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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만 해도, 국내 의료계에서 ‘디지털 치료제’라는 단어는 생소했다. 약도, 수술도 아닌 소프트웨어로 환자를 치료한다는 개념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신경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를 만나던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새로운 길을 걷기로 했다. 손상된 뇌를 훈련해 회복을 유도하는 방식의 디지털 치료법, ‘뇌가 먹는 약’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강 교수가 2017년 설립한 뉴냅스는 뇌졸중 후유증인 시야 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비비드브레인’을 개발했다. 뇌졸중 후유증인 시야 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상용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비드브레인은 2019년 국내 최초로 디지털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국산 디지털 치료제 가운데 세 번째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다음은 강 대표와 일문일답.

뇌졸중 후유증인 시야 장애에 주목한 이유는.

“뇌졸중 환자의 약 20%는 시야 장애를 겪지만, 그동안 마비나 언어장애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시야 장애는 눈이 아닌 뇌의 문제다. 시각 정보가 후두엽에서 처리되는데, 이 경로 중 하나만 손상돼도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문제는 시야 장애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이 거의 없어, 환자 대부분은 자연 회복을 기대하거나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비드브레인은 어떻게 작동하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환자의 시야 결손 영역을 분석한 뒤, 가상현실(VR) 환경에서 맞춤형 훈련을 제공한다. VR 헤드셋을 쓰고 시각 과제나 패턴 인식, 방향 구분 훈련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 뇌에서 무의식적 학습이 일어난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반복해서 떡을 써는 훈련을 통해 어둠속에서도 가지런히 썰게 됐듯 시지각 학습은 반복 훈련을 통해 뇌의 시각 기능 회복을 돕는다.”

게임처럼 보이는데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환자 1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1~2차 유효성 평가 기준을 충족했다. 일부 환자는 보행시 부딪히는 일이 줄었고, 일부는 완치 수준의 호전을 보였다. 최소치료환자수(NNT·1명이 치료 효과를 보기까지 필요한 환자 수)는 4로, 뇌졸중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아스피린 처방의 NNT가 140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다. 디지털 치료제 중 이 정도 수치를 기록한 건 이례적이다.”

국내시장을 넘어 유럽 시장도 넘보고 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을 중심으로 전국 20여 개 병원과 협업하고 있다. 향후 지방 뇌졸중 센터로 확산도 준비 중이다. 독일의 CE 인증을 획득했고, 이르면 내년부터 유럽 시장에 진입할 예정이다. 독일은 제도적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자리 잡은 대표 국가다. 현지화 장벽도 높지 않고 관련 인프라와 보험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첫 해외 진출 목표로 적합하다. 일본, 중동, 동남아시아 시장도 차례로 진출을 타진 중이다.”

정부 어떤 지원이 도움이 됐나.

“품목 허가 이후 상용화 과정에서 규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지만,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지원을 받고 2025년 10대 대표 과제로 선정된 이후 관계 기관과 협력이 원활해지고 규제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효율적으로 논의할 수 있었다. 또 전문 자문단을 통해 임상 데이터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시장 확장 전략까지 조언받았다.” 

홍아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