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10월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전날 극적으로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멋지고 아름다운 협상이었다”는 소회를 올렸다.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양국 간 신뢰와 협력을 더욱 굳건히 하며, 미래지향적 한미 동맹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고 썼다. 하지만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양국 협상단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아침 방송에 출연해 “그저께(10월 28일) 밤만 해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제(10월 29일) 점심쯤에야 연간 투자 한도 문제가 합의됐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 29일 방한 후 첫 공개 행사였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CEO(최고경영자) 서밋 연설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을 콕 집어 “터프한 협상가”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협상이 녹록지 않았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한미 양국은 10월 29일 총 3500억달러(약 500조원)의 대미 투자금 중 2000억달러(약 285조원)를 현금 투자하되 연간 한도를 200억달러(약 29조원)로 제한하는 데 전격 합의했다.
2000억불 현금 투자·1500억불 마스가 펀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정상 특별 만찬장’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합의를 이뤘으며 무역 협상을 거의 타결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지난 7월 미국이 한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실행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미 투자 구성 방식 등을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왔다.
양국은 이번 합의에서 2000억달러를 직접 현금 투자하되 연간 투자 한도를 200억달러로 정했다. 나머지 1500억달러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불리는 조선업 협력 투자금으로, 기업이 투자하고 현금 투자 외에 보증액 등도 포함하기로 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000억달러 투자는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500억달러와 유사한 구조지만, 우리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투자한다”며 “연간 200억달러는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 있으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2000억달러는 ‘상업적 합리성’을 따져 투자처를 결정하게 된다. 김 실장은 “원금 회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한 다층적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며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 간 수익을 5 대 5로 배분하되, 20년 이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 배분 비율 조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 관세 인하를 위해선 양국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해야 한다.
하지만 김 실장은 “한국은 대미 투자 펀드 기금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첫날로 소급해 관세 인하가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이 한국 국회를 통과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내리면, 대미 자동차 관세가 현재의 25%에서 일본과 같은 15%로 인하될 예정이다. 의약품 등은 최혜국대우를 받고, 반도체는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 11월에 법안이 제출돼 이후 국회에서 통과되면 관세 인하 시점은 11월 1일로 소급 적용된다.
트럼프, 李 “핵잠수함 건조 요청” 전격 수용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 190돈이 들어간 무궁화 대훈장과 신라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 최고급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을 받은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스가를 지렛대로 안보 분야의 오랜 염원 사업을 성사시켰다. 이 대통령은 10월 29일 모두 발언에서 “미국에 대한 조선 협력은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을 실질화하고 심화하는 데도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핵추진잠수함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 달라”며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사실상 허락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한국 대통령이 공개된 자리에서 핵추진잠수함 보유 의지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측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연료 공급을 허용하면 우리가 우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해 한반도 해역의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 밖에 빨리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인 30일 한국을 떠나기 전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미 군사동맹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며 “그것에 기반해 나는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국은 핵추진잠수함을 바로 여기 훌륭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며 “미국의 조선업은 곧 대대적인 부활(Big Comeback)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이 2024년 12월 인수한 필리조선소는 한미 조선 협력의 상징이다.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일국의 주권 사항이다. 하지만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고 미국의 기술 지원, 연료 공급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적 승인을 지시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