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탄소 감축의 핵심은 건물이다. 서울만 놓고 보더라도, 온실가스의 약 3분의 2가 건물에서 나온다. 교통 분야보다 훨씬 크다. 오피스·상가·주거가 만들어내는 난방·냉방· 전력 수요가 교통보다 큰 탄소 배출의 배경이 되고 있다. 수십만 동의 건물이 제각각 다른 용도와 연식, 설비, 운영 습관이 있기 때문에 제도 설계가 오랫동안 미뤄져 왔다. 서울특별시도 최근 ‘건물 온실가스 총량제’를 도입하려고 정비 중이다. 기존 자율적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이나 에너지 성능 공개 제도만으로는 실질적 감축 효과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에 상당한 자극을 줄 예정이다. 핵심은 새 제도로 인해 △비용 구조가 먼저 바뀌고 △그 변화가 임대 수익, 공실, 자본비용을 통해 부동산 가치 평가에 파급되며 △적응 실패 시 전반적인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건물 온실가스 총량제, 부동산 가치 바꾼다
첫 번째, 총량제가 시행되면 건물에는 ‘배출 허용 배출량’이 배정되고, 그 범위에 들도록 운영과 설비를 바꿔야 한다. 그러면 초기 투자 비용이 늘어난다. 오래된 냉·난방기를 교체하거나, 단열·창호를 보강하고, 태양광발전 같은 설비를 설치하는 데 큰 돈이 들어갈 것이다. 단순 장빗값만이 아니라 설계비, 공사 과정에서 생기는 영업 차질, 각종 검사와 승인 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부담은 더 크다. 제도가 당장 전면 교체를 강제하지는 않지만, 일정 기간 안에 성능을 끌어올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결국 투자를 앞당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운영비 구조도 달라진다. 에너지 요금은 줄어들 수 있지만, 대신 관리비와 보고 의무가 늘어난다. 설비를 모니터링하고, 성능을 검증해 매년 보고서를 제출하는 데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다. 배출량이 기준을 넘을 위험이 있으면 임시 조치에도 추가 비용이 든다. 즉, 총량제는 처음에는 투자비와 관리비를 동시에 늘리지만,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고 관리가 안정되면 에너지 절감 효과가 쌓여 장기적으로는 운영비가 줄고 수익성이 개선되는 구조다. 쉽게 말해, 먼저 쓰고 나중에 회수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비용 구조 변화에 따른 전반적인 수익성 구조가 재정렬된다. 건물주는 건물 온실가스 총량제를 지키기 위해 지불한 초기 비용을 얼마나 임대료로 회수할 수 있느냐가 중요 과제일 것이다. 세입자가 에너지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구조라면, 절감된 요금을 세입자와 나누는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다. 반대로 임대인이 모든 비용을 떠안는 구조라면, 임대료를 올리기 위해 건물의 에너지 등급이나 배출량 같은 객관적 성과를 제시해야 한다. ‘친환경 건물’이라는 단순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요즘 큰 기업이나 기관은 입주 전 건물의 에너지 성능을 꼼꼼히 확인한다. 이 때문에 에너지 성능이 좋은 건물은 공실이 적고, 세입자가 오래 머무는 반면, 에너지 성능이 떨어지는 건물은 임대료를 깎아주거나 추가 혜택을 줘야 세입자를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성능 공개가 늘어날수록 건물 간 격차는 더 커진다. 또 규제를 잘 따르고, 에너지 비용이 안정적인 건물은 시장에서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아 금융 조건에도 유리하다. 반대로 규제 대응이 늦은 건물은 대출이 줄거나 금리가 높아지고, 평가액도 낮아지기 쉽다. 결국온실가스 총량제는 임대 수익뿐 아니라 금융 여건까지 함께 흔들어 자산 가치를 크게 갈라놓는다.
세 번째, 건물이 온실가스 총량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경우 여러 측면에서 위험이 서서히 겹치게 된다. 우선 규정된 배출 허용량을 초과하게 되면 행정적으로 시정 명령이 내려지고, 그에 맞춰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공사는 대개 세입자 영업시간과 맞추기 어려워 비용이 불어나고, 애초 계획했던 시기를 놓치면서 추가 부담이 생기기 쉽다.
이와 동시에 시장에서도 불이익이 따라온다. 요즘 기업이나 기관이 건물을 고를 때 가장 중시해 기본 조건으로 삼는 것이 바로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 성적 등이다. 때문에 에너지 효율에 따른 친환경 성적이 나쁜 건물은 처음부터 이들의 선택 대상에서 제외되고, 결국 세입자 수요가 줄어 임대료를 낮추거나 추가 혜택을 제공해야 세입자를 붙잡을 수 있다.
금융기관과 평가 기관 역시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규제 대응 계획이 부족한 건물은 대출 한도가 줄고 금리가 높아지며, 감정평가 과정에서도 ‘앞으로 공사비가 더 들어갈것’이라는 이유로 자산 가치가 낮게 책정될 수 있다. 매수자 역시 같은 이유로 가격을 깎으려 하니, 시장에서 거래 가격은 점점 내려갈 수밖에 없다.
설비를 교체했더라도 운영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다. 자동제어 장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세입자 사용 패턴이 예상과 달라 실제 절감 효과가 떨어지는 사례가 흔하다. 이런 차이를 관리하지 못하면 매년 진행되는 총량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온실가스 총량제 부적응 건물은 시장에서 매력이 떨어져, 팔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는 ‘팔리지 않는 건물’로 남을 수 있다.한 가지 문제가 다른 문제를 야기하면서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건물주는 이런 연쇄적인 위험이 본격화하기 전에 대비책을 세우고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뉴욕·도쿄로 본 건물 탄소 감축의 의미
해외에서도 건물 온실가스 규제가 이미 시장의 판도를 바꾼 사례가 있다. 미국 뉴욕은 2019년 ‘기후 동원법(Climate Mobilization Act)’의 핵심 법안으로 제정된 ‘로컬법 97 (Local Law 97)’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강력한 탄소 배출 상한을 둬, 이를 초과한 부분에 대해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 때문에 뉴욕의 많은 건물주는 비용이 크게 들더라도 서둘러 설비를 교체하고, 에너지 성능을 높이고 있다.
일본 도쿄는 세계 최초로 건물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는데, 시행 이후 참여한 다수의 건물이 평균 두 자릿수 이상의 탄소 감축을 달성하면서 규제가 단순한 부담이 아닌, 효율적 관리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제도가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결과는 친환경 성능이 입증된 건물일수록 시장에서 높은 임대료와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한다는 점이다. 이를 가리켜 ‘그린 프리미엄(green premium)’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규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개선에 소극적인 건물은 세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외면받으면서 ‘브라운 디스카운트(brown discount)’라는 가치 하락을 겪는다.
이젠 부동산 투자자와 건물주에게 중요한 기준은 단순한 입지나 외관이 아니라, 얼마나 탄소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였는가가 되고 있다. 규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험이 될 수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준비된 건물은 시장에서 더욱 빛나고, 뒤처진 건물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결국 탄소 규제 시대의 부동산 가치는 지속 가능성을 얼마나 빨리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