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쿠하리멧세에서 열린 ‘제8회 개호·복지 엑스포(EXPO) 도쿄’. 2 제8회 개호·복지 엑스포(EXPO) 도쿄에는 AI를 활용한 스마트 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3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인 긴모쿠세이 입구. 4 긴모쿠세이 내부에 있는 매점. /최인한
1 마쿠하리멧세에서 열린 ‘제8회 개호·복지 엑스포(EXPO) 도쿄’. 2 제8회 개호·복지 엑스포(EXPO) 도쿄에는 AI를 활용한 스마트 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3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인 긴모쿠세이 입구. 4 긴모쿠세이 내부에 있는 매점. /최인한
일본은 초고령사회 20년이 지나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다. 개호(介護·돌봄)가 필요한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급증하고, 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젊은 인력이 부족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사회 현상을 일본에선 ‘2025년 문제’라고 부른다. 2025년 기준 일본 내 후기 고령자는 2124만 명을 기록해 전기 고령자(65~74세·1495만 명)를 앞선다. 80세 이상도 1289만 명(10.4%)에 달한다. 도쿄 및 수도권에서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을 운영하는 ‘긴모쿠세이(銀木犀)’의 후모토 신이치로 우라야스점 소장은 “지방 소재 고령자 거주 시설(이하 시설)은 입주 희망자가 많아도 간병 인력이 부족해 문을 닫는 곳이 늘고 있다” 라며 “외국인 노동자 도입 확대와 시설 정보기술(IT)화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했다. 초고령사회 20년을 맞은 일본 실버산업의 최신 트렌드 두 가지를 소개한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개방형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 인기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진 ‘잃어버린 30년’ 기간에도 노인 간병 시장은 지속 성장했다. 민간에서 제공하는 시니어리빙, 주야간보호센터, 방문 요양·간호·목욕, 복지용품 대여 등 간병 시장은 일본 공적 개호 보험의 총비용 기준 2000년 3조6000억엔(약 33조8870억원)에서 2023년 11조5000억엔(약 108조2500억원)으로 세 배 이상 확대됐다. 소득과 건강 상태에 따라 수십 종에 달하는 시설 중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이 특히 가파른 성장세다. 그 가운데 지역 커뮤니티와 교류를 늘린 ‘긴모쿠세이’는 소비자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긴모쿠세이는 입주자의 자유의지와 인격을 존중하는 ‘고령자 주택’으로 유명한 곳이다. 시설 인근 주민과 다양한 교류 활동을 하는 지역 개방형 시설을 지향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은 ‘자기 집’처럼 자유롭게 살면서 상주 간호사로부터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다. 

최근 방문한 도쿄 인근 지바현 우라야스에 있는 긴모쿠세이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열려있었다. 조용한 동네에 있는 고령자 주택 입구는 예쁜 정원으로 꾸며졌고, 담도 대문도 없다. 우라야스점은 1인용 40실, 2인용 2실 등 총 42실 규모다. 주택에 입주할 때 보증금이 없으며 월 사용료는 1인실 26만~28만엔(약 244만~264만원), 2인실은 44만엔(약 414만원) 수준이다. 우라야스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른쪽 안쪽의 작은 매점이 눈길을 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각종 막대 사탕과 과자가 잔뜩 진열돼 있다. 어릴 때 초등학교 인근에서 보던 정겨운 구멍가게 모습이다. 현재 운영 중인 10여 개의 긴모쿠세이에 내부에는 과자 매장이 있다. 후모토 소장은 “초·중학교 하교 시간이 되면, 많은 아이가 떼를 지어 가게로 몰려온다”라며 “아이들은 구입한 과자를 들고 머뭇거림 없이 시설로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주택 1층 공유 공간에서 놀이터처럼 시끄럽게 뛰어놀고, 입주 중인 고령자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관리 책임자인 후모토 소장에게 시설의 운영 방침을 들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운 입주자가 있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자 침대에서 딸과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담배를 피우는 영상을 보여줬다. 이 노인은 평소 “죽기 전까지 즐기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몸 상태로 보면, 병원에 입원해야 했으나 금연 및 외출 금지가 싫어서 긴모쿠세이를 자기 마지막 거처로 선택했다. 긴모쿠세이에는 치매 노인도 몇 명 있지만, 이들도 외부 출입이 완전히 자유롭다. 그렇다고 혼자 내보내는 건 아니다. 직원이 외출하는 입주자의 뒤를 멀리서 따라가며 안전 상황을 지켜본다. 대부분 치매 노인은 주택에서 일정 거리를 벗어나 모르는 장소에 이르면 가던 길을 멈춘다. 그럴 때 다가가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대부분 순순히 응한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자기답게’ 살다가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입주자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준다는 게 긴모쿠세이의 기본 철학이다.

