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바닷가 도시에 살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다가 보이고, 주말이면 운동화를 신은 채 집 앞 백사장으로 가 샌드위치를 먹는 삶은 어떨지 궁금했다. 바닷가 도시에 여행을 갈 때마다 ‘이 도시는 어떨까, 이 도시에 살면 어떨까’ 생각하며 도시를 주의 깊게 염탐했다. 강원도의 몇몇 도시가 마음에 들었는데 가장 마음에 든 도시가 속초다.
멋진 서점의 도시
속초에는 좋은 서점 세 곳이 있다.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 그리고 ‘완벽한날들’이다. 1956년 ‘동아문구사’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고 책과 문구를 같이 팔던 동아서점은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키던 동아서점은 2000년대 이후 문을 닫을 정도로 어려워졌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문을 열어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붐비는 서점 가운데 한 곳이 됐다.
동아서점에 진열된 서적만 5만 권. 주인장 김영건씨가 신문 리뷰와 소셜미디어(SNS) 등을 참고해 직접 주문한 것이다. 창가에는 방문객이 편하게 책을 읽다 갈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두었다.
동아서점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문우당서림이 있다. 1984년 이민호 대표가 33㎡(약 10평) 공간에서 시작해 지금은 2층짜리 단독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속초 8만 시민 가운데 3만 명이 문우당서림 회원이라고 한다. 이민호 대표의 딸인 이해인 디렉터가 솜씨를 발휘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동명동에 있는 완벽한날들은 독립 서점이다. 서점과 게스트 하우스를 겸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사 들고 칠성조선소살롱으로 가보자. 옛 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 카페도 들어서 있고 서점도 있다. 2층,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강원도 고성의 지역 출판사가 펴낸 책 ‘동쪽의 밥상’을 읽는다. 동해안에서 나는 식재료와 음식에 대해 지역 작가가 쓴 글이다. 가자미를 비롯해 다양한 생선과 명태식해 등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책 속에 가득하다.
실향민의 애환이 서린 마을
속초를 찾는 여행객이 한번쯤 들르고 기웃거리는 곳이 청호동이다. 전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지명이기에, 속초 청호동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아바이 마을’이라고 하면 “아, 거기!” 하며 무릎을치며 너도나도 알은 체를 할 것이다.
아바이 마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전쟁 당시 남하한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함경도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왔던 민간인은 휴전이 되자 속초로 모여들었다. 한 걸음이라도 고향과 가까운 곳에 살다가 통일이 되면 한시바삐 북에 있는 고향으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처음 아바이 마을에 정착한 주민은 사람 허리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창문과 출입구만 땅 위로 내놓은 집을 지었다고 했다. 당시 청호동 지역은 임자 없는 빈 백사장이었는데, 바다와 가까워 고기잡이로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실향민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나마 집다운 집을 짓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중반. 마을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이곳에는 유독 함경도 출신 피난민이 많았는데, 골목마다 나이 든 사람을 부르는 “아바이, 아바이” 하는 소리로 가득했다고 한다. 마을이 아바이 마을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아바이 마을 거주 실향민은 함경남도 출신이 90%가량에 이른다. 이들 실향민 대부분은 1·4후퇴 때 부산 일대까지 피난 갔다가 구룡포, 후포, 울진, 죽변, 묵호, 주문진, 양양, 대포를 거쳐 청호동에 정착한 사람이다.
아바이 마을은 지난 2000년 송승헌과 송혜교가 출연한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찾아 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탔던 무동력 배인 갯배는 아바이 마을의 명물이 됐다. 지금 갯배가 있는 곳은 부월리로 불리던 곳인데 본디 중앙동 쪽과 이어진 땅이었다. 왜정 때 물길을 뚫어 청초호와 외항을 연결했는데 그때부터 물길 건너는 교통수단으로 정착된 것이 갯배다.
아바이 마을 골목길을 걸어본다. 집 안 귀퉁이에는 시든 화분이 놓여있고 그 위로 가을 햇볕이 어룽대며 내려앉는다. 담장 너머에서는 내일 날씨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가 지직거리며 흘러나오고 게으른 고양이는 볕 바른 골목 한쪽에서 졸고 있다. 그리고 이 골목길을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우체부가 지난다. 아바이 마을 바로 앞은 동해다. 마을 골목을 나와 몇 걸음만 가면 푸른 바다가 꿈인 듯 몽롱하게 펼쳐진다.
아바이 마을 앞 고가도로에 올라가면 아바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마을 풍경이 시큰하고 애잔하다. 마을의 지붕들은 서로 어울리고 마주 보며 서 있다. 떨어지지 않아야 하니까, 그래야 외롭지 않으니까, 슬픔도 덜 수 있고 기쁨도 나눌 수 있으니까. 지붕들은 서로를 껴안으려는 자세로 모여 있다.
가슴 탁 트이는 바다 풍경
속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영금정이다. 속초 YMCA와 속초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속초항 방면으로 잡으면, 속초 등대 전망대와 영금정이 나타난다. 등대 전망대는 속초 8경 가운데 하나다.
등대 전망대 건너편이 영금정이다. 작은 언덕 위에 같은 이름의 정자가 놓여 다들 이곳을 영금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금정은 동명항의 갯바위를 일컫는 말이다. 둥글둥글 갯바위를 타고 넘는 파도 소리가 가야금 소리와 같다고 해서 ‘영금’이고 정자 같은 풍류가 느껴진다고 해서 ‘정’ 자가 붙었다. 아침 일출을 조망하는 최고의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영금정에 선다. 막힘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 고개를 돌리면 속초항의 활력 넘치는 풍경과 멀리 설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중환이 속초를 두고 “이름난 호수와 기이한 바위가 많아 높은 데 오르면 푸른 바다가 넓고 멀리 아득하게 보이고 골짜기에 들어서면 물과 돌이 아늑하여 경치가 나라 안에서 참으로 제일이다”고 했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속초의 별미는 생선구이다. 속초에는 맛있는 생선구이 집이 많다. 고등어와 꽁치, 오징어, 열기, 도루묵을 숯불에 구워준다. 서울에서 먹는 생선구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촉촉하게 잘 구운 생선 살 한 점을 밥 위에 올린다.
여행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