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1부와 2부처럼 두 세대의 시간이 이어진다. 1부에는 장모가 만든 뚜껑을, 2부에는 아내가 만든 뚜껑을 볼 수 있다. /사진 김진영
책은 1부와 2부처럼 두 세대의 시간이 이어진다. 1부에는 장모가 만든 뚜껑을, 2부에는 아내가 만든 뚜껑을 볼 수 있다. /사진 김진영

시타미치 모토유키(下道基行)는 잊혀가는 역사나 평범한 사물 속에 숨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온 작가다. 그는 오래된 구조물, 전쟁의 흔적, 낡은 풍경 속에서 ‘시간의 켜’를 찾아내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엄마의 뚜껑들(Mother’s Covers)’에서는 카메라의 시선을 집 안 깊숙이, 사적인 일상으로 옮긴다. 

이 책은 작가가 2012년 결혼하면서 일본아이치현에 있던 아내의 본가로 이사한 뒤, 그곳에서 새롭게 맞이한 가족 풍경을 담은 이야기다. 그 집은 건축가이던 아내의 할아버지가 지은 집으로, 오랜 세월 가족의 손길이 닿은 물건과 가구로 가득 차 있었다. 작가는 그 안에서 자기와는 다른 생활의 리듬과 규칙, 낯선 문화에 놓이게 된다. 된장국에 무엇을 넣는지, 사용한 물건을 어디에 두는지 같은 사소한 일이 때로는 혼란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나는 길 잃은 고양이처럼 이 집을 배회하거나, 낯선 섬에 표류한 사람처럼 느꼈다”고 회상한다.

어느 날 아침, 작가는 주전자 위에 장모가 덮어둔 천 조각을 발견한다. 그것은 뚜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설프고, 기능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엉성함 속에는 묘한 따뜻함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일상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이라 부르며, 그날부터 매일 아침 카메라를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약 2년 동안 그는 장모가 매일 새롭게 만들어 올리는 뚜껑들을 찍었다. 주전자, 찻잔, 그릇 위를 덮은 천이나 덮개들은 늘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색과 무늬, 재질,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졌고, 그 안에는 장모의 손길과 생활의 리듬,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몸짓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작가는 작은 개인전을 열 기회를 얻었을 때 이들 사진을 인화해 장모에게 보여줬다. 처음에는 뜻밖이라는 듯 놀라던 장모는 결국 사진 사용을 허락했다. 그러나 그 순간 프로젝트는 멈춰버렸다. 이제 장모가 자신의 행동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됐기 때문이다. 카메라라는 존재가 일상에 들어오자, 무심히 이어지던 행동이 더 이상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니게 됐다. 그렇게 ‘엄마의 뚜껑들’ 시즌 1은 끝이 났다.

시간이 흘러 작가는 딸을 낳았고, 작가의 아내는 엄마가 됐다. 가족 구성과 관계가 달라지자, 식탁 풍경 역시 조금씩 변했다. 장모는 다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예전처럼 매일 뚜껑을 만들어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아내가 만든 뚜껑을 발견하게 된다. 장모가 하던 행동을 자연스레 이어받기라도 한 것처럼 아내 역시 차를 우려낸 찻주전자 위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올려 뚜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아내의 손길이 닿은 ‘엄마의 뚜껑들’ 사진 촬영은 다시 시작됐다. 

책 속에서는 두 세대의 시간이 1부와 2부처럼 이어진다. 1부에는 장모가 만든 뚜껑을, 2부에는 아내가 만든 뚜껑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풍경은 비슷하지만, 그 안에는 세대의 전환과 삶의 계승이라는 흐름이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의 바탕에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의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얼마나 쉽게 일상이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았다. 그로 인해 일상의 사소한 디테일에 집착하게 됐다.” 작가는 거대한 상실을 경험한 뒤, 일상의 작은 습관과 움직임, 사소한 행위를 더욱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장모와 아내가 무심히 내려놓은 뚜껑은 그런 감정의 집약체였을 것이다. 

‘엄마의 뚜껑들’이 가족을 중심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방식은 아주 조용하고 소소하다. 이 책에는 큰 사건도, 드라마틱한 감정의 고백도 없다. 대신 조금씩 달라지며 반복되는 찻주전자와 뚜껑 그리고 집 안 풍경이 엿보일 뿐이다. 작가는 이 ‘작은 사물 세계’를 통해 일상의 지속과 변화, 세대 간 연결을 이야기한다. 장모가 만들던 뚜껑이 아내에게로 이어지면서, 가족의 역사는 그렇게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오로지 집 안 부엌에서의 관찰을 통해 완성된 이 책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멋진 풍경이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장면 속에서 삶의 온도가 느껴지는 장면을 작가는 오랜 시간 담아냈다. 작업의 주제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평범한 삶이 얼마나 깊고 다정할 수 있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