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과 노인이 서로의 말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챗GPT
한 청년과 노인이 서로의 말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챗GPT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안전장치 없는 공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싸우거나 다치는 일이 흔했다. 아이 싸움이 어른 말다툼으로 번져 언성이 높아질 즈음, 어느 부모랄 것도 없이 내뱉던 신기한 한마디는 ‘다 같이 애들 키우는데 그만합시다’였다. 오늘 남의 아이의 억울함이 내일 내 아이의 억울함이 될 수 있다는 공감이 있었다. 공감은 관용과 포용을 거쳐 용서로 이어진다. 

60세 이상 장년층이 우리나라 인구의 30%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방으로 갈수록 장년층 비중은 급속히 높아진다. 권위에 익숙한 장년과 권위에 의문을 품는 청년과의 대화는 어렵다. 정치 성향이 다른 가족 간 대화도 어렵다. 세대 갈등, 정치 성향 차이로 대화에서 소외된 사람에게 정치는 소속감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의 극한 정치 대립은 실은 고독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한다. 고독한 사람은 다른 이의 말에 공감하기보다 고독한 사람끼리 서로 뭉쳐 다른 사람이 자기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외친다. 

신동우 나노 회장 - 케임브리지대 이학박사, 현 한양대 총동문회장
신동우 나노 회장 - 케임브리지대 이학박사, 현 한양대 총동문회장

올해 추석 명절 연휴는 길었다. 연휴를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 세운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20대 시절 가난한 나라에 이주해 40년 넘게 해외에서 살며 사업하는 고향 지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최근 그가 손자를 보았다고 알려와서 이를 축하하는 여행을 2박 3일간 했다. 그는 현지에서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낳았고, 큰 아들이 결혼하여 자기를 꼭 닮은 손자를 낳았다. 이주 40년 만에 3세대를 일구었고, 노력에 행운까지 더하여 부자가 되었다. 방문 기간 신생아를 포함한 7명의 가족과 매끼 식사하며 그의 인생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우리는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초대장과 부고를 보낸다. 하지만 이런 만남이 더 깊은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의례와 예의의 체면치레에 그친다. 결혼식에 참석하고, 장례식에 문상하고, 동창회에 얼굴 내밀고, 명절 때 선물하고,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는 것은 자발적인 공감 때문이라기보다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효율과 효능만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의례적인 만남의 횟수만큼 공감이 깊어지지는 않는다.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손자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또래 고향 손님과 대화는 그 자체로 그에게 삶의 존중과 위로가 되었다. 그는 지난 65년의 인생 스토리를 이어가고, 나는 공감하며 듣기만 했다. 그럼에도 공항에서 헤어질 때 그가 잡아준 손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심 어린 감사가 느껴졌다. 나의 방문이 그의 삶의 행복이었길 바라며 나 또한 큰 만족감을 얻었다.

가까이 지내는 이가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여 지난 30여 년간 스페인 동화 수백 편을 번역하는 일을 했다. 최근 권위 있는 평가 기관에서 그의 업적을 인정하여 아동번역문학상을 수여했다. 그 덕분에 스페인 동화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들었거나 읽었던 아이들은 공감력이 충만한 청년으로 성장하였으리라 생각하며 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어린이의 감성이 여러나라의 동화를 통하여 다양한 색채로 스미듯 젖어 있을 때 그 후 살아가면서 겪는 힘든 경험은 더 아름답고 조화로운 삶의 이야기로 바뀔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의 이야기꾼이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로 들려주듯 살아간다면 어떤 슬픔도 견딜 수 있다. 공감은 우리 인생의 행복, 성공, 희망, 위로, 응원 등 삶의 긍정적인 원동력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원천이다. 우리 대부분은 대단치 않은 보통 사람이지만 옆 사람의 말을 듣고 공감할 수는 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시간이 부족하면 우리는 고독하고 불행한 사람과 힘들게 살게 된다. 

신동우 나노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