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부터 21일까지 인천 청라 베어즈베스트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총상금 15억원, 우승 상금 2억7000만원). 세계 랭킹 3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합계 8오버파 296타, 공동 44위로 대회를 마쳤다. 메인 스폰서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우승을 노렸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미소와 함께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판도와 자기 생각을 담백하게 풀어냈다. “스코어는 좋지 않았지만, 한국 팬과 함께한 순간 자체가 행복했다. 팬의 목소리와 응원은 내게 큰 힘이 됐다. 성적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걸 다시 느꼈다.”
리디아 고는 최근 투어에서 나온 극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9월 15일(현지시각) 세계 1위 지노 티띠꾼(태국)이 마지막 홀에서 4퍼트를 하며 우승을 놓쳤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는 벤 그리핀이 3퍼트로 연장을 날렸다. 믿기 힘든 장면이지만, 골프는 그런 스포츠다. 순간의 실수로 좌절할 수 있지만, 그 한 번이 커리어 전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는 잠시 웃으며 “나도 3퍼트로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 그때의 허탈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골프다. 그래서 간절하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스포츠다”라고 했다.
골프가 다른 종목과 다른 점도 짚었다. “야구나 축구는 경기 흐름 중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골프는 모든 샷이 기록으로 남는다. 한 번의 미스가 그대로 점수에 반영된다.
그만큼 냉혹하지만, 동시에 다시 기회를 주는 순간도 온다.”
올해 LPGA투어에서는 아직 다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리디아 고는 이를 “투어가 훨씬 치열해진 증거”라고 분석했다. “2014년 내가 루키로 뛸 때는 서너 명의 선수가 압도적으로 여러 차례 우승했다. 나도 톱 10에 자주 들었고, 시즌 내내 몇 번은 우승 경쟁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국적도 다양하고, 새로운 이름이 계속 리더보드에 오른다. 이제는 우승 한 번 자체가 훨씬 힘들어졌다.”
그는 일본에서 이미 6~7승을 거두고 LPGA로 건너오는 루키를 예로 들며 “루키라고 해도 예전의 루키가 아니다. 실력과 경험을 갖추고 들어오기 때문에 어느 순간 누구든 우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에 넬리 코르다(미국)가 세 번 우승했지만, 요즘은 그런 다승 기록조차 보기 드물다. 매주 다른 선수가 우승 경쟁에 뛰어든다. 루키도, 베테랑도 예외가 아니다. 매 라운드 방심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리디아 고는 골프 본질을 ‘골프의 신’이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OB(아웃오브바운즈)가 난 줄 알았던 공이 페어웨이로 돌아온 순간도 있었다. 김세영 프로가 박인비 프로를 꺾은 롯데 챔피언십 샷 이글 장면도 기억난다. 설명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결국 우승은 골프의 신이 점지하는 것 같다.”
그는 올해 극적인 에비앙 챔피언십을 현장에서 지켜본 경험도 떠올렸다. “그레이스 김이 공을 물에 빠뜨린 뒤 곧바로 칩인에 성공했다. 그 순간 ‘이건 우승이겠구나’라는 직감이 왔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듯한 순간이 있다.” 그는 “골프는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스포츠다. 준비와 집중이 기본이지만, 결국 마지막 한 샷은 다른 힘이 개입하는 것 같다. 그래서 겸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 코스 세팅과 날씨에 대한 소감도 덧붙였다. “비가 오면서 런(공이 구르는 것)이 줄어들어 샷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배수는 잘됐지만 흙이 묻은 공을 닦아내며 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운영 방식 개선을 언급했다. “보통 LPGA에서는 비가 와서 런이 줄면 전장 10% 정도를 줄인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오히려 3라운드에서 거리를 늘렸다. 비거리 위주 경기가 돼 내 스타일에는 불리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리디아 고는 자기에게 맞는 코스와 그렇지 않은 코스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타이거 우즈가 오거스타 내셔널이나 토리 파인스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선수마다 잘 맞는 코스가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에서 성적이 좋았다. 잭 니클라우스가 페이드 구질을 구사하며 오른쪽 공간이 있는 코스를 좋아한 것처럼 나도 그런 코스가 편안하다.” 그는 잠시 웃으며 이번 청라 코스를 언급했다. “여기는 장타자에게 유리한 코스다. 나처럼 큰 드로가 아닌 페이드 성향 선수는 다소 불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던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이런 경험도 내 골프를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리디아 고는 최종 라운드에서 4타를 잃으며 공동 44위에 그쳤지만, 결과보다 배움에 방점을 찍었다. “버디 기회를 놓친 게 아쉽지만, 어떤 부분을 연습해야 할지 알게 된 대회였다. 실망보다는 교훈이 더 많다.” 그는 “성적은 부족했지만, 팬 덕분에 더 뜻깊은 한 주였다. 같이 경기한 선수 덕분인지, 팬이 많이 와서 응원해 줬다”며 “목소리 하나하나가 힘이 됐다. 팬과 함께한 순간은 큰 보물로 남을것”이라고 했다.
리디아 고는 개인적인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했다. “아직 자녀 계획은 없다. 아이를 낳으면 투어를 계속 뛰기 쉽지 않다. 당분간은 반려견을 키우며 생활하고 싶다.” 그는 LPGA에서 활약하는 엄마 선수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엄마 선수는 대회에 나올 때 아이 옷 가방, 유아용 카시트까지 챙겨 다닌다. 경기 중에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지만, 하루하루 챙길 게 많다. 선수로서도,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나는 아직은 못 할 것 같다.”
지난해 3승, 올림픽 금메달, 명예의전당 입회까지 ‘완벽한 해’를 보낸 그는 올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1승 이후 주춤했다. 하지만 최근 캐나다 대회에서 공동 5위에 오르며 흐름을 회복했다. “남은 시즌에 우승을 한 번 더 하고 싶다. 특히 아직 우승하지 못한 대회에서 해보고 싶다. 휴식과 훈련을 병행해 컨디션을 관리하겠다.”
그는 10월 고양 뉴코리아CC에서 열리는 국가 대항전 ‘인터내셔널 크라운’ 출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팀플레이라는 형식이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 팬 앞에서 시원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다.” 이어 “시즌 최종전 CME투어 챔피언십도 준비하고 있다. 큰 무대에서 한 번 더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리디아 고는 LPGA 통산 23승, 올림픽 금· 은·동메달을 모두 따낸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는 늘 겸허함을 강조한다. “골프는 끝까지 알 수 없는 스포츠다. 마지막에 웃는 건 결국 골프의 신이 선택한 선수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