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시사경제용어사전에 ‘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라는 단어가 나온다.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수록 성과에 대한 1인당 공헌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1913년 프랑스 농공학자 막시밀리앙 링겔만(Maximilien Ringelmann)이 줄다리기 실험으로 입증한 현상이다. 줄다리기하는 사람이 많으면 힘을 다 쓰지 않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개미는 다르다. 인간처럼 사회를 이루고살지만, 줄다리기에 무임승차하는 구성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집단이 커지면 개인의 책임감이 분산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 심리가 생기지만, 개미는 집단에서 각자고유한 역할에 충실하므로 집단을 이루면 집단은 물론, 개체의 힘도 강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잎 말아 집 지을 때 초능력 발휘
크리스 리드(Chris Reid) 호주 맥쿼리대 교수 연구진은 “인간은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개인 기여도가 줄지만 베짜기개미(weav-er ant)는 집단이 커질수록 개체의 힘이 증가한다”고 8월 13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베짜기개미는 아프리카 열대 지역에서 남태평양 여러 섬에 이르기까지 퍼져 있다. 나무에 사는 이 개미는 잎을 말고 끝부분을 애벌레가 뿜은 실로 붙여 집을 만든다. 자기보다 훨씬 큰 잎을 둥글게 말려면 여러 개미가협동해야 한다. 리드 교수는 베짜기개미는 무리 안에서 일할 때, 혼자 하는 것보다 잎을 훨씬 더 강하게 당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진은 호주 동북부에서 최대 5000마리가 있는 아시아 베짜기개미(Oecophylla smaragdina·베짜기개미 품종 중 하나) 군집 6개를 채집했다. 연구진은 개미 군집에 잎 모양의 종이를 줬는데, 이 종이에 힘 측정 장치를 연결한 철사를 붙여 개미가 당기는 힘을 측정했다. 개미는 자연에서처럼 잎 모양 종이를 말기 시작했고, 이때 종이에 가해진 힘은 개미 몸무게의 약 60배에 달했다. 그런데 개미가 집단으로 작업을 시작하자, 각 개미는 몸무게의 103배에 달하는 힘을 발휘했다. 뭉치니 슈퍼 개미가 된 것이다.
개미와 달리 인간 사회는 그렇지 않다. 링겔만은 줄다리기 실험을 통해 규모가 큰 집단일수록 사람은 일을 덜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온 줄다리기를 생각하면 된다. 줄을 당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당연히 힘의 총량은 커지지만, 그 안에서 힘을 다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힘에 무임승차하는 사람도 나온다.
개미는 링겔만 효과의 예외로 알려졌다. 열대 밀림에서 먹이를 운반하는 군대 개미는 함께 일할 때 개체당 더 많은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바로 ‘초효율성(superefficiency)’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다만 앞선 연구는 개미의 집단적 힘을 측정한 것이지 이번처럼 개별 개미의 힘을 측정하지는 못했다.

각자 역할에 충실해 초효율성 보여
링겔만 효과는 집단에서 동기부여나 역할 조정을 제대로 못 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개미는 무리 지어 힘을 낼 때도 집단을 위해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논문의 공동 저자인 데이비드 래본트(David Labonte)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교수는 개미가 잎을 말 때, 서로 몸을 연결해 사슬 모양 구조를 만드는데, 이 구조는 한쪽으로 돌아가는 톱니바퀴(rachet)처럼 작동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여러 개미가 각자 역할에 맞는 당기기 동작과 발놀림을 하는 덕분에 개미 사슬(ant chain)이 톱니바퀴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먼저 한 마리의 개미가 잎의 가장자리를 잡고, 다리를 구부려 잎을 강하게 당기며 잎 말기가 시작되고, 두 번째 개미는 첫 개미 허리 부위를 잡고 다리를 펴 땅에 밀착한다. 이때 두 번째 개미의 발바닥에서는 접착 물질이 나오는데, 이 덕분에 개미의 다리는 단단하게 땅에 붙을 수 있다. 앞쪽의 첫 개미는 미끄러지지 않고 힘을 더 낼 수 있게 된다. 발바닥 접착 물질이 톱니바퀴를 고정하는 앵커(anchor·닻)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 세 번째, 네 번째 개미가 사슬 뒤쪽에 합류하면서 계속 앵커처럼 고정 자세를 만들면 앞의 두 개미만 일했을 때보다 더 강한 힘을 내는 시스템이다. 연구진은 “바닥에 착 달라붙는 개미 발바닥과 역할에 맞추는 다리 움직임이 개미 집단의 효율성을 향상한다”며 “이번 발견은 협동하는 로봇 무리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개미 모방하면 로봇의 협동 이끌 수도
로봇도 개미처럼 뭉치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그룹) 로봇 부문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0년 사족보행 로봇 스폿(Spot) 10개가 양쪽으로 줄지어 대형 화물차를 끄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 로봇이 링겔만 효과를 극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과학자는 이들이 개미의 작업을 모방했을 경우 링겔만 효과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미국 하버드대 위스연구소 연구진은 2014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단순한 작동 원리만 줘도 여러 로봇이 흰개미처럼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흰개미는 흙을 들고 가다, 흙을 놓아야 할 곳에 흙이 차 있으면 바로 옆으로 가서 빈 곳에 흙을 내려놓는 식의 단순 행동을 한다. 이런 단순 행동을 하는 흰개미도 수십만~수백만 마리가 모이면 높이 2.4m에 이르는 튼튼한 집을 거뜬히 만들어낸다. 하버드대 위스연구소 연구진은 흰개미처럼 분산형 지능으로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협동 로봇 ‘킬로봇(Ki-lobots)’을 개발했다.
위정재 한양대 교수는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디바이스(Device)’에 개미처럼 협동하는 마이크로 군집 로봇을 발표했다. 로봇은 각각 가로·세로 30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높이 600㎛인 직육면체 모양이다. 자석처럼 자성이 있어 서로 달라붙을 수 있다.
이 군집 로봇은 단일 로봇으로 하기 어렵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했다. 군집 로봇은 로봇 한 대보다 350배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옮겼는데, 개미처럼 땅이나 물 상관없이 장애물을 극복하기도 했다. 길에서 장애물을 밀어 넘어뜨리거나 로봇 키보다 5배 높은 장애물을 뛰어넘는 임무도 성공했다. 로봇 1000대가 뭉쳐 개별 로봇보다 2000배 무거운 알약을 감싸고 뗏목처럼 운반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로봇이 빌딩을 짓는 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