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폴린 - GRC 최고경영자(CEO), 미 코넬대 전기공학, 전 슈나이더 일렉트릭 부사장, 데이터이코노미 ‘미래 100인’ 선정, 데이터센터 업계 경력 30여 년 /사진 GRC
피터 폴린 - GRC 최고경영자(CEO), 미 코넬대 전기공학, 전 슈나이더 일렉트릭 부사장, 데이터이코노미 ‘미래 100인’ 선정, 데이터센터 업계 경력 30여 년 /사진 GRC
인공지능(AI)이 진화할수록 데이터센터는 더 뜨거워지고, 냉각에 드는 전력 비용도 치솟고 있다. 24시간 연산을 멈추지 않는 AI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열을 식히는 데만 데이터센터 전력의 40%가 소모된다. 서버의 집적도와 발열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서, 공기로 열을 식히는 기존 공랭식 팬(fan)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버 전체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 유체에 담가 식히는 ‘액침 냉각(Immersion Cool-ing)’ 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공기 대신 열전도율이 높은 액체를 사용해 서버의 열을 직접 흡수·순환시키는 방식으로, 복잡한 설비가  필요 없어 유지 비용이 적은 차세대 표준냉각 기술로 꼽힌다. 16년 전 업계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액침 냉각을 상용화한 미국 GRC(Green Revolution Cooling) 피터 폴린(Peter Poulin)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AI 서버의 폭발적인 증가로 향후 2~3년 내 액침 냉각 시장이 50~100%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GRC가 주력하는 ‘1상(싱글페이즈)’ 액침 냉각은 서버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한 액체에 그대로 담가, 액체가 직접 열을 흡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뜨거워진 냉각유는 다시 냉각 장치로 보내져 식은 뒤 순환되기 때문에, 복잡한 냉매 증발 과정 없이 단순한 구조로 안정적인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폴린 CEO는 “1㎿(메가와트) 규모 데이터센터에 GRC 솔루션을 적용하면, 연간 75만달러(약 11억원)의 전력비를 절감할 수 있다”며 “일반 공랭식 데이터센터의 평균 전력사용효율지수(PUE)는 1.7 수준이지만, GRC는 실제 고객사에서 업계에서 드문 수치인 1.06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PUE가 1에 가까울수록 전력 효율이 높다는 의미다.

GRC는 최근 한국 시장에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LG전자, SK엔무브와 삼자 업무협약(MOU)을 통해 GRC의 탱크, LG전자의 칠러 등 냉각 솔루션, SK엔무브의 유체를 결합한 통합 데이터센터 솔루션 개발을 추진 중이다. 폴린 CEO는 “이는 GRC의 가장 큰 차별점인 ‘파트너 생태계’ 전략의 핵심”이라며 “고객사가 서로 다른 기업의 장비와 소재를 따로 구매해 조립하는 위험 부담 없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호환되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린 CEO는 또 ‘AI 데이터센터 투자 거품’ 우려에 대해 “향후 5년간 그 위험은 매우 적다”며 “인터넷 버블과 달리, 지금 시장의 제약 요인은 거품이 아니라 전력 확보 문제”라고 진단했다. “전력 인프라가 일종의 조절 장치 역할을 하며 시장의 과열을 스스로 억제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2016년부터 GRC를 이끌고 있는 폴린 CEO는 코넬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30여 년간 데이터센터 산업에 몸담아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냉각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AI 서버는 기존 IT(정보기술) 장비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연산 밀도가 높아질수록 열도 함께 늘어나는데, 지금 공랭식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 과거에는 냉각이 전력 절감을 위한 ‘보조 시스템’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AI 서비스의 지속성과 직결되는 핵심 인프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가 액침 냉각 수요를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운영사가 이미 파일럿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

GRC는 업계에서 액침 냉각을 일찌감치 상용화한 기업이다. 기술적으로 어떤 차별점이 있나.

“GRC는 2009년 업계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액침 냉각 솔루션을 상용화한 이후, 지금까지 20여 개국에서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단순히 냉각 장비를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탱크 설계, 냉각유 관리, 제어 시스템까지 직접 설계·통합하는 것이 강점이다.

