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현 아소 국립공원에 있는 아소 아카미즈 골프장 전경. 11월부터 쇼골프가 운영한다. 전철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접근성이 강점이다. /쇼골프
구마모토현 아소 국립공원에 있는 아소 아카미즈 골프장 전경. 11월부터 쇼골프가 운영한다. 전철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접근성이 강점이다. /쇼골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끝난 뒤 한국 골프장은 ‘고가 불량(高價不良)’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주말 라운드를 하려면 1인당 30만원은 기본이다. 카트피는 렌터카보다 비싸고, 막걸리 한 병에 2만원, 달걀 프라이 하나에도 4000원을 추가로 받는다.

그린피를 낮출 생각은 없다. “가격이 자존심”이라는 말이 버젓이 통한다. 수도권은 ‘강남 부동산’처럼 불패 신화를 믿는다. 이용객은 등을 돌리고 있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는 “비싸고 불친절한 골프는 사양한다”며 골프채를 중고 시장에 내놓는다.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23년과 2024년 내장객이 2년 연속 줄었다. 

이 변화를 미리 읽은 사람이 있다. 조성준쇼골프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골퍼들이 합리적인 가격과 서비스의 나라로 이동할 것”이라 보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는 70여 곳의 골프장을 돌아본 뒤 일본 가고시마의 ‘사츠마 골프 & 리조트’를 인수했다. 18홀 코스와 70여 객실, 온천·수영장·테니스장까지 갖춘 종합 리조트다. 수도권 골프장 한 곳의 8분의 1 수준에 인수했다. “한국에선 2~3홀 값으로 일본 골프장을 통째로 살 수 있었다. 관리 상태도 훌륭했다.”

1 사츠마 직원들이 직접 담근 김장김치를 지역 양로원에 전달하고 있다. 2 사츠마 코스를 거니는 오리. 이용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명물이자, 리조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3 조성준 쇼골프 대표. /쇼골프
1 사츠마 직원들이 직접 담근 김장김치를 지역 양로원에 전달하고 있다. 2 사츠마 코스를 거니는 오리. 이용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명물이자, 리조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3 조성준 쇼골프 대표. /쇼골프

사츠마의 기적, 현장에서 태어나다

회원은 1박 10만~12만원에 18홀 라운드, 식사, 숙박, 온천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가동률은 90%에 육박했고, 매출은 1년 만에 41%, 영업이익은 100% 늘었다. 일본 경제지 닛케이도 한국식 운영을 참고하자고 했다. ‘사츠마의 기적’이었다.

핵심은 속도와 데이터. 일본식 1시간 휴식 시간을 없애고 18홀을 연속으로 도는 ‘스루 플레이’로 바꿨다. 라운드 시간은 6시간 30분에서 4시간 30분으로 단축됐다. 체크인은 QR코드 또는 엑스골프(XGOLF) 회원 가입으로 간소화했다. 일본 회원의 반발은 없었다. 젊은 층이 오히려 환영했다.

그는 “일본 골프는 느림이 미덕이지만, 기다림 없는 하루도 서비스의 한 형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식음 서비스는 표준화를 통해 체계화했다. 한국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한 달간 상주하며 메뉴를 정비했고, 반응 좋은 메뉴만 남겼다.

한식 재주문율도 높았다. ‘된장찌개가 이렇게 깊은 맛이었나’라는 일본 고객의 리뷰는 직원 게시판의 자랑거리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이용 후기 경영’이다. 정기적으로 한국과 일본 직원이 라인(Line)으로 고객의 이용 후기를 공유한다.

칭찬과 불만이 모두 공개되고, 각 부서는 이를 KPI(핵심 경영지표)로 삼는다.

한 이용객의 ‘온천장에 빗을 비치해 달라’ 는 요청에 조 대표는 곧바로 직접 다이소에서 빗을 사 비치했다. 그 사진은 즉시 게시판과 회원 커뮤니티에 올라갔다. 그는 “요즘 고객의 언어는 정중하고 구체적”이라고 했다.

“특히 젊은 여성 회원의 피드백은 세밀하고 솔직하다. 그들의 리뷰가 직원들에게 가장 큰 동기가 된다.”

