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투자자의 시선이 미국 달러에 집중되고 있다. 국제결제 수단이자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달러에 의존하는 은행, 기업, 정부는 변덕스럽고 적대적인 ‘미국 우선주의’ 대통령의 정책을 우려한다. 그들은 달러가 무기화되는 추가 조치가 있을 것을 걱정하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고, 독립성이 위태로운 연준이 그 의무를 인플레이션을 통해 덮어버리도록 압박 받을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달러는 당분간 지배적인 국제통화로 남을 수 있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 패권 유지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바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이다. 달러와 일대일로 연동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서명한 지니어스법이 스테이블코인의 앞길을 열어줬다는 평가가 많다. 지니어스법에 따라 미국 재무부와 규제 파트너는 향후 1년간 세부적인 규정을 마련한 뒤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면허를 부여할 계획이다. 정황상 면허 신청자가 부족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이 미국과 전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양한 질문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안전하고 유동성 있는 담보로 완전하게 뒷받침될 것인가, 아니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유인에 사로잡힌 규제 대상자가 규제 당국보다 한발 앞서 나갈 것인가. 달러와 항상 일대일 가치로 교환될 것인가. 만약 뱅크런이 발생할 경우 규제 당국은 2008년 세계 3위 규모 머니마켓펀드(MMF)인 ①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의 부채를 보증했던 것처럼 개입할 것인가. 스테이블코인의 이자 지급을 금지함으로써 은행 예금의 기반이 보호될 것인가. 아니면 코인이 거래되는 거래소를 통해 발행사가 이자를 우회 지급해 은행 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것인가.
앞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낙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위험이 있더라도 스테이블코인이 그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스테이블코인이 달러의 세계적 패권을 유지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10월 초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암호화폐 콘퍼런스에서 트럼프 주니어가 직접 말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주장은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의 99%가 달러에 연동되어 있다는 관찰에서 출발한다. 만약 이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외부에서 보유 및 사용된다면, 이는 완전히 새로운 국제적인 결제 인프라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기존 국경 간 은행 거래와 은행의 낡은 통신시스템인 ②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와는 별개이며 이론적으로 더 빠르고 저렴할 수 있다. 이것이 달러 결제의 매력도를 높인다면, 기업 재무 담당자는 달러 보유량을 유지하는 유인을 갖게 될 것이다. 중앙은행 역시 달러 대출 기관이자 최후의 유동성 공급자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되는 만큼 달러 준비금을 보유하고자 할 것이다. 이런 상호 보완적 구조는 달러의 지배력을 공고히 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CBDC와 경쟁서 승산 작아
이런 주장에는 여러 가정이 깔려있는데 이를 하나씩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매력적일 것이라는 관점은 실제로 안정적일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다. 또한 다른 국가의 정부가 자국민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일부 국가는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국내 통화정책의 효과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주저할 수 있다. 다른 국가는 스테이블코인이 자금 세탁, 탈세, 자본 통제 회피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걱정한다. 유럽연합(EU)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암호자산시장규정(MiCA)의 소비자 보호 및 시장 건전성 조항과 양립 가능한지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EU는 이미 주요 스테이블코인인 ③ 테더(Tether)를 규정 미준수 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다.
누군가는 각국 정부가 이러한 디지털 흐름을 되돌릴 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정부가 자국민의 디지털 거래를 통제할 상당한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유럽인은 유럽 내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금지되더라도 역외에서 이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은행과 기업은 적발 시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만큼 이러한 규제 행위에 연루되는 것을 꺼릴 것이다. 또 다른 가정은 다른 통화를 발행하는 국가가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홍콩에서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조례를 채택한 건 이런 가정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CBDC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리라고 가정한다. CBDC는 기본적으로 스테이블코인과 동일한 성격의 디지털 화폐다. 다만 중앙은행이 발행하기 때문에 중앙은행 화폐로 전환이 보장된다는 점은 스테이블코인과 차이점이다. 현재 전 세계 100개 이상의 중앙은행이 CBDC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만이 이를 외면했는데, 이는 중앙은행 제도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불신과 암호화폐 업계의 로비 활동이 반영된 결과다.
역사는 중앙은행 화폐가 민간 화폐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줘 왔다. 이는 미국이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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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리저브프라이머리 펀드가 보유 중인 리먼 발행 단기채권이 손실 처리됐다. 이에 투자자가 일시에 환매를 요구하는 대규모 뱅크런 사태에 직면했고, 이는 단기금융시장 전체의 붕괴 위험을 초래했다. 당시 미국 재무부는 단기채권 환매 사태 확산이 금융 시스템 붕괴와 실물경제 마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는 금융시장 붕괴를 막는 데 도움이 됐지만, 정부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공적자금으로 구제할 경우 금융기관은 더 위험한 투자와 운영을 지속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왔다. 이에 의회에서 재무부의 공적자금 투입 권한을 박탈하는 입법이 이뤄졌다. 2010년 나온 도드-프랭크법이 그것이다.
②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1만1000여 개 금융기관(중앙은행 포함)이 국제무역 대금 등 거래 결제 시 사용하는 핵심 금융 전산망이다. 세계 금융을 잇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한다. 스위프트에서 배제될 경우 해당 금융기관은 외국과 거래가 전면 중단되므로, 이는 가장 강력한 경제제재 수단으로 평가된다. 실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2월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은 러시아 주요 은행을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하는 조치를 취했다.
③ 테더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으로 달러에 연동한다. EU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유로존의 통화 주권을 위협할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테더가 MiCA가 요구하는 준비금의 구성 및 관리 기준 등을 충족하기 힘들다고 보고 규정 미준수로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