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31일 APEC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면담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31일 APEC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면담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올 3분기 12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의 경쟁력이 회복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던 사업지원TF(태스크 포스)에 대해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한 것을 두고 이재용 회장이 본격적인 미래 준비에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는 삼성의 이인자로 불렸던 정현호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데다 사업지원TF가 사업지원실이라는 상설 조직으로 개편되면서 삼성전자가 내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예년보다 빨라진 전격적인 인사에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 계열사 고위 임원의 연쇄 이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11월 7일 삼성전자는 사업지원실 사장단과 임원 위촉 업무 변경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정 부회장이 삼성전자 회장 보좌역으로, 박학규 사장이 삼성전자 사업지원실장으로 위촉됐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진단실장(사장)은 사업지원실 전략팀장에 선임됐고 주창훈 부사장은 사업지원실 경영진단팀장을, 문희동 부사장은 사업지원실 피플팀장을 맡았다.

정 부회장은 1983년 삼성전자 국제금융과로 입사해 경영관리그룹장, 전략기획실 상무, 무선사업부지원팀장,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 등을 지냈다.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이었던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한 미래전략실 해체로 삼성을 떠났으나 같은 해 11월 사업지원TF장으로 삼성전자에 복귀했다. 이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면서, 그룹 차원의 의사 결정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을 때 정 부회장이 각종 현안과 주요 사업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의 이인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8년 전 해체된 미래전략실 뒤를 이었던 사업지원TF는 사업지원실로 상설 조직화되고 첫 실장은 박학규 사업지원TF 사장이 맡는다. 박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재무 전문가로, 반도체·모바일·가전·IT서비스 등 주요 사업군을 두루 경험해 전체 사업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꼼꼼한 업무 처리와 리스크 관리 능력도 강점으로 꼽히며, 미래전략실과 DX(완제품) 부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치며 이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1964년생인 박 사장은 청주고등학교,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소프트웨어 분야를 연구하고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 진학해 경영과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경리팀으로 입사한 박 사장은 멕시코 법인, VD사업부 지원그룹장 등을 거쳐 2013년 무선사업부 지원팀장을 맡으려 부사장직에 올랐다.

2014년 5월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7년 3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한 미래전략실 해체로 삼성을 떠났으나 같은 해 11월 삼성SDS 사업운영총괄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2020년 1월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경영지원실장으로 이동하며 사장으로 승진했고, 2021년 12월 DX 부문 경영지원실장(CFO)을 거쳐 지난해 11월 사업지원TF 담당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 사업지원실은 전략팀, 경영진단팀, 피플팀 등 세 개 팀으로 조직된다. 전략팀장은 최윤호 사장이 맡는다. 경영진단실은 2024년 11월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 조직으로 출범했지만, 최근 삼성전자 내부 조직으로 전환됐다. 이번 개편으로 사업지원TF와 통합된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 구주총괄 경영지원팀장, 미래전략실 전략팀, 사업지원TF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등을 역임했다. 삼성SDI 대표를 맡은 뒤 경영진단실장으로 이동했다. 경영진단팀장은 주창훈 사업지원TF 부사장이 피플팀장은 문희종 사업지원실TF 부사장이 맡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인사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실적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정 부회장이 후진 양성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며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사업지원실로 명칭을 바꾸며, 상설 조직화됐다. 컨트롤타워를 재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적 회복·사법 리스크 해소…위기감 완화에 전격 ‘세대교체’

그동안 삼성전자의 기둥 역할을 맡았던 DS 부문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삼성전자의 사업 경쟁력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가운데, 정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의 과도한 경영 개입이 번번이 DS 부문의 발목을 잡아 사업을 위축시켰다는 논란이 일었다.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R&D), 신사업 육성, 인재 영입 등 발 빠른 판단이 중요한 첨단산업에서 재무적 관점 등에 매몰된 의사 결정으로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을 저하했다는 지적이다.

올 3분기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기록하는 등 위기감이 완화되면서 전격적인 세대교체 타이밍을 맞이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3년여 만에 12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실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HBM (고대역폭 메모리) 사업도 업계 큰손인 엔비디아 납품에 성공하면서 내년에 고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된점도 대대적인 인적 쇄신의 단초를 제공했다. 지난 7월 대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이 회장은 10년 만에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정 부회장이 비판받고 있을 때 일선에서 퇴진하기보다 문제가 해결된 시점에 물러나기를 택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해소되고 삼성전자의 사업이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한 때 명예롭게 퇴진하기로 판단한 것이다.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경쟁력 위축,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등 삼성이 전방위적인 위기에 노출되면서 정 부회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은 사실” 이라며 “사업 경쟁력도 회복세에 접어들었고, 이제 세대교체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예년보다 빨라진 인사 시계…JY, 미래 사업 준비 ‘착수’

TF 조직을 사업지원실로 상설화하면서 이 회장이 ‘뉴 삼성’ 준비를 본격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영 일선에 나서 삼성전자와 계열사의 쇄신을 주도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다. 개편된 사업지원실은 전략팀, 경영진단팀, 피플팀 등 세 개 팀으로 구성되는데,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2017년 11월 출범한 사업지원TF는 8년 만에 정식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미래 사업 구상에 대한 밑그림을 구체화하고 그룹에 대한 주도권을 강화하는 데 사업지원실이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예년보다 빨라진 인사 시계에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 계열사 고위 임원의 연쇄 이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상 삼성전자 및 계열사 인사는 11월 중순 이후 단행됐다. 하지만올해는 11월 초에 그룹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기능을 담당했던 사업지원실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선제적으로 단행하면서, 인사 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회장은 이번 인사에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했으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도 접촉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사업에서 대규모 계약을 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생성 AI(Gen-erative AI)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대규모 D램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11월 중에는 벤츠 회장과 만나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에 대한 협업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병수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