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과 DMZ(비무장지대)에서 의료용 대마(大麻·헴프) 생산과 재배가 가능해졌다.” 

함정엽 네오켄바이오 대표는 군사시설 보호와 환경 규제로 성장이 더뎠던 접경지대가 지난 9월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되면서, 국산 의료용 대마 생산이 현실화됐다고 밝혔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이 신제품·기술을 시험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면제하는 제도다. 

의료용 대마는 꽃과 잎에서 추출한 칸나비디올(CBD) 성분을 활용한다. CBD 자체는 중독성이 없고 통증 완화, 신경 안정 등 효과로 뇌전증, 파킨슨병, 치매, 우울증, 암 등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대마의 꽃·잎에는 환각·중독을 유발하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이 있어, 치료제로 쓰려면 이 함량을 0.3% 이하로 낮추는 정제 과정이 필요하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은 2032년 1080억달러(약 15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미 미국(38개 주)·캐나다·영국·독일·호주 등 56개국이 의료용 대마를 허용했고, 마약에 보수적인 일본도 지난해 CBD 사용을 전면 허용했으며, 프랑스도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함정엽 네오켄바이오 대표 - 연세대 화학 학·석사, 서울대 해양학 박사, 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 전 산업통상자원부 NBTS(천연물 바이오산업 기술 지원) 사업단장 /염현아 기자
함정엽 네오켄바이오 대표 - 연세대 화학 학·석사, 서울대 해양학 박사, 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 전 산업통상자원부 NBTS(천연물 바이오산업 기술 지원) 사업단장 /염현아 기자

네오켄바이오는 202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던 함정엽 대표가 세웠다. 안동 규제자유특구(이하 안동 특구)에서 국내 최초로 마약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고, 치료 효과가 있는 CBD 성분만을 고순도로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국내 기술은 이미 상용화 수준이지만, 마약류관리법에 묶여 정작 임상시험이나 수출의 관문인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시설 구축은 어려웠다. 

최근 정부가 규제 완화 기조를 내세우면서 대통령령 개정을 통한 규제 완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의료용 대마 활성화 토론회’가 처음 열리며 논의가 본격화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네오켄바이오의 핵심 기술은 뭔가. 

“밀폐형 마이크로웨이브(MW) 기반의 CBD 추출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전자레인지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고주파 전자파를 쏴 대마에 있는 고순도 CBD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추출하는 방법이다. 열을 가해 추출하던 기존 방식보다 빠르고, 열로 인한 성분 손실도 적다. 경쟁사보다 더 많은 CBD를 한 번에 추출할 수 있어, 생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고순도 CBD를 의약품 원료 수준으로 정제해, 현재 유일하게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판매 중인 고가의 의료용 대마 치료제 ‘에피디올렉스’와 동일한 성분·제형의 제네릭(복제약)을 2년 안에 개발하는 게 목표다. 에피디올렉스의 핵심 성분인 CBD는 자연 유래 물질로, 주요 물질특허가 만료됐거나 보호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제네릭 개발이 가능하다. 이 고가 수입 약을 국산 제네릭으로 대체해, 가격을 3분의 1 이상 낮출 계획이다.”

함정엽(가운데) 네오켄바이오 대표와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연구원들이 스마트팜에서 의료용 대마를 키우고 있다. /KIST
함정엽(가운데) 네오켄바이오 대표와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연구원들이 스마트팜에서 의료용 대마를 키우고 있다. /KIST

9월 경기도 연천군·DMZ가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됐다. 현재 이곳에서 어떤 사업이 진행되고 있나.

“DMZ에서는 이미 CBD 시험 재배를 시작했고, 연천군 폐교 부지를 매입해 GMP 시설을 세우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GMP 시설에서 생산해야만 수출이 가능하다. 다만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이곳에서 우수농산물관리기준(GACP)을 충족하는 CBD 스마트팜 구축 시범 사업도 추진한다.”

그럼, 기존에 실증 사업을 해온 안동 특구에서는 뭘 하나.

“안동 특구에는 이미 CBD 재배·제조 시설이 있고, 실증 사업을 계속 진행 중이다. 다만안동 특구도 관련 법 때문에 GMP 구축이 어려워지면서 상용화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과 접경지대가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되면서 안동 특구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경북도청이 CBD 생산을 위해 GMP 설립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의료용 대마 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CBD 생산·재배에는 보안이 중요하다. 폐교나 유휴 군대 부지를 CBD 산업 거점으로 활용하면 보안과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또, 기후변화로 DMZ 내 콩 수확량이 크게 줄면서 대체 작물이 필요한데, 의료용 대마가 대안이 됐다.”

의료용 대마 재배 외에 또 어떤 사업을 하나.

“KIST 천연물연구소와 함께 항암제와 CBD를 병용해 차세대 항암 신약 개발을 위한 전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CBD와 화학항암제 에토포사이드(Etoposide)를 병용해 진행한 세포·동물실험에서 비소세포폐암 세포 사멸이 촉진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두 약물이 세포 성장과 단백질 생성에 관여하는 신호 경로를 차단해 비소세포폐암 세포 생존율을 낮추는 원리다. 비소세포폐암은 암세포가 큰 폐암으로, 폐암의 85%를 차지한다.

또한 CBD 성분이 염증성 장 질환 치료 효과도 관찰돼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제약사와 공동 진행한 전임상 연구에서는 간암, 대장암, 췌장암 등도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항암제를 상용화하려면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관련 법으로 제한돼 있다. 국산 CBD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임상시험은 필수다.”

국산 CBD가 개발되면 또 어떤 장점이 있나.

“CBD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면 환자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 된다. 한국은 2019년 에피디올렉스를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수입 약품인 탓에 한 달 약값이 3000만원에 이르고, 보험 적용도 까다롭다. CBD 자체로도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다. 실제로 미국 이스턴미시간대 연구에 따르면,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한 뒤 7년간 미국 건강보험 시장에서 의약품 지출이 평균 22% 감소했다. CBD가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나 고가 항경련제 처방을 대체한 것이다.”

해외 기업·기관과 협력 중인 곳이 있나.

“물론이다. 호주 기업과는 정신 질환 치료제 공동 연구를, 일본 칸나테크(CannaTech)와는 CBD 제품 제조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해외 기업과 협력을 확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목표가 있다면.

“의료용 대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점차 변하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CDB는 마리화나로 불리는 대마와는 전혀 다른 종류다.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거나 위험한 성분이 아니라, 질병 치료와 산업적 가치가 있는 안전한 소재다. 국산 자체 기술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시장 선점에 힘쓰겠다.” 

염현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