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발표된 부동산 안정화 대책은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벌여온 부동산 변동성과 전쟁에서 또 한번의 중대한 분기점을 맞이했음을 알린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핵심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광범위하게 지정한 이번 대책은 현 정부가 내놓은 가장 공격적인 수요 억제형 개입이다.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그리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수도권의 광활한 지역을 포괄하며, 사실상 ‘수도권 전면 통제’ 수준의 정책으로 평가된다.
이번 대책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자산이 부족한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게 불균형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이다. 대출이 엄격히 제한되면서 이 정책이 ‘사다리 걷어차기’ 로 작용하고, 주택 소유를 현금 부자의 특권으로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거래가 급감하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해 가격은 오히려 완고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역사적으로 특정 지역의 수요를 억제하면 투기 자본이 인접한 비규제 지역으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도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10·15 대책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모든 주요 수요 억제 정책이 거의 동일한 반발에 직면했다. 이는 한국 부동산 정책의 근본적 긴장을 보여준다. 즉,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쓰인 도구가 동시에 중산층의 사회적 이동을 막는 장벽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10·15 대책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6·17, 12·16 대책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며, 그때와 마찬가지로 생애 최초 구매자 피해, 풍선 효과, 거래 절벽이라는 비판이 반복된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특정 대책이 아니라, 투기 수요와 정당한 열망 수요를정밀하게 분리하지 못하는 정책 패러다임 자체의 한계에 있다. 공급 확대와 세제 개편이라는 근본적 전환이 병행되지 않는 한, 향후 모든 수요 억제책은 동일한 정치·사회적 딜레마를 재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는 통제 불능의 부동산 시장이 야기할 시스템 리스크로부터 경제를 방어해야 한다는 책무가 있다. 이번 대책은 일부 시장 참여자에게 단기적 불편을 주더라도 장기적 금융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처방이다. 부채 의존형 주택 매수로 인한 서울 아파트 거품이 국가 전체의 거시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책 비판자가 ‘접근의 공정성’을 문제 삼지만, 10·15 대책의 본질은 ‘시스템 위험관리’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책이 지속 가능한 정책 신뢰 위에서 작동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정치적 주기를 넘어서 장기적 프레임워크를 구축하지 못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면 가격이 급등하고, 다시 냉각을 위해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면 경기 둔화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번 대책 또한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변수와 얽히며 정책 신뢰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가격전망지수(CSI)는 실제 가격보다 약 8개월 선행하며, 기대 심리가 강하게 형성될수록 실수요와 투기 수요가 함께 유입돼 ‘자기 실현적’ 가격 상승이 발생한다. 10월 CSI는 122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과거 대책이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기대를 꺾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일관된 기조로 ‘버텨도 소용없다’는 신호를 주지 않는다면, 냉소적 시장 심리를 제압하기 어렵다. 정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말릴 경우, 시장은 다시 ‘버티면 이긴다’는 학습 효과로 회귀할 것이다.
최근 일부 전문가는 공급보다 보유세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금 서울 아파트는 더 이상 ‘주거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는 갈아타기를 통한 자산 파킹(asset parking) 수단으로 변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단순한 공급 확대만으로는 투자 수요를 잠재우기 어렵다. 원론적으로 보유세가 2000년대 초반부터 충분히 높았다면, 지금의 폭등은 일정 부분 억제됐을 것이다. 보유세는 미래의 세 부담이 현재 가격에 반영되는 ‘보유세 내재화(property tax capitalization)’ 구조를 통해 시장 기대를 조정한다. 그러나 단기간 급등한 시점에 보유세 인상은 조세 부담 증가를 넘어 가계 유동성 전반을 흔드는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질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세금이 인상되면 소비 위축과 현금 흐름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거시적 리스크로 전이된다.
결국 부동산 정책의 성패는 ‘조세의 크기’ 가 아니라 ‘신뢰의 일관성’에 달려 있다. 정부는 세율 조정보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 설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장은 일시적 충격보다 일관된 방향과 메시지의 신뢰성을 더 무겁게 평가한다. 무엇보다 정책 신뢰는 여야 간 정치적 합의, 사회적 공감대 그리고 여론의 방향성과 합치(consisten-cy with public sentiment)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부동산 정책의 진정한 안정은 세율의 높낮이가 아니라, 국가의 제도적 일관성이 시장과 시민의 신뢰 속에 내재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