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스톡
/셔터스톡

10여 년 전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있었다. 디젤차는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배출이 적어 친환경적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던 폴크스바겐이 사실은 유럽과 각국 배출 가스 규정을 만족하기 위해 테스트 차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설치, 배출 가스양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던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이 사건으로 약 51조원의 손실을 입었으며 독일과 미국에서 아직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많은 경영 분석가는 폴크스바겐의 배출 가스 조작 사건을 기술과 윤리의 문제가 아닌, 조직 문화의 실패로 평가한다. 당시 폴크스바겐은 판매량 기준 세계 최대의 완성차 기업(현재 세계 2위)으로, 일본 도요타자동차이하 도요타)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하이브리드 차를 앞세운 도요타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폴크스바겐은 친환경 이미지와 이에 걸맞은 탄탄한 기술력을 동시에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경영진은 ‘절대 실패하지 말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최고경영자(CEO) 마트린 빈터코른(Martin Winterkorn)은 사소한 실수도 강하게 질책하는 완벽주의자였다. 폴크스바겐이 당시 처해있던 이런 외부 상황과 리더십은 조직 전체의 문화를 지배했다. 실수나 잘못, 불가능을 말하는 건 곧 무능력으로 간주됐던 것이다. 그 결과, 회사의 잘못된 선택에 구성원은 침묵했고, 최악의 조작 사건을 낳았다. 폴크스바겐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결여된 조직의 전형이었던 셈이다. 

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 - 현 IGM세계경영연구원 프로그램·콘텐츠 기획 담당, 전 모네상스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 담당
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 - 현 IGM세계경영연구원 프로그램·콘텐츠 기획 담당, 전 모네상스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 담당

심리적 안전감이란 ‘조직 내에서 자기 생각, 의견, 질문을 솔직하게 제시해도 비난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뜻한다. 에이미 애드먼드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처음 개념을 정립한 이 용어는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오늘날, 혁신을 지속해야 하는 기업 문화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심리적 안전감이 뒷받침될 때 구성원은 두려움 없이 자기 취약성을 드러내고, 그 경험을 학습의 기회로 삼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개념은 단지 학문적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구글은 성공적 팀워크의 요인을 밝히기 위해 5년간 약 180개 팀을 분석한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Project Aristotle)’를 진행했다. 분석한 모든 팀의 구성원은 학력이나 성비, 친밀도 등이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바로 구성원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정직하게 발언하고, 불완전한 아이디어도 숨기지 않았으며, 함께 논의한다는 점이었다. 구글의 연구는 심리적 안전감이 단순하게 관계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성과와 혁신 수준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이 개념을 종종 오해하곤 한다. 심리적 안전감을 단지 ‘마음 편한 분위기’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 정도로 가볍게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리더는 구성원이 심리적 안전감이 너무 높아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심리적 안전감의 표면만 본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의 진짜 핵심은 ‘편안함’이 아니라 ‘용기’다. 조금 껄끄러워질 수 있지만,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 부끄럽더라도 불완전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 용기,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용기 말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구성원에게 이런 용기를 불어넣어 직원을 혁신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이케아의 ‘고 바나나 카드(Go bananas Card)’에서 찾을 수 있다. 영어 관용구 중 ‘우리 한번 미친 듯이 놀아보자’라는 뜻의 ‘렛츠 고 바나나!(Let’s go banan-as!)’에서 유래했다. 바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미친 척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이케아의 구성원은 이 카드만 내밀면 된다. 카드에는 CEO의 서명이 적혀 있어 별도 승인 없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바로 옮길 수 있다. 이 아이디어가 실패해도 인사 평가에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도전 자체로 존중받는다. 직원은 미친척 자신이 생각한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만 하면 된다.

이케아 고 바나나 카드는 전 세계 이케아 매장의 약 90%를 운영하고 있는 예스퍼 브로딘(Jesper Brodin) 잉카그룹 CEO가 고안한 것이다. 그는 구성원에게 카드를 배포하면서 “실수하더라도 미리 용서하며 내가 함께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리더가 직접 ‘실수 면허’를 줬으니, 직원은 무서움 없이 자기의 생각을 낼 수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브로딘 CEO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고 바나나 카드를 통해 나온 여러 아이디어는 실제 비즈니스 결정으로 이어졌다. 최근 몇 년간 이케아가 선보인 다양하고 재미있는 마케팅과 참여형 행사를 보면, 그 영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2024년 진행한 이케아의 글로벌 캠페인 ‘오늘도 잘 자요!(Sleep Well!)’는 잠옷(파자마)을 입고 매장에 오면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색다른 체험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캠페인 첫날에만 약 1500명이 파자마 차림으로 이케아 매장을 찾았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케아 본사 스웨덴에서는 더 큰 규모의 캠페인을 열었는데, 수면의 중요성과 더 나은 수면을 돕는 제품의 출시를 알리기 위해 2051명의 직원이 파자마를 입고, 스웨덴 엘름홀트의 이케아 뮤지엄 앞마당에 모였다. 이 행사는 잠옷 차림의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이벤트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됐다. 

심리적 안전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조직이 느슨해지고, 성과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리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심리적 안전감은 구성원의 긴장을 낮추는 요소가 아니라, 용기 있게 도전하도록 하는 에너지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찾아 나선다. 조직과 리더가 할 일은 구성원의 바로 그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케아 고 바나나 카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시도를 존중합니다. 결과가 어떻든, 당신은 우리 조직에서 안전합니다.”

과연 우리 팀, 우리 조직에는 이런 문화가 있는가. 지금 조직 구성원은 안전하게 미쳐 볼 수 있는가(Go bananas). 진짜 혁신은 절박함이 아니라 안전함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