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2000명이 넘는 근로자가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업주의 의무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산재 예방 효과가 불명확하다.”
제정 당시부터 찬반 논란이 뜨거웠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 사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망 사고 등 근로자 사망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자, 국내에서도 영국의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과 같이 산재를 일으킨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게 늘었다. 이에 제21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20년 6월부터 법률안 5건, 국민 청원 1건이 국회에 제출됐고, 총 7번의 전례 없는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을 맞아 과연 이 법이 입법 취지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입법 효과는 있었는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없었는지를 분석했다.
산재 예방 못 한 중대재해처벌법
우선 중대재해처벌법의 애초 입법 취지인 산재 예방 효과가 있었는지를 분석한 결과, 법 시행 전후로 재해자 수와 재해율은 증가했고 사망자 수와 사망률은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산재 예방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부터 적용 대상이었던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재해율이 증가하고 사망률에는 변화가 없었다. 3년간 적용을 유예해 2024년 1월부터 법 적용 대상이 된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사망률이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 시행으로 인해 일부 사업장에서 안전 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결과로 판단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면서 재해율과 사망률이 가장 높은 사업장 규모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법 시행 전후로 재해자 수가 증가했고, 사망자 수, 재해율, 사망률의 변화가 없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되, 중대재해처벌법의 역기능을 최소화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실질적인 산재 감소를 위한 대책이 필요함을 제안했다.
책임자 처벌도 미지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았는지도 분석했다. 2025년 7월 24일까지 발생한 사고 가운데 중대산업재해로 의심돼 수사 대상에 포함시킨 사건 1252건 중 73%(917건)가 고용노동부, 검찰에 의해 ‘수사 중’인 것으로 나타나 처벌이 지연되고 있었다. 또한 2025년 7월 31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열린 1심 판결 53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무죄판결 비율이 10.7%로 2023년 형사 공판 사건 무죄판결 비율인 3.1%보다 세배 이상 높았다. 집행유예 비율은85.7%로, 2023년 형사 공판 사건 집행유예 비율 36.5%보다 2.3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징역형이 선고된 47건의 평균 형량은 1년 1개월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하고 있는 하한선(1년 이상)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법인 양벌규정에서 ‘5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형량을 규정했지만, 실제 양벌 수준이 평균 7280만원으로 형성됐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당시 모티브가 되었던 영국의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에 따른 기업 벌금액 평균 7억6816만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자기 규율 안전 보건 예방 체계를 갖춰야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수단이 있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입법부는 ‘처벌’을 선택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영향 분석을 통해 명확하지 않은 법 규정, 기업의 적극적인 법적 대응, 산업 현장의 특수성 및 양형 기준 부재, 산업 안전 보건 감독관의 질적·양적 한계 등의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처벌이라는 수단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처벌이라는 수단 이외에 노사 공동 책임 원칙에 따른 자기 규율(self-regulation) 안전 보건 예방 체계를 확립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장의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해 위험성 평가를 수행하고, 평가 결과 도출된 사업장 위험 요소에 대해 사용자가 적절한 대응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위험성 평가의 필수적 요소인 ‘자발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부 대책 발표, 법원 중형 선고는 긍정적
8월 28일, 국회입법조사처는 10개월여간 준비한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영향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 발표 기자회견 이후 한 달, 사회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정부가 9월 15일 ‘노동안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에 재정·인력·기술·교육 지원으로 2조723억원을 투입하고, 원청 의무 강화, 작업 중지권 요건 완화, 지방자치단체 근로 감독 권한 부여 및 산업 안전 감독 직무 능력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입법 영향 분석을 통해 형사처벌 규정만으로는 실질적인 산재 감소 효과는 물론,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다행히도 기자회견 이후 산재 감소를 위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방안으로 경제적 제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변화는 법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해 중형을 선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24년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해 총 23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친 사고가 있었다. 사고 발생 1년 3개월이 지난 2025년 9월 23일 법원은 1심에서 아리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는데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이다.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대로 형량을 부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아리셀 사고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무거운 형사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응당한 결과”라고 재판부가 판시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살리는 판결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