AI 활용한 ‘스마트 간병’ 대중화 시대

10월 1~3일 마쿠하리멧세에서 열린 ‘제8회 개호·복지 엑스포(EXPO) 도쿄’ 전시장 곳곳에는 인공지능(AI) 제품 안내 표지판이 경쟁적으로 내걸렸다. 노인 간병, 노화 예방 및 치료, 고령자 건강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IT 신제품을 만났다. 개호 경비 센서, 청소·운반 로봇부터 간병 현장을 지원하는 스마트 돌봄 제품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개호용품 및 기기, 개호 정보통신기술(ICT), 디지털 전환(DX), 경비 서비스, 인력 관리, 방문 간호, 장애인 지원 서비스 업체가 참가했다. 눈에 띄는 신제품을 소개한다.

디바이스 언리미티의 개호 경비 시스템 RX-5. /디바이스언리미티
디바이스 언리미티의 개호 경비 시스템 RX-5. /디바이스언리미티

디바이스 언리미티드(Devices unlimited)는 ‘개호 경비 시스템 RX-5’를 선보였다. 고령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조짐이나 조명의 변화, 방에서 발생하는 소리, 출입 등을 고성능 센서로 실시간 체크하는 제품을 개발했다. 입주자에게 안전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사고 조짐’을 미리 발견해서 낙상 등의 리스크를 방지한다. 시설에 근무하는 직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입주자 안전을 확실히 지키는 게 목적이다. 

트리토스의 스마트 개호 침대. /트리토스
트리토스의 스마트 개호 침대. /트리토스

옴론이 개발한 서비스 로봇 트리토스(Tritoss)는 안내, 경비, 청소용 복합 로봇이다. 로봇 혼자서 청소, 경비, 시설 안내를 안전하게 수행하는 ‘스마트 직원’ 역할을 한다. 클라우드 연결을 통해 로봇의 업무 수행 현황과 영상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관리실에서 원격 조작과 이력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고령자가 누운 상태에서 체력 훈련을 하고 안전 경비 시스템이 가동되는 ‘스마트 개호 침대’도 주목받았다. 야간이나 직원이 없을 때도 센서가 입주자 상태를 상시 체크하고 침대를 벗어날 때는 관리 직원에게 즉각 통보한다. 고령자의 심박수, 혈중 산소의 변화를 24시간 모니터링해 사고의 조기 발견과 예방에 기여하는 제품도 나왔다. 

AI 카메라, 고령자 거주 시설 경비 시스템 바꿔

엘레콤(ELECOM)은 AI 카메라로 시설의 경비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AIX 경비솔루션’을 선보였다. 간병 현장에서 ‘인력 부족’과 ‘경비 효율’를 크게 높인 신제품이다. 이 제품은 AI 기반으로 영상을 분석해서 입주자의 행동과 사고 조짐을 체크한다. 클라우드 녹화에 따른 원격 감시를 통해 입주자의 안전을 지켜준다. 야간 순회 및 정기 점검 때 필요한 인력을 크게 줄이는 장점이 있다. 류재광 간다외국어대 외국어학부 교수는 2026년 실버산업 트렌드에 대해 “2025년 단카이 세대가 모두 후기 고령자에 진입했기 때문에 2026년부터 간병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간병 인력 부족 문제도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다양한 간병 산업 영역에서 AI를 활용한 ‘스마트 돌봄’이 더 촉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 활용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개호 정보 기반’이 2026년 도입돼 간병 업계의 디지털화가 본격화할 것”이라며 “복지용품, 간병 로봇, 각종 센서, 시설 내 간병 기록 등에 AI 접목이 확대돼 실버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