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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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말 일본에서는 1985년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인위적 절상을 이끈 1985년 플라자 합의가 이슈가 됐다. 일본 경제의 대전환을 가져온 플라자 합의가 40주년을 맞은 상황에서 올해 미국 경제 상황이 당시와 유사하다는 인식에서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5개국(G5)은 1985년 9월 22일(현지시각)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회담을 열고 ‘달러 강세’를 시정하기로 합의했다. 경제 선진국은 회담 이후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해 달러 약세와 자국 통화 강세를 유도했다. 엔화는 애당초 목표했던 달러 대비 10~15% 평가절상을 크게 넘어서 급등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엔화 가치는 플라자 합의 직전 ‘1달러=240엔’에서 1년 만에 ‘1달러=150엔’까지 치솟았다. 엔화가 2년 만에 1달러=120엔까지 치솟자, 일본 정부는 선진국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후속 협의에 나섰다. 그러나 엔화 강세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본 내 수출 기업 채산성은 나빠지기 시작했고, 일본은 ‘엔고 불황’에 빠졌다. 일본 정부와 금융 당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 지출 확대와 금융완화 정책을 펼쳤으나 일본 경제에 ‘버블(거품)’이 생겼고 이후 ‘버블 붕괴’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엔화 강세가 계속되자 일본 기업은 생산 거점을 해외로 이전했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구조 재편에 나섰다. 이런 흐름은 일본 내 산업 공동화로 이어져 일명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를 불러온 것이다.

엔화 가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등락 반복

버블 경제가 붕괴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엔화 강세가 이어졌다. 199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1달러=100엔’을 넘어서기도 했다. 1995년 4월에는 ‘1달러=79.95엔’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는 선진국의 외환시장 협조 개입과 버블 경제 붕괴 이후 발생한 불량 채권 문제 여파로 약세로 돌아서게 된다. 1998년에 ‘1달러=147엔대’로 떨어진 뒤 2007년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사태, 2008년 금융 위기, 2011년 그리스 재정 위기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투자자 사이에 ‘유로화와 달러’ 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입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에는 ‘1달러=75.32엔’까지 뛰었다. 그러다가 2012년 엔화는 대전환기를 맞았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내건 ‘아베노믹스’와 일본은행(중앙은행)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에 따라 ‘엔화 약세’가 진행된 것이다. 2024년에는 ‘1달러=161엔’까지 떨어지면서 플라자 합의 이듬해인 1986년 수준으로 내려갔다. 올해 엔화는 ‘1달러=140~150엔’에서 움직이고 있다. 

플라자 합의 40년, 더 혼란해진 세계경제

플라자 합의 이후 40년이 흐른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서 겨우 벗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달러 강세 시대가 다시 찾아오면서 엔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1985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레이거노믹스’를 실시했다. 대규모 감세와 군사비 증대로 재정이 급격히 악화됐다. 미국 내 소비도 활발해져 수입이 증가하며 무역 적자가 확대됐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당시 미국이 고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달러 강세가 나타났다. 이런 경제 상황 아래 ‘강(强)달러’를 시정하기 위해 나타난 게 플라자 합의다.

4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은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달러 강세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는 현재 미국 경제가 플라자 합의 당시와 공통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을 시정해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율 관세를 활용하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 등 수출국에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40년 전 미국이 주도했던 전 세계 경제구조는 현재 완전히 달라진 상태다. 유럽 지역에서 유로화가 탄생했고, 중국 위안화 위상도 높아져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주요국이 협조했던 것과 달리 외환시장을 조작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인위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제2 플라자 합의’는 다시 반복될 수 있을까. 40년 전에는 미국, 일본, 독일(당시 서독), 프랑스, 영국 등 G5의 경제 규모가 압도적으로 컸고, 외환시장 영향력도 절대적이었다. 경제 선진국 간 정책 공조로 달러 약세를 유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반면 2025년 기준 주요 7개국(G7)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당시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아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플라자 합의 당시 주요국 정책 협조와 거리가 먼 미국 이익을 우선하는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펼치는 것도 환율 정책 공조를 어렵게 하는 배경이다. 주요국 간 설령 합의가 된다 해도 확대된 외환시장을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플라자 합의 당시 대장성(현 재무성) 국제금융국장으로 협상에 참여했던 교텐 도요오는 최근 NHK 인터뷰에서 “당시 G5는 달러 강세가 과도하고, 이의 시정을 위해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다”라며 “미국이 일본을 겨냥한 보호주의 입법 등 강경한 정책을 들고 온 상황에서 미국에 협조해 대미 수출 규제를 피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라고 플라자 합의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일본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이끌었던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는 플라자 합의 40주년을 맞아 진행된 NHK 인터뷰에서 “그런 합의는 이제 있을 수 없다”라며 “40년 전과 달리 이제는 ‘유로화’도 정책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데, 유로화는 유럽연합(EU) 20개국이 사용하지만, 시장 개입 등 환율 정책을 각국이 결정하는 만큼 이들 국가와 합의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플라자 합의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

플라자 합의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먼저 일본에서는 그동안 중국 경제가 급부상했고, 일본 경제의 위상이 약화한 것을 감안해 일본의 경제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율에 좌우되지 않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아시아 각국과 무역 및 경제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와 무역에서 엔화 결제를 늘릴 경우 수출에서 환율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동시에 환율 변화에 견디는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내 투자를 늘리고 임금과 물가가 오르는 내수 주도형 경제구조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일본보다도 수출의존도가 훨씬 높다. 한국은 미국과 관세 협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데다 내수 시장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이 플라자 합의 이후 장기 침체에 빠진 역사적 경험을 한국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 최상철 간사이대 상학부 교수로는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교훈을 잘 새겨서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적극 재정을 펼쳐야 한다”라며 “기업은 단기적인 주가를 의식한 배당 확대보다 사내 유보금을 확대하면서 생산성 증대와 투자 확대로 장기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했다. 

Plus Point

잃어버린 30년 촉발한 플라자 합의

1985년 미국, 서독, 영국, 프랑스, 일본 등 5개국 재무 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가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였다. 각국의 정책 당국자는 달러 강세를 시정하기 위해 달러 매도 등 정책 협조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플라자 합의는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의 압박으로 시행됐다. G5 간 합의 이후 달러 강세 시정 및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축소에 일정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 경제에는 커다란 부정적 영향을 가져왔다는 게 일본 내 경제 전문가의 다수 의견이다. 엔화 가치가 2년 만에 달러에 비해 두 배가량 급등해 일본의 주력 수출 기업은 채산성 악화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일본 정부는 ‘엔고 불황’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장기간 과도한 금융완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일본 경제에 거품이 발생했고, 자산 버블로 이어졌다. 그 뒤 1990년 초 주식에 이어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을 겪었고,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