우리가 채택한 ‘1상’ 구조는 냉매가 끓거나 증발하지 않아 시스템이 단순하고 안정적이다. 유지·보수가 쉽고, 기존 데이터센터 인프라에도 손쉽게 적용할 수 있어 새로운 설비로 전면 교체할 필요가 없다. 또 GRC가 운영하는 ‘일렉트로세이프’ 인증 프로그램을 통해 검증된 냉각유를 사용해 절연성과 안전성을 확보했다. 이런 점이 GRC가 장비 신뢰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최근 방한한 (오른쪽 두 번째부터) 피터 폴린 GRC CEO가 이재성 LG전자 ES사업본부장, 남재인 SK엔무브 그린성장본부장과 함께 LG전자 칠러사업장 내 AI 데이터센터 전용 테스트베드에 설치된 액침 냉각 솔루션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LG전자
최근 방한한 (오른쪽 두 번째부터) 피터 폴린 GRC CEO가 이재성 LG전자 ES사업본부장, 남재인 SK엔무브 그린성장본부장과 함께 LG전자 칠러사업장 내 AI 데이터센터 전용 테스트베드에 설치된 액침 냉각 솔루션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LG전자

실제로 GRC 솔루션을 도입한 고객사에서는 어떤 성과가 있었나.

“가장 오래된 고객사는 15년 이상 GRC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이 고객사는 사업이 성장하며 건물에 공급되는 전력량의 한계에 부딪혔는데, 막대한 돈을 들여 새 변전소를 짓는 대신 액침 냉각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기존 공랭식 냉각에 쓰이던 전력을 서버(컴퓨팅)에 재할당함으로써, 변전소 증설 비용을 아끼고 더 많은 서버를 도입할 수 있었다.

미국 공군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여러 정부 기관과 대형 클라우드 기업도 GRC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고객사는 냉각 효율뿐 아니라 유지·보수비 절감, 장비 안정성, 공간 활용도 측면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체감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공기를 식히는 기존 팬 방식은 소음과 진동, 필터 관리 등 부가 비용이 적지 않지만, GRC의 시스템은 팬이 필요 없어 액체의 열전도율이 높아 훨씬 조용하고 효율적이다. 또한 냉각유는 절연성이 높아 장비 손상 우려가 없고, 데이터센터의 수명과 동일하게 지속된다.”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부품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다. 가속기 한 대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GPU 서버를 액체에 담갔다가 고장 날 경우, 엔비디아의 공식 보증(워런티)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워런티 리스크’가 액침 냉각 시장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액침 냉각에 대한 완전한 보증 지원이 부족한 것은 시장 성장의 제약 요인인 것이 맞다. 하지만 GRC는 이것이 ‘일시적인 제약’이라고 확신한다. 엔비디아가 제공한 테스트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최근 일부 서버 OEM(주문자 수탁 생산) 업체가 자사의 엔비디아 GPU 서버에 대해 완전한 보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한, OEM 업체가 직접 보증을 제공하지 않는 서버에 대해 (보험 같은) 제삼자 서비스 제공 업체가 보증을 제공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엔비디아만이 액침 냉각 시장의 유일한 성장 동력은  아니다. AI 추론이나 다른 에지 애플리케이션(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데이터 발생 현장 인근에서 처리하는 애플리케이션)처럼 엔비디아 GPU에 의존하지 않는 활용 사례도 많다.”

최근 한국 기업과 협력이 활발하다.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나.

“LG전자, SK엔무브와 협력해 액침 냉각 통합 솔루션을 실증하고 있다. LG는 냉각 장비와 제어 기술, SK엔무브는 냉각유, GRC는 탱크와 시스템 설계를 맡고 있다. 세 회사가 각사의 전문 영역을 결합해, 처음부터 완벽히 호환되는 통합형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한국은 데이터센터 안전 기준이 매우 엄격한 시장이다. 이에 GRC는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S-Oil)과 함께 차세대 냉각유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시장의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 냉각유를 생산하고, 향후 글로벌 시장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최지희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