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생 가수 겸 래퍼 릴 나스 엑스는 힙합과 컨트리를 접목한 ‘Old Town Road’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 엑스
1999년생 가수 겸 래퍼 릴 나스 엑스는 힙합과 컨트리를 접목한 ‘Old Town Road’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 엑스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그녀만 곁에 있으면~’ (컨츄리 꼬꼬 ‘오! 해피’ 중)
‘두 겹이라 맛이 두 배 진해요!’ (서태지와 아이들 출연 ‘해태 칸츄리콘’ CF 중)
1990년대 지구상에, 한반도 남쪽에 멀쩡히 존재했던 인류라면, 어쩌면 저 한 소절의 노래와 한 소절의 랩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저 두 구절의 공통점은? ‘컨츄리’ 또는 ‘칸츄리’다. 이것은 촌(村) 또는 시골의 완곡한 표현에 가깝다. 고도로 도시화한 한국 현대사회에서 조금은 구수하고 재미난 뉘앙스로 쓰이는 말이다.

#“와, 또 컨트리 밴드야? 역시 그래미는 진짜 미국 시상식이라니까. 힙합, R&B가 아무리 득세해도 그래미 시상식 축하 무대에선 컨트리 음악(이하 컨트리)이 안 빠지지. 한국으로 치면 전통 가요, 트로트랄까.” (그래미 어워드 중계를 보던 지인 A씨)

그러나 컨트리에서 늘 ‘꼬순내(고소한 냄새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만 나는 것은 아니다. 컨트리는 더 이상 촌 음악도, 과거 유산도 아니다. 여러 번의 ‘새로고침’을 거쳐 팝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최신 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2020년대 들어 현재까지 불고 있는 ‘영 컨트리(young country)’ 열풍을 보면 가히 허리케인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2023년 1993년생 컨트리 가수 모건 월렌은 ‘Last Night’로 영국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의 솔로 아티스트 최장 기록을 깨고 16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머물렀다. 이듬해인 2024년에는 1995년생 샤부지가 ‘A Bar Song(Tipsy)’으로 19주간 이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모든 세대, 모든 가수를 통틀어 최장기 정상 기록 동률에 이르렀다. 샤부지가 타이를 이룬 곡은 2019년, 1999년생 가수 겸 래퍼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 이 곡도 힙합과 컨트리를 접목해 신드롬을 일으킨 노래다. 10월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모건 월렌, 루크 컴스 등의 컨트리 아티스트가 팝, 힙합, R&B,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섞여서 각축을 벌이는 중이다. 컨트리는 왜 나이 들지 않는가.

일단 컨트리의 나이는 100세에 가깝다는사실부터 알아두자. 미국 남동부 애팔래치아 산기슭 등지에서 유럽과 아프리카 민속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전통을 흡수하며 성장한 ‘힐빌리(hillbilly·두메산골 촌뜨기) 뮤직’은 1920년대 라디오의 대중적 보급과 함께 컨트리 앤드 웨스턴, 또는 컨트리라는 이름으로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시작한 ‘그랜드 올 오프리’라는 쇼 겸 라디오 프로그램의 역할이 지대했다. 흥겨운 리듬, 흡입력 있는 선율에 삶의 고단함이나 연애 감정 따위를 실어 나른 이 북미의 이종교배 팝송. 따라 흥얼거리거나 맞춰 춤추길 원하는 다양한 세대의 남녀노소를 사로잡았다.

1940년대, 빌보드가 컨트리 차트를 만들면서 컨트리는 어엿한 팝 음악 장르로 시장에서 무게감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1950년 패티 페이지가 발표한 ‘Tennessee Waltz’의 대히트는 그 파괴력을 제대로 보여줬고, 1960·70년대엔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록 음악의 부상에도 컨트리가 되레 상업적 팝 장르로서 자기 입지를 세워갔다.

