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중국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 출신 부자(父子)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판다인(Panda Inn)’이란 이름의 중국 식당을 개업했다. 생활비를 아껴 저축한 돈에 중소기업 창업 지원금을 합친 6만달러(약 8600만원)가 창업 자금의 전부였다.
부친인 밍차이청(1981년 타계)은 대만과 일본 요코하마 등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요리사였고, 아들인 앤드루는 미국 베이커대와 미주리대(석사)에서 수학을 공부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2년 뒤 앤드루가 대학 동창 페기 청을 아내로 맞으면서 ‘부부 경영’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미얀마 출신으로 홍콩에서 성장한 페기는 미주리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학위를,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방산 업체 맥도넬 더글러스 등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한 수재다.
판다인은 개업 10주년을 맞은 1983년 ‘판다익스프레스(Panda Express)’로 이름을 바꿔 ‘중식 패스트푸드’ 체인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북쪽에 있는 글렌데일에 1호 매장을 열었다. 현재 본사는 LA 근교 로즈미드에 있다. 판다익스프레스는 이후 쇼핑몰을 집중 공략하는 초기 전략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며, 미국 최대 아시아계 레스토랑 체인으로 성장했다.
판다익스프레스는 2024년 말 기준으로 미국·캐나다·멕시코·일본·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 등 전 세계에 24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매출은 59억달러(약 8조4211억원)였다. 2017년 28억달러(약 4조원)에서 7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 국내에는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쇼핑몰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판다익스프레스의 국제적인 성공으로 앤드루와 페기 부부의 자산(10월 13일 기준 ‘포브스’ 추정)은 72억달러(약 10조2767억원)로 불었다. 이들 부부는 최근 미국프로농구(NBA) 구단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인수전에 핵심 투자자로 참여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트레일블레이저스 구단의 매매가는 40억달러(약 5조7092억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레일블레이저스는 2018년 구단주 폴 앨런(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그 폴 앨런 맞다) 사망 이후 여동생 조디 앨런이 구단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조디 앨런은 구단 운영에 큰 관심이 없었고, 결국 지난 5월 공식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판다익스프레스 성공 배경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 외식 사업 진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요소가 많이 보인다. 성공 비결을 정리했다.
성공 비결 1│
메뉴 표준화와 단순화
땅이 넓고 사람도 많은 중국에선 ‘네발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음식 종류가 다양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미국에서 장사하려면 미국인 입맛에 맞는 메뉴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판다익스프레스는 메인 메뉴를 치킨과 비프(소고기), 포크(돼지고기), 시푸드(해산물·seafood) 세 가지로 단순화했다. 시푸드라고 하지만 사실상 새우 요리가 전부다. 새우와 일부 비프·포크 요리를 빼면 ‘쿵파오 치킨(닭고기와 캐슈너트, 고추를 넣고 볶은 쓰촨요리)’과 ‘오렌지 치킨’ ‘블랙페퍼 치킨’ 등 미국화된 중국식 치킨 메뉴가 주를 이룬다. 볶음밥과 볶음면 등 메뉴를 다 합쳐도 채 스무 가지가 되지 않는다. 음식은 언제든 주문과 동시에 바로 담아 먹을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최대 네 가지 메뉴를 한 접시에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적은 가짓수로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메뉴 선택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는 데다 주문과 음식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아 회전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매출을 늘리는 데 최적의 모델인 셈이다.
성공 비결 2│
‘킬러 콘텐츠’의 존재
외식업 종사자가 빠지기 쉬운 유혹은 ‘판매하는 모든 음식이 다 맛있고 훌륭하다’고 홍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도 어렵지만, 설령 사실에 가깝다고 해도 창업 초기에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간판 메뉴를 정해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판다익스프레스 간판 메뉴는 오렌지 치킨이다. 말 그대로 오렌지 향이 나는 치킨 요리다. 튀긴 닭에 새콤달콤한 오렌지 소스를 버무려 만드는데, 식감은 닭강정과 탕수육 중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렌지 치킨은 1987년 하와이에 있는 판다익스프레스 매장 주방에서 탄생했다. 당시 판다익스프레스 메뉴를 총괄하던 대만 출신 총괄셰프 앤디 카오의 작품이다. 프렌치 요리 전문가인 카오는 판다에 합류한 뒤 서구식 입맛에 맞는 다양한 조리법을 실험했다. 그중 가장 크게 성공한 것이 오렌지 치킨이다. 매년 전 세계 판다익스프레스 매장에서 약 5만t의 오렌지 치킨이 팔릴 정도로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제대로 된 오렌지 치킨을 맛보려면 판다익스프레스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매출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 일각에서는 통마늘과 치킨을 소스에 볶아 조리하는 ‘제너럴 소 치킨’ 을 오렌지 치킨의 원형으로 보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음식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성공 비결 3│
첨단 기술 접목과 직원 교육
공학박사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페기의 가세로 판다익스프레스는 일찌감치 첨단 기술을 접목했다. 판다익스프레스는 세계 최초로 POS(Point of Sales system·포스기)를 도입한 기업 중 한 곳이다. IBM이 최초의 포스기 시스템을 구축한 1974년, 페기는 자기가 만든 포스기를 판다익스프레스 전 매장에 공급했다. 포스기에 기록된 매출 데이터로 소비자가 어떤 메뉴를 선호하는지, 무슨 식자재를 더 많이 구입해야 낭비를 줄일 수 있는지 등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2014년에는 주문용 앱을 출시하면서 가족과 친구 등 여러 기기를 사용하는 지인이 동시에 접속해 단체 주문이나 결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주문하던 추억을 모바일 시대에 맞게 되살리는 것이 개발 취지였다. 판다익스프레스는 직원의 자기 계발을 독려하는 기업 문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본사 곳곳에는 스티븐 코비(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으로 유명한 경영 전문가)를 비롯한 경영 전문가의 자기 계발서가 비치돼 있다. 또 자기 계발이나 리더십 관련 서적 구매 시 회사가 일부 비용을 지원한다. 판다익스프레스직원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판다 웨이(Panda Way)’라는 과정도 운용하고 있다. 대인(對人) 기술과 건강한 생활 습관, 자기 주도 학습 노하우 등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판다익스프레스는 ‘창업 성지’인 패서디나(현재 본사는 캘리포니아주 로즈미드에 있다)에 ‘이노베이션 키친’이라는 조직을 두고 신메뉴와 포장 및 실내 디자인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다.
성공 비결 4│
고객 다니는 길목 선점
판다익스프레스가 패스트푸드 체인으로 변신해 빠른 성장을 이어 가던 1980~90년대는 북미에서 대형 쇼핑몰의 전성기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자동차 보급으로 도심 외곽에 주거지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쇼핑몰은 1980년대 들어 미국인 일상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과잉 공급으로 수익이 줄어들기 시작한 2000년대 초까지 북미 쇼핑몰은 최고의 호황기를 구가했다. 판다익스프레스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초기 10년 동안 쇼핑몰 입점을 우선순위로 하는 전략을 통해 급성장할 수 있었다. 주말에 쇼핑몰마다 오렌지 치킨 시식 행사를 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전략도 바뀌는 법. 쇼핑 중심축이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쇼핑몰 입점이 예전만큼 매력 있는 선택일 수 없었다. 현재 판다익스프레스 매장 중 쇼핑몰 입점 매장 비율은 2% 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