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게 소주는 더 이상 낯선 술이 아니다. 온라인에서는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마시며 술 게임을 즐기는 외국인의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인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를 통해 소주에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국의 술 문화 자체를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K-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전부터 이미 해외에서는 한국식 술집이 조용히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10여 년간 자리를 지켜온 ‘소주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소주하우스는 한국 젊은 층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실내 포차(포장마차)형 술집으로, 스테인리스 원형 테이블과 간이 의자 등 포차의 분위기를 그대로 뉴욕에 옮겨 놓았다. 이름에 걸맞게 진로, 참이슬, 처음처럼 등 한국의 주요 소주 브랜드도 모두 마련해 뒀다. 어쩌다 고급 술집이 즐비한 맨해튼 한복판에 K-포차가 자리 잡게 됐을까. 최근 소주하우스의 문준호(54) 대표를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뉴욕에 맞게 진화한 한국식 실내 포차
문 대표는 “바(Bar) 문화가 깊게 자리 잡은 뉴욕에서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소주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당시 맨해튼 한인타운을 주름잡던 ‘3rd 플로어 카페’에서 일하며 요식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03년, 문 대표는 자신이 일하던 3rd 플로어 카페를 인수한 뒤 맨해튼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한식 바비큐 레스토랑 ‘너비아니’, 두부 전문점 ‘두부하우스’, 칵테일 바 ‘무색’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그는 여러 매장을 운영하며 전 세계 젊은 층이 모이는 뉴욕 시장에서 라운지 바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고, 이에 한국식 포차 콘셉트를 접목한 소주하우스를 구상했다. 하지만 소주하우스는 단순히 한국의 술 문화를 뉴욕에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문화와 한국 문화를 조화롭게 융합했다. 포차를 상징하는 가구를 배치하되, 모던한 감각을 선호하는 뉴요커를 겨냥해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뉴욕의 일반 바와 다름없이 세련되게 디자인했다.
2 소주하우스에서 판매 중인 술과 음식들. 한국 맥주 카스와 소주 한라산,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마른오징어, 육회 등이 눈에 띈다. /사진 소주하우스
문 대표는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심플함을 인테리어에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고 말했다. 조명 하나도 허투루 고르지 않았다. 그는 “조명의 모양, 밝기, 위치까지 모든 요소를 세심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스테인리스 원형 테이블 위에는 고깔 모양의 주광색 전구를 설치해 음식이 더욱 맛있어 보이게 할 뿐 아니라, 고객이 마주 앉은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메뉴판에서도 한국의 뿌리를 뉴욕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려는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소주하우스는 다양한 종류의 한국산 희석식 소주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홍차, 자몽, 유자, 코코넛 등 현지인에게 인기 있는 재료를 소주와 섞은 ‘소주 칵테일’도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Z 세대가 열광하는 말차를 활용한 ‘말차 하이볼’도 새롭게 선보였다. 문 대표는 “단순히 한국식 술집으로 밀고 나가기보다 현지인의 니즈, 성향, 술 문화 등 라이프스타일을 깊이 이해하고 그 속에 자연스럽게 한국의 술 문화를 녹여내고자 했다” 고 했다.
골뱅이무침, 국물닭발 등 한국식 소주 안주 총집합
한국에서 소주와 맛깔난 안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세트인 만큼, 소주하우스를 소주와 잘 어울리는 다양한 한국 요리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문 대표는 “소주하우스는 ‘소주에 어울리는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주하우스에는 골뱅이무침, 곱창볶음, 시래기감자탕, 국물닭발 등 소주 안주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한식 메뉴가 총집합해 있다. 들깨 오일 파스타처럼 현지 식문화와 한국 식재료를 접목한 퓨전 메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초창기에는 한국 유학생이 주 고객층이었던 소주하우스는 이제 현지의 ‘핫플’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전체 고객 중 외국인이 절반을 차지하고 교포와 유학생 등 한국계가 나머지 절반을 이룬다. 문 대표는 “외국인이 한국 드라마에서 본 소맥을 매장에 와서 직접 만들어 마시거나, 소주잔을 꺾어 마시기도 한다”며 “한국식 술 게임을 즐기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소주하우스를 단순히 한국 술과 음식을 알리는 공간을 넘어, 고객이 즐거움을 찾기 위해 찾아오는 장소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생일 고객에게는 맞춤 음악과 조명을 연출하고 초를 불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매년 12월 31일에는 고객과 함께 카운트다운 행사를 여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고객이 즐거운 경험을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직원 채용 시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삼는다.
소주하우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인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문 대표는 접근성이 좋은 도시를 중심으로 매장을 확장할 계획이며 우선은 뉴욕 인근 보스턴에 ‘소주하우스 2’를 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는 “뉴욕을 기반으로 27년 넘게 외식업에 종사해 왔다”며 “소주하우스뿐 아니라 우리의 다른 브랜드도 시장 확장을 준비 중이다. 술을 함께 마시며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외국인에게도 전달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