미국 순혈주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컨트리는 사실 태생부터 ‘잡종’이었다.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통기타를 든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블루스와 포크는 물론이고 멕시코와 하와이 음악이 섞여 뼈대를 굳혀 나갔다. 재즈의 스윙을 품고 빅밴드 재즈 장르와 춤판 대결을 벌이는가 하면, 때론 전기기타와 로큰롤과 반항 정신을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미국인의 취향을 먹어 치우고 정서적 영토를 확장해 나간 것이다. (올해 5월 국내에도 개봉한 라이언 쿠글러(‘블랙 팬서’ ‘크리드’ 감독) 감독의 영화 ‘씨너스: 죄인들’ 을 보면 아일랜드인의 포크와 흑인의 블루스가 대립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극의 배경이 된 1930년대 미국의 문화 혼재 현상에 대한 은유적 퍼즐처럼 기능한다.)

임희윤 문화평론가 -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 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임희윤 문화평론가 -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 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1940년대, 빌보드가 컨트리 차트를 만들면서 컨트리는 어엿한 팝 음악 장르로 시장에서 무게감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1950년 패티 페이지가 발표한 ‘Tennessee Waltz’의 대히트는 그 파괴력을 제대로 보여줬고, 1960·70년대엔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록 음악의 부상에도 컨트리가 되레 상업적 팝 장르로서 자기 입지를 세워갔다. ‘내슈빌의 전통적 정서’에 머무르길 거부하고 음악과 서사의 지평을 넓힌 반항아, 즉 ‘아웃로 컨트리(outlaw country)’ 장르는 1970·80년대 조니 캐시, 윌리 넬슨 같은 아이콘을 배출하면서 록 밴드나 포크 싱어송라이터에 견줄 만한 음악의 횃불로 컨트리의 외연을 확장했다.

한편으론 1970년대 팝과 소프트 록의 상업성을 한껏 껴안은 돌리 파턴, 존 덴버, 올리비아 뉴턴존 같은 스타가 시장을 수놓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카우보이모자를 쓴 록스타, 가스 브룩스의 화려한 등장과 함께 새로운 주목을 받았다. 토비 키스, 슈나이어 트웨인, 페이스 힐, 리앤 라임스 등의 컨트리 팝(country pop)은 컨트리의 경계선을 흐물흐물하게 만들면서 뉴 밀레니엄도 통과해 밀리언 셀러의 시대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2010년대에도 크리스 스테이플턴, 스터질 심슨,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등의 신세대 스타가 등장하면서 레드 카펫의 끝을 연장했다.

컨트리 가수 시절의 테일러 스위프트./ 엑스
컨트리 가수 시절의 테일러 스위프트./ 엑스
21세기 컨트리 팝의 존재감을 말할 때 물론 테일러 스위프트가 빠져선 안 된다. 스위프트는 10대 때 아예 컨트리의 고장인 내슈빌로 이주한 뒤, 컨트리 송을 작곡하고 부르면서 스타의 꿈을 꿨다. 스위프트는 2014년 앨범 ‘1989’을 전후해 코스모폴리탄 팝 사운드로의 변화를 선언했지만, 그 후 현재까지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실험하면서도 선율·화성·리듬 구조에 초기 컨트리 팝의 흔적이 화석처럼 여전히 남아 있다.

 2 컨트리는 1990년대에 카우보이모자를 쓴 록스타 가스 브룩스의 화
려한 등장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았다. / 엑스
2 컨트리는 1990년대에 카우보이모자를 쓴 록스타 가스 브룩스의 화 려한 등장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았다. / 엑스
가장 미국적인 장르이지만 세계의 음악 흐름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온 컨트리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남성 중심적, 보수주의적이라는 메시지의 한계도 극복 중이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비욘세의 ‘Cowboy Carter’는 컨트리가 특정 인종, 젠더, 문화권의 전유물이 아님을 천명했다. 앞서 2019년 그래미에서 같은 상을 거머쥔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The Golden Hour’는 트럭 운전사나 카우보이 이야기가 아닌 여성의 서사가 컨트리 팝의 중심축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마침 머스그레이브스는 12월 4일 첫 내한 공연을 한다. 컨트리의 상징과 같은 쇼 ‘그랜드 올 오프리’는 1925년 11월 28일 시작했으므로 이제 정확히 100주년을 맞는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고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끝내 되레 폭발을 거듭한 컨트리의 100년사를 돌아보며, 미래 100년의 음악 풍경은 어떨지 아득히 상상해 본다.
임희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