 학맥 파벌은 협업의 촉진자가 아니라 협업의 장벽이 되는 셈이다.

기업이 진정한 협업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출신 배경이 아니라 실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 학맥은 경험의 한 부분일 뿐 협업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해외 학맥이 권력으로 변질될 때 협업은 무너지고 기업은 내부 다양성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해외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도 많아지고 기업이 글로벌화하면서 조직에 유학파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조직에서 국내 대학을 나온 사람과 서로 배려하며 협업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국내파와 해외파 사이에 장벽이 생기면 이 또한 협업의 장애 요인이 된다. 해외 유학파는 글로벌 인맥과도 협업해 조직에 기여할 수 있게 잘 관리해야 한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많다고 인재 기업이 아니다. 성과가 나오려면 이들이 개인주의나 파벌을 벗어나 협업할 수 있도록 인사관리를 잘해야 한다.
과거에는 광어·도다리가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잡어 인기가 치솟고 있다. 광어·도다리는 양식이 많지만, 잡어는 자연산이기 때문이다. 역시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사내 파벌을 막고 다양성을 살려야 협업이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