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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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바이오 업체가 플랫폼 기술을 중심으로 연이어 기술수출 계약을 따내면서 연간 누적 규모가 역대 최대인 18조원을 넘어섰다. 신약 후보 물질뿐 아니라 여러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 수출을 이끈 덕분이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 추가 성과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 잇단 기술수출로 시총 10조 육박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체결한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총 18조111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기존 최대 실적이었던 2021년 13조8047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해 8조1000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가파른 증가세를 이끈 주역은 에이비엘바이오,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 알지노믹스 등 플랫폼 기술 기반 기업이다. 이들 기업이 올해 체결한 계약 규모만 약 13조원에 달한다. 평균 계약 규모도 커지고 있다. 업계 집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기술수출 1건당 평균 계약 규모는 약 1조2000억원으로, 조 단위 기술수출이 드문 일이 아니게 됐다. 신약 후보 물질은 한 기업에만 독점으로 기술이전할 수 있지만, 플랫폼 기술은 초기 단계부터 계약할 수 있고 여러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할 수 있어 누적 성과가 빠르게 쌓인다.

대표적인 기술수출 사례로는 에이비엘바이오의 ‘그랩바디-B’가 있다. 혈뇌장벽(BBB)을 통과해 항체를 뇌까지 전달하는 기술이다. 지난 4월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4조1000억원 규모로 이전한 데 이어, 11월 12일에는 미국 일라이 릴리와 3조8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올해만 누적 8조원 규모의 성과다. 잇따른 기술수출로 회사의 시가총액은 10조원에 근접하며 코스닥 시총 4위권에 올랐다. 회사는 일라이 릴리로부터 22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까지 유치했다. 글로벌 빅파마가 국내 바이오텍에 지분 투자 형태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알테오젠은 링거로 맞는 정맥주사(IV)를 간단한 피하주사(SC)로 바꿔주는 플랫폼 ‘하이브로자임(ALT-B4)’을 개발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에 최대 1조9000억원 규모로 기술을 이전했다. IV 제형 항암제 3종을 SC 제형으로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이로써 미국 머크(MSD), 일본 다이이찌산쿄 등과 계약을 포함한 회사의 누적 기술수출 금액은 11조원에 육박한다. 하이브로자임이 적용된 첫 제품인 머크의 항암제 ‘키트루다 큐렉스(Qlex)’가 지난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면서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약 360억원을 받았다. 미국에 이어 11월 19일에는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아 매출은 꾸준히 커질 전망이다.

‘암세포 유도미사일’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기업 리가켐바이오도 약물을 항체에 정밀하게 붙여 약효를 내도록 하는 플랫폼 ‘콘쥬올(ConjuALL)’을 일본 오노약품공업에 이전했다. 리가켐바이오는 지금까지 미국 존슨앤드존슨(J&J) 자회사 얀센, 중국 포순제약 등과 총 14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기술수출 계약 총규모는 누적 10조원을 넘어섰다. 업계는 리가켐바이오가 최근 5년간 매 4분기에 기술수출 계약을 꾸준히 발표해 온 만큼, 콘쥬올을 기반으로 추가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알테오젠·리가켐바이오등 세 회사가 최근 몇 년간 해외에서 벌어들인 기술수출 규모는 약 30조원으로, 지난해 국내 전체 제약·바이오 시장 규모(31조원)와 맞먹는다.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비상장사 알지노믹스도 일라이 릴리와 1조9000억원 규모의 리보핵산(RNA) 기반 유전자 편집 플랫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일라이 릴리는 이 플랫폼을 활용해 유전성 난청 질환을 비롯한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할 예정이다.

신약 후보 물질보다 적용 범위 넓은 K-바이오 플랫폼 기술에 빅파마 러브콜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 외에도 기술평가 계약을 체결한 플랫폼 기술 기업의 최종 결과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펩트론은 지난해 10월 일라이 릴리와 장기 지속형 펩타이드 주사제 개발을 위해 ‘스마트데포(Smart-Depot)’ 기술의 평가 계약을 체결했으며, 12월까지 공동 연구를 마친 뒤 본계약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스마트데포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약 약효를 기존 일주일에서 1개월로 늘려 월 1회 장기 지속 제형으로 개발하는 데 핵심이 되는 기술이다.

디앤디파마텍과 지투지바이오도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에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경구용(먹는) 펩타이드 플랫폼인 ‘오랄링크(ORALINK)’로 GLP-1 기반 비만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해, 미국 화이자가 인수하기로 한 멧세라에 기술이전했다. 오랄링크는 알약 흡수율을 높이는 기술로, 멧세라에 이전한 먹는 비만약 ‘MET-002o’를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 중인 먹는 비만약 ‘리벨서스’와 비교한 결과 흡수율이 12.5배에 달했다.

지투지바이오도 여러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장기 지속형 약물 전달 플랫폼 ‘이노램프’를 활용해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또 다른 유럽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연구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노램프는 주사제 약효를 1~3개월간 지속할 수 있는 데다 약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의 공동 연구가 기술수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기술은 신약 후보 물질보다 적용 범위가 넓어 글로벌 제약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며 “연말까지 추가 기술수출 계약 소식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美 현지화 속도 내는 K-바이오
"개발·승인 가속, 판매 촉진"

허지윤 조선비즈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현지 법인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최대 헬스케어 시장인 미국에서 제품 출시와 글로벌 임상, 기술수출, 유통 전략을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뇌 질환 진단·치료 인공지능(AI) 기업 뉴로핏은 10월 14일 미국 델라웨어주에 100% 출자 법인을 세운다고 밝혔다. 뉴로핏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투약 과정과 아밀로이드 베타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상용화했으며, 이번 미국 법인을 통해 현지 출시 전략을 본격화한다. 빈준길 공동대표는 “미국은 AI 기반 뇌 질환 솔루션 수요가 가장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법인을 통해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2020년 출시했고, 연구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를 세워 현지 연구자 영입도 확대했다. 올해는 중남미 제약사 유로파마와 미국 합작 법인 멘티스케어를 만들고 AI 기반 뇌전증 관리 플랫폼 등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나섰다. 재생의학 기업 파마리서치는 2023년 미국 법인을 설립해 리쥬란 화장품을 먼저 출시했고, 주사제 FDA 허가를 중장기 목표로 추진 중이다. 기술수출과 임상 가속을 위해 미국 법인을 둔 기업도 늘고 있다. 비만 치료제 개발사 디앤디파마텍은 2023~2024년 멧세라에 경구·주사 비만 치료제 후보 물질을 기술수출했고, 대사이상지방간염(MASH) 치료제 DD01은 FDA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022년 미국 법인을 설립한 뒤 미국 임상 1상을 승인받고,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머크와 항암제 병용 요법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회사 측은 “글로벌 제약사와 사업 개발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염현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