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팅 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 접목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양자 컴퓨터의 노이즈와 오류를 줄이는 목적으로 AI 머신러닝을 사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더욱 정교한 AI 모델을 만드는 데 양자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서로 도움이 되는 약혼 관계라고 볼 수 있겠다.”
더는 쪼갤 수 없는 물리량 최소 단위인 양자를 이용해 기존 컴퓨터보다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양자 컴퓨터가 경제·사회· 안보 등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칠 미래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는 2024년 23억달러(약 3조3534억원) 수준이던 양자 컴퓨터 시장 규모가 2033년에는 246억달러(약 35조8668억원)로 10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방한한 프랑스 대표 양자 컴퓨팅 기업 콴델라(Quandela)의 니콜로 소마스키(Niccolo Somaschi)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만났다. 2017년 설립된 콴델라는 프랑스 대표 양자 컴퓨터 기업 중 하나다. 빛 입자(광자·photon)를 활용한 광학 기반 양자 컴퓨터가 전문 분야다. 현재까지 양자 컴퓨터 4대를 공급해 유럽고성능컴퓨팅공동추진기구(EuroHPC)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지난 9월에는 한국 법인 ‘콴델라코리아(대표·김유석)’를 공식 출범했다. 소마스키 대표는 이번 방한 기간 중 서울시와 5700만달러(약 830억원) 규모의 투자 등을 골자로 한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인 소마스키 대표는 영국 사우샘프턴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양자 컴퓨팅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 부탁한다.
“새로운 컴퓨팅 기술이지만 기존 것을 대체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기존 컴퓨팅 시스템으로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차원이 다른 기술이다. 양자 컴퓨터의 크기는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는데, 그 안에는 프로그램을 통해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양자가 들어간다. 그걸 외부의 (디지털) 컴퓨터를 통해 전자적으로 가동한다. 그런 방식으로 차원이 다른 논리 연산과 계산이 가능하다.”
여전히 이해가 쉽진 않다.
“디지털 기술은 한 번에 오직 0 또는 1 중 하나의 값만을 가질 수 있는 ‘비트’를 최소 단위로 사용하는 반면 양자 기술은 ‘큐비트(qubit·quantum bit의 줄임말)’를 사용한다. 큐비트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중첩’ 상태를 활용해,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를 기반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복잡한 병렬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0큐비트를 만든다면, 양쪽에 각각 100개의 단위를 연결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는 매개변수가 우주에 있는 별의 수만큼이나 많아진다.”
연산 능력이 엄청난 만큼 오류가 발생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의 양자 컴퓨터에는 노이즈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성능에 일정 부분 제한을 두면서 특정 목적 컴퓨팅에 부합하는 강력한 양자 컴퓨터를 만들어 사용한다. 우리가 양자컴퓨터의 작동 방식과 그것을 기반으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많은 큐비트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큐비트의 의도치 않은 변화를 뜻하는 노이즈는 양자 계산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결과가 허용 오차를 벗어났을 때 오류라고 한다.양자 알고리즘은 노이즈를 제어할 수 있는 경우에만 작동할 수 있다.
콴델라의 경우는 어떤가. 상용화 준비를 마쳤다고 자신하는지.
“2017년 창업 당시에는 순수 과학 기업이었지만, 지난 2년 동안 사업 기반이 될 근본적인 과학 문제 해결 작업을 마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생산에 돌입할 준비가 됐다. 물론 연구개발(R&D)은 계속해 나가겠지만 이제부터는 엔지니어링(양자 컴퓨터 생산 관련) 쪽의 도전이 더 클 것으로 본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도 협력을 통해 혁신 가속을 도울 제품이 준비됐기 때문이다.”
콴델라 양자 컴퓨터의 차별화 포인트는 뭔가.
“콴델라의 양자 컴퓨터는 광학 기반이다. 광자의 양자 특성을 연산 기반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다른 기업은 원자(atom)를 쓰기도 하는데, 각기 장단점이 있다. 광자 기반 양자 컴퓨터는 연산 속도가 빠르다. 빛보다 빠른 건 있을 수 없다. 전력 소모도 적다.”
양자 컴퓨팅 접목, 어떤 분야가 유망할까.
“화학·제약·보안 등 분야에서 접목이 특히 기대된다. 제약 분야에서는 신약 물질의 핵심 구조를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더 높은 정확도로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약효가 좋고 부작용은 적은 신약을 짧은 시간 안에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합성 비료 원료인 암모니아를 기존 공법으로 만들면 이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고 전력 소모도 많다. 암모니아 분자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인데, 양자 컴퓨터 기반 ‘질소 고정(ni-trogen fixation)’ 과정을 거치면 훨씬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암모니아를 만들 수 있다.”
구글은 올해 초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 논문에서 혈류에서 약물을 분해하는 핵심 효소이지만 기존 컴퓨팅 기술로 분석이 어려운 시토크롬 P450을 양자 컴퓨터가 더욱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질소 고정은 공기 중 질소 기체 분자를 암모니아를 비롯한 질소화합물로 전환하는 과정을 뜻한다.
AI와 양자 컴퓨팅 기술은 어떤 관계인가.
“애증의 관계다(웃음). AI 열풍에 눌려 양자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다소 식은 적도 있지만, 이후에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도 AI 기술 접목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양자 컴퓨터의 노이즈와 오류를 줄이는 목적으로 AI 머신러닝을 사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더욱 정교한 AI 모델을 만드는 데 양자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서로 도움 되는 약혼 관계로 볼 수 있겠다.”
그러다가 양자 컴퓨터 관련 직업을 AI가 대체하는 건 아닐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양자 컴퓨터가 더욱 정확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AI 기술 구현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두 분야 결합으로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발전이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양자 컴퓨팅 역사가 길지 않은데, 전문가 부족이 문제 되진 않나.
“유럽의 경우에는 별도의 양자 컴퓨팅 전공을 두지 않고 공학과 수학, 컴퓨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자 컴퓨팅 과목을 가르친다. 유럽의 양자 컴퓨팅 전문가 밀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콴델라를 통해 한국에서 양자 컴퓨팅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주요 관심 분야 중 하나다.”
한국의 양자 컴퓨팅 수준은 어떻게 보나.
“연구·운영 시스템 수준이 높아서 놀랐다. 앞으로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많은 한국 젊은이가 망설이지 말고, 양자 컴퓨팅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