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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의료 기기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출범한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이하 사업단) 1기 사업이 올 연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조선비즈는 최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 있는 사업단 회의실에서 김법민 사업단 단장과 이진우 대한의학회(이하 의학회) 회장, 사업단 10대 대표 과제로 선정돼 지원받은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 강동화 뉴냅스 대표, 투자사인 이승우 데브시스터즈벤처스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사업 성과와 향후 방향에 관한 생각을 들었다. 참석자들은 K-의료 기기 확산을 위한 기업 성장 정책과 활용 확대를 주문했다. 내년부터 2기 사업이 시작된다. 다음은 일문일답.

1기 사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이하 이진우) “지금까지는 정부가 연구비만 지원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업단은 의료 기기 개발부터 인허가, 활용까지 과정에서 기업이 겪을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의학회로서도 현재 개발하는 의료 기기가 기술 중심으로 가지 않고 현장에서 잘 사용될 수 있도록 협력할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이승우 데브시스터즈벤처스 이사(이하 이승우) “벤처는 많지만, 임상 인허가나 시장 진입 경험이 매우 부족했다. 사실 제품 개발보다 임상적인 인사이트를 얻고, 인허가를 풀어내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 부분을 많이 해결해 줬다. 지금은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기술성 평가를 하다 보면 거의 절반 정도가 의료 기기를 하고 있다. 좋은 투자처를 많이 공급해 준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김법민 사업단 단장(이하 김법민) “기존에 의료 기기 연구개발(R&D)을 지원하던 기관이 하지 않던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의료 기기에 맞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했다. 각각의 애로에 대해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서 기업과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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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다른 사업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강동화 뉴냅스 대표(이하 강동화) “R&D 사업 비용을 지원하면 아무래도 평가가 잦아지고, 결국 본질을 흐리는 일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 사업은 자율성이 매우 높고 딱 필요한 것만 하게 했다. 의료 기기는 부처마다 허들이 있다. 어느 한 곳이 허가해도 다른 부처가반대하면 허가 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단이 정부 주요 관계자를 모아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이하 이재성) “우리 회사는 처음으로 두경부 촬영용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장비를 만들어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의료 기기는 개발부터 인허가까지 호흡이 길다. 한국은 3년 미만 지원이 대부분이다. 이 사업처럼 장기적으로 전 주기적으로 지원해 주는 예는 없었다.” 

회사와 주변에 어떤 변화가 있나.

강동화 “평소 의료진은 현장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내가 좀 해결해 볼까’ 하는 마음도 많다. 사업단이 생긴 뒤 주변 의사의 창업이 많이 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10대 과제에 선정되면서 아이돌 경연에서 뽑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재성 “회사 내 동기 부여에 큰 도움이 됐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되는 벤처이기 때문에 창업자는 사업 중요성이라든지 기술력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도 있다. 또 투자자에게도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국산 의료 기기 사용을 확대하려면.

이진우 “진취적인 의사는 써보고 효과가 없으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당하는 거 아니냐는 사고를 하고 있다. 반면 일부 의사는 치료 기기가 남용되면서 세금을 낭비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견해다. 의료계와 대화하면서 인식의 영역을 넓혀주는 노력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국내 병원을 플랫폼으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삼성도 한때 삼성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기기 개발을 추진한 일이 있다. 의료 기기는 병원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한국 의료 기기 산업의 숙제는 뭔가.

이진우 “국내 병원에 들어가는 주요 장비 중 대형 장비는 아직 국산이 없다. 시장 자체가 작아 메이저 장비를 위한 생태계 구성이 잘 안 되고 있다.”

김법민 “큰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지금 노하우가 축적된 것이 많이 없어서 기초연구는 많이 돼 있지만, 사업화에 대한 노하우는 부족하다. 과거 자기공명영상(MRI)을 개발하다 실패한 경험도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대형 의료 기기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과 관련이 많은데, 국내에 노하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승우 “글로벌 의료 기기 회사도 성장 곡선을 보면 매출 성장이 급격히 일어난 경우가 많지는 않다. 정부가 꾸준하게 밀어줄 필요가 있다. 한국은 사실 제조 분야에서 명성이있는 나라다. 의료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고민이다.” 

중국 의료 기기 산업에서 얻는 교훈은.  

김법민 “한국에 수술 로봇을 만드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은 스무 곳이 넘는다. 성마다 하나씩 있는 셈인데, 완성도는 다소 떨어져 보여도 매년 발전 속도가 남다르다. 중국 병원이 열심히 써준다. 중국엔 ‘선행선시’라는 말이 있다. 쓰면 좋아지니 일단 쓰자는 뜻이다.” 

이재성 “중국은 우리처럼 컴퓨터단층촬영(CT)나 MRI 장비를 병원이 사지 않고 정부가 구매해서 보내는 구조다. 정부가 중국산의료 기기를 사서 뿌리는 방식이다. 당연히 회사가 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향후 2기 사업에 거는 기대는. 

김법민 “중국과 경쟁에서 이젠 품질을 따라가기 어렵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틈새시장도 그만큼 많다. 특정 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인다면 큰 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히든 챔피언을 발굴해야 한다.”

이진우 “보완하거나 육성할 부분이 스토리텔링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파킨슨 환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손 떨림을 동기화해 떨림 없이 글씨를 쓸 수 있는 펜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 방식은 일반인은 물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설득하는 데 훨씬 도움 될 것 같다. 창업도 중요하지만 기존 회사를 ‘스케일업(규모 확대)’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승우 “사업단이 국산 의료 기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엮어준다면, 한국 의사도 국산 의료 기기를 얼마든지 사용할 것으로 본다. 한국의 의료 기기 산업을 대변하는 K-뷰티와 K-덴탈도 해외 제품을 쓰다가 한국 제품을 쓰는 사례다.” 

박근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