이 시스템이 자리 잡자 부서의 벽이 낮아졌다. 레스토랑, 프런트, 코스 관리, 숙박 담당이 함께 개선책을 논의했다. 사츠마는 이제단순한 골프장이 아니라, 데이터와 감성이 공존하는 ‘리빙랩(living lab)’이 됐다. 지역과 단단한 연결로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가고시마 중앙고 학생들이 재배한 무로 김장김치를 담가 지역 양로원 어르신들과 나눴다.

“일본 어르신들이 김치를 참 좋아하고 따뜻함을 느끼는 모습이 좋았다.” 이 행사는 현지 언론에도 소개됐다. 직원들은 “김치를 담그며 지역의 온기를 배웠다”고 했다. 조 대표는 “사업이 지역의 일상에 스며드는 게 지속 가능성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부킹왕에서 실무형 경영자로

조 대표는 사업 초기 ‘부킹왕’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3년 엑스골프를 창업했을 당시 그는 하루 수백 통의 전화를 걸며 남는 티타임을 확보했다. 그가 직접 모은 데이터는 곧 플랫폼이 됐다. 회원은 83만 명, 제휴 골프장은 300곳을 넘어섰다. 그의 아이디어는 미국 유학 시절 경험에서 나왔다.

마케팅 전공이던 그는 현지 부킹 사이트를 이용하며 ‘정보의 격차가 편의의 격차’가 된다는 걸 배웠다. 귀국 후 이를 한국 시장에 맞게 수정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무인화와 오락화’를 예견했다. “5060 세대의 은퇴와 2030 세대의 펀(fun) 골프가 만나면 산업구조가 바뀐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날라리 골프’라 불렀다. 형식보다 즐거움을, 경쟁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세대의 흐름이었다. 

그가 만든 쇼골프는 조명·음악·구독형 시스템을 갖추며 연습장을 놀이 공간으로 바꿨다. 그는 수치보다 현장을 믿는다. 매일 아침 직원들과 이용 후기를 함께 읽으며 “기술은 편리를 주지만, 온도를 주는 건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소 아카미즈, 두 번째 실험

그의 눈길은 이제 아소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구마모토 공항에서 차로 30분, 전철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아소 아카미즈 골프장’ 은 일본남자프로골프(JGTO) 대회가 열렸던 명문 코스다.

사츠마가 체류형이라면, 아소 아카미즈는 뛰어난 코스와 도시 접근성이 강점이다.

인근에 세계적 반도체 기업 TSMC의 기숙사와 IDC센터 설립 논의가 오가자, 그는 잔금 50억원을 앞당겨 지급하며 일정을 당겼다. “타이밍을 놓치면 대안이 줄어든다”고 했다. 

11월부터 쇼골프가 이곳을 운영한다. 사츠마의 운영 모델을 갖고 오되,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바일 체크인과 스루 플레이, 다국어 안내는 유지하고, 코스 흐름과 식음 동선은 현장 데이터를 보고 조정한다.

그는 “일본식의 섬세함과 한국식의 속도를 섞되, 비율은 현장에서 정한다”고 했다.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하지 않으려 한다. 현장의 말을 듣고 바로 고치는 게 우리 방식이다.”

엑스골프의 전화기 시절부터 사츠마의 QR 체크인까지, 그의 경영은 일관되게 실무적이다. 사츠마의 ‘일본식 70%, 한국식 30%’ 비율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아소 아카미즈에서는 또 다른 비율이 나올 수 있다. 현장이 바뀌면 답도 달라진다.

겨울의 규슈 지역은 따뜻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의 지진과 양국 간 외교 변수는 리스크다. 조 대표는 거품이 빠진 시장에서 가격과 품질의 균형을 맞추는 일, 그것이 ‘지속 가능한 기적’이라고 본다.

골프는 변하고 있다. 골프 라운드만으로 하루를 채우던 시대에서, 숙박과 회복, 이동과 기억이 겹치는 여행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플랫폼은 예약의 편의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다시 오게 하는 이유’를 설계하는 도구다. 엑스골프 앱 회원에 가입하면 일본 골프 리조트까지 체크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일본으로 확장하는 쇼골프의 실험은 그 이유를 현장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