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다이하드(Die Hard)’는 대흥행을 기록, 2013년까지 네 개의 후속편이 더 제작됐다.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존 맥클레인이라는 형사가 인질범, 테러리스트 등과 싸워 정의를 구현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네 번째 속편 ‘다이하드: 굿데이 투 다이(A Good Day to Die Hard·2013)’에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아주 유명한 대사 하나가 나온다. “맥클레인을 죽이는 건 어려워(It's hard to kill a McClane).”
# 그리스·로마 시대(BC 8세기쯤~AD 476년) 인류의 평균수명은 27세쯤으로 알려져 있다. 약 1400년 뒤인 1900년에는 고작 6세 늘어난 33세를 기록했다고 한다. 페스트, 콜레라 등 감염성 질병과 기아 등으로 수명을 다하는 사람 수가 극히 드물었던 탓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걸쳐 독일에서 발달한 화학 기술로 아스피린, 설파제 등 신약이 개발됐고, 1928년에는 영국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항생제 페니실린을 찾았다. 이런 약품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부상한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살려냈을 뿐 아니라, 종전 후 미국에 의해 원조 형태로 전 세계에 확산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의 인명을 구했다. 그 결과, 1950년 인류의 평균수명은 48세로, 50년 만에 15세가 늘었다. 물도 생명 연장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전반에 장기 평화 체제가 완성됐고, 각국은 경제개발을 위해 사회 인프라 건설에 앞다퉈 나섰다. 이에 따른 상수도 보급은 그전까지 수명 단축의 주요 원인이었던 수인성(水因性) 질병을 억제,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했다. 동시기 농업혁명으로 식량 생산도 비약적으로 늘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기아나 영양부족으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다. 실제 2005년 인류 수명은 평균 65.6세로 증가했다. 이후 바이오·의학의 발전으로 2030년쯤 평균수명은 8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100세 시대’ 를 넘어 ‘다이하드’ 즉 ‘죽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 소설가 고(故) 최인호는 2012년 ‘공자(孔子)’라는 마지막 소설을 냈는데, 그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공자의 일화를 풀어 다음과 같이 썼다. “공자가 제(齊)나라로 가던 중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이 모두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여인만 홀로 남아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지요. 사연을 들은 공자는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합니다. 여인은 여기에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 가면 무거운 세금으로 그나마 살 수도 없다고 하지요. 공자는 탄식합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고사다. 최 작가는 소설을 맺는 ‘작가의 말’에서 “아아, 이 신춘추전국(新春秋戰國)의 어지러운 난세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으련만. 그런 바람이야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헛맹세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주요 선진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100%를 넘은 나라가 많으니, 그 수치가 50% 미만인 한국은 나랏빚을 더 늘려도 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발언은 일견 근거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121%, 중국 88%, 독일 64%. 인도 81%, 일본 237%, 영국 101%,프랑스 113% 등이다. 한국보다 GDP 규모가 큰 12개국 중 러시아를 제외하고, 모두 상대적인 국가 부채 규모가 크다. 새 정부는 이를 근거로 얼마 전 2029년 국가 부채 비율을 58%까지 늘리겠다는 등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내놓고, 적극적인 재정지출 및 국가 부채 확대를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낙관론의 이면에는 큰 문제가 있다. 첫째, 앞서 언급한 나라 대부분은 미국·영국·유럽연합(EU, 독일·프랑스)·일본 등 기축 또는 준(準)기축통화국이거나, 중국·인도 등 인구 대국이다. 즉, 발권력이 있어 유사시에 돈을 찍어내 갚거나, 인구가 많아 위기 시에 기본적으로 대외 협상력이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한국은 둘 다 아니다.
둘째, 국가 부채 증가 속도는 GDP 상위 13개국 중 한국이 최고 수준이다. 국가 부채는 1998년 진보 정권이 들어선 뒤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고, 특히 문재인 정부(2017~ 2022년) 5년 동안 약 300조원 이상 증가해 사상 최고 증가치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2022~2025년) 3년간에도 약 170조원 늘었다. 새 정부는 향후 5년간 사상 최대인 약 600조원의 부채 증가를 예정한다. 이런 까닭으로 IMF는 2030년 한국의 국가 부채 비율이 60%를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재정 건전성 악화 속도에 대한 경고를 내놨다.
셋째, 한국의 국가 부채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실제 상당히 더 크다. IMF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는 중앙·지방정부 부채(D1·국가 채무)에 비금융 공기업,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 등을 합친 것이지만, 한국 정부는 국가채무법에 따라 후자를 제외한 가장 좁은 의미의 부채인 국가 채무(D1)만 발표한다. IMF, OECD,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표준으로 사용하는 D2(D1+비영리 공공기관 부채, 일반 정부 부채)와 부채 규모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D2·D3(D2+비금융 공기업 부채, 공공 부문 부채) 등 국가 채무 보조 지표를 발표하는데, 국가 간 비교에 많이 쓰이는 D2로 보면, 한국의 2025년 말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54.5%에 달할 것으로 IMF는전망한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 주요국 중 이례적인 큰 규모로 중앙은행이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을 발행한다. 7월 말 기준 약 170조원(2025년 명목 GDP의 7%)의 통안채 잔고가 있다. 통안채 잔고 역시 국가에 최종 변제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국가 부채로 볼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의 국가 부채 비율(GDP 대비)은 2030년이 아닌, 올해 60%를 훌쩍 넘기는 셈이다.
넷째,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로 향후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0%를 넘었고, 생산가능인구(15~65세)는 2019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일해서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들고, 경제성장률도 떨어져 조세 수입은 줄지만 ‘다이하드’ 시대의 본격화로 복지 관련 재정지출이 폭증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추계도 너무 낙관적일 수 있다. 미국과 관세 협상 난항이 장기화해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한다면 정부·여당도 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기존 계획보다 더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내놓을 개연성이 크다. 또 한국만의 특수 상황인 통일이 북한의 급변으로 갑자기 이뤄진다면 관련 비용도 고스란히 국가 부채에 전가될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한국 국가 부채 비율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100%에 도달할 것이다. 이 경우 프랑스처럼 국가 예산의 약 4분의 1을 기존 부채 이자와 원금을 갚는 데 쓰게 돼 정상적인 국가 살림살이가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이런 국가 부채 문제를 개선하려면 빠르면 차기 정부부터 복지 등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최근 복지 지출을 감축하려다 총리가 물러나고 사회 소요가 일어난 프랑스만 봐도 전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 실행이 어렵다. 결국 젊은 세대에게 조세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는 ‘가정맹어호’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새 정부는 재정 확장 정책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중교통비 100% 환급’ 같은 정책부터 지양하길 바란다. 최인호 소설처럼 이런 바람이 ‘헛맹세’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