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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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은행을 통한 크로스보더 결제(Cross- border Payment·송금자와 수취인이 서로 다른 국가에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결제 방식)는 비용이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처리 속도가 느리며, 정산 시간이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기업의 불만이 크다. 이러한 틈새를 공략해 핀테크 기업은 사용자 친화적 서비스와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전통적 은행은 이에 대응해 결제 속도와 효율성을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각국 정부와 민간 기업은 더 빠르고 안전한 크로스보더 결제를 하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결제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다중 은행 토큰화 네트워크’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상업은행 예금이나 중앙은행 준비금을 ‘토큰화’하면 통합 원장(여러 개의 회계장부나 데이터 기록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통합 관리)상에서 24시간, 365일 실시간 정산이 가능해진다. 이는 중개자의 필요성을 줄이고 거래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딜로이트 금융서비스센터 분석에 따르면, 2030년이면 고액 국제 송금의 4건 중 1건이 다중 은행 토큰화 플랫폼에서 처리될 것이며, 기업의 결제 비용이 줄어 총 550억달러(약 77조1000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재커리 애런 딜로이트 미국 뱅킹&자본시장 결제 부문 리더 - 미국 UCLA 정치학
재커리 애런 딜로이트 미국 뱅킹&자본시장 결제 부문 리더 - 미국 UCLA 정치학

크로스보더 결제가 골칫거리인 이유

대규모 국제 거래(10만달러 이상)는 대부분 중개 은행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중개 은행은 외국에 현지 지사가 없는 금융기관을 외국시장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각 중개 은행은 통화 전환 전후의 은행 계좌 잔액을 갱신하는 역할을 하며, 이는 은행 영업시간에만 가능하다. 시차가 다른 여러 국가가 얽히다 보니 정산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업계는 다양한 혁신을 시도해 왔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인 스위프트(SWIFT)의 결제 추적 기능 강화, 더 클리어링 하우스(TCH)의 미국·유럽 간 즉시 결제 시범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여러 중개 은행을 거쳐야 하는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단계(처리·결제 등)마다 수수료가 붙어 거래 비용은 커지고, 복잡한 컴플라이언스 절차로 결제가 지연돼 운전자본이 묶이기도 한다.

/자료=딜로이트 금융서비스센터·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딜로이트 금융서비스센터·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크로스보더 결제 핵심 인프라 될 토큰화

크로스보더 결제를 토큰화하면 송·수신자 정보를 사전 검증해 보안 절차를 거래 흐름에 직접 반영할 수 있다. 이는 규제 준수 비용을 낮추고, 결제 지시와 자금 이전을 통합해 정보 불일치를 줄인다.

토큰화된 통화란 기존 금융자산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디지털 토큰 형태로 전환한 것으로, 실제 자산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반영하면서도 거래와 정산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토큰화된 통화는 여러 형태로 발행될 수 있다.

우선, ‘스테이블코인(Stablecoin·법화나 자산과 교환 비율을 고정한 암호화폐)’은 가장 널리 알려진 형태로, 미국 달러 같은 특정 자산에 가치를 연동해 민간 기관이나 은행이 발행한다. 다음으로 상업은행 토큰화 예금은 기존의 은행 예금을 디지털화한 것으로, 은행이 발행 주체가 된다. 마지막으로 중앙은행토큰화 예금은 중앙은행 준비금을 담보로 발행되며, 규제 당국의 감독 아래 운용된다. 

민간 부문의 다중 은행 네트워크는 토큰화된 통화를 기반으로 크로스보더 결제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컨소시엄은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시험 중이며 글로벌 규제 기관이 디지털 자산 사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면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크로스보더 결제 시장의 선두 주자, 스테이블코인

단기적으로는 크로스보더 대규모 국제 거래의 복잡성을 해결할 대안으로 스테이블코인이 꼽힌다. 미국은 2025년 7월 18일(현지시각) ‘지니어스법(GENIUS Act·미 스테이블코인 혁신법)’을 제정해 지급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규제 체계를 마련했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 전송 네트워크는 향후 5년 안에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은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에 참여하거나 기존 네트워크(SWIFT·TCH 등)를 활용해 자체 발행 코인을 교환할 수 있다. 이른바 ‘스테이블코인 샌드위치’ 모델로, 발신 은행이 자국 통화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해 전송하면 수취 은행이 이를 다시 수취인 계좌에 자국 통화로 입금하는 방식이다.

이미 일부 은행과 핀테크 기업은 규제 당국과 협력해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기술 표준과 거버넌스 기준, 보안 체계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몇몇 글로벌 은행은 기존 통화의 토큰화 버전을 활용해 크로스보더 결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영국의 프날리티(Fnality)는 2023년 말 국내 정산 시스템을 블록체인 플랫폼에 연동해, 은행에 종속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화폐 ‘유틸리티 결제 코인’을 교환하는 시범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각종 규제, 기술적 한계 극복’은 남은 과제

하지만 토큰화된 자산과 블록체인 기반 거래에 대한 각종 규제 및 기술적 한계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토큰화된 자산에 대한 규제 프레임워크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호 운용성 표준, 허용 가능한 디지털 화폐의 범위, 원장 참여 요건 등이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 또한 기존 정산 시스템은 수십 년 전 기술에 기반해 있어 새로운 디지털 원장과 연동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는 데이터와 자산 공유의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은행, 토큰화 네트워크 운영 위해 관리 체계 강화해야

은행이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블록체인 기반 거래가 재무적·기술적 측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따른 위험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고객의 자산과 거래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더 견고한 보안 프로토콜을 마련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또한, 초기 도입이 효과적인 결제 채널과 분야를 선별해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리스크(위험)를 줄이고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다. 나아가 프로그래머블 결제(조건부 자동 결제)나 실시간 유동성 관리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 개발을 통해 경쟁사와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각종 산업 협회 및 규제 기관과 협력도 중요하다. 디지털 신원 관리,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보안 등 핵심 영역에서 공동 기준을 마련해야 시장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은행은 기술혁신과 제도적 정합성을 동시에 추구해야만 다가오는 토큰화 시대의 결제 인프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시간 결제 시장에서 은행 간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관망만 하다가는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경쟁자에게 뒤처질 수 있다. 은행은 혁신적 결제 솔루션과 전략적 파트너십, 차별화된 부가가치 서비스 개발을 통해 기업 고객과 관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 다중 은행 토큰화 네트워크는 크로스보더 결제의 미래를 여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재커리 애런 딜로이트 미국 뱅킹&자본시장 결제 부문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