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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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쓸 때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가 현실이 되는 짜릿한 순간을 목격했다. 외국인 팬은 물론, 국내 대중 역시 K-콘텐츠의 성공 요인을 장황히 설명할 인터뷰 준비는 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K-HR(한국형 HR)’의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떨까. 아마 대다수 HR 전문가조차 잠시 머리가 하얗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굴지의 다국적기업 리더와 미국 MB-A(경영학 석사) 프로그램에서 한국 HR의 현황과 트렌드에 대한 특강 요청을 받았을 때 낯선 이방인 앞에서 필자는 한국 HR 필드가 글로벌 변화와 혁신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실험장이 된 동시에, 디지털 HR과 인공지능(AI)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인사이트를 얻게 됐다. 

한준기 -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고려대·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한준기 -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고려대·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필자의 머릿속 K-HR의 이미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사태를 분기점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IMF 이전의 HR은 다소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었지만, 비즈니스에 상당한 영향력과 발언권을 가진 ‘힘 있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외환 위기 직격탄으로 한국의 인사 경영은 글로벌 표준에 통하지 않는다는 게 간접적으로 드러났고, IMF 이후 ‘색깔 없이 방황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한국이 HR의 본고장으로 여긴 미국이나 서유럽의 선진 제도를, 그 철학과 배경은 놓친 채 표피적으로 벤치마킹하는 데만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

이제는 맹목적인 카피를 멈추고 K-HR의 두 얼굴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할 때다.

K-HR '속도'는 장점, '시스템'은 딜레마

한국의 HR은 분명 좋은 강점을 갖췄다. 첫째, 상대적으로 비즈니스 이해도가 높고 속도가 빠르다. 최고경영자(CEO)의 의사 결정에 따른 실행이 신속하다. 둘째, 강한 팀워크와 사람 중심의 인사관리 전통이 남아있다.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헌신하는 유전자(DNA)는 여전히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다. 셋째, 하이테크(첨단 기술) 활용 의지와 능력이 우수하다. AI나 디지털 전환 관련 시스템 도입에 대한 수용도가 높다.

하지만 이런 장점의 반대편에는 고질적 약점도 있다. 첫째, 전략에 기반한 시스템과 프로세스 중심의 운영에 취약하다. ‘빨리빨리’ 문화는 선진 제도를 재빨리 도입하는 힘이 되지만, 제도를 운용할 체계와 원칙은 여전히 부족하다. 둘째, 유연한 토론과 수평적 아이디어 창출이 어렵다. 지금도 수직적인 위계 조직과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셋째, 지나친 사람 중심 인사관리로 성과 관리와 인재 육성에 둔감해진다. 정(情)이나 관계에 얽매여 냉철한 성과 평가나 상시적인 인재 육성이 원활하지 않다. 넷째, HR의 역할 인식에 소극적이다. 현업 매니저는 물론, HR 리더조차도 자신의 역할이 일상적 비즈니스 운영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하이테크나 AI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인해 오히려 시스템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 결국 K-HR의 딜레마는 ‘속도와 실행력은 좋지만, 이를 지탱할 철학적 토대가 부실하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의 '독소'를 먼저 제거하라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외국계 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모범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데 열을 올렸지만, 기대만큼의 효력을 거두지 못했다. HR 비즈니스 파트너(HRBP), OKR(-Objectives and Key Result·목표와 핵심 결과), ‘애자일(agile·민첩, 기민)’ 조직 도입 등 숱한 사례가 있다. 실패 이유는 선진 사례의 씨앗을 뿌릴 토양(土壤)이 건강하지 않은 탓이다. 실리콘밸리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처럼 ‘민첩하고 혁신적인 조직’을 외치면서 실제는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사무실을 떠나는 직원을 최고로 인정하는 오랜 관성이 조직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다. 

필자는 과거 건강을 회복할 때 남이 좋다는 보양식을 섭취하기 전에 먼저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지 않고, 생활 습관을 완전히 바꿔 몸의 독소를 제거했다. 인사 조직 관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새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잘못된 제도나 관행의 폐기가 선행돼야 한다. 무엇이 조직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를 냉철히 숙고하고 그것을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CEO를 포함한 리더의 ‘내재된 철학과 행동’이야말로 가장 큰 변수다. 애자일을 말하면서도 수직적인 보고 체계와 통제 관리에만 집중하거나 직원의 ‘군기’가 빠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선진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그 전략은 곧바로 역동성을 잃고 경직성만 가져다줄 것이다.

K-HR 완성, 한국의 강점 세계에 알려야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항해해야 하는가. 정답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K-HR의 완성은 단순히 선진 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술을 빠르게 적용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고유한 강점과 시대적 요구를 융합해 새 표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첫째, 지향하는 철학과 일하는 방식의 재정립이다. K-HR 하면 딱 떠오르는 철학과 일하는 방식에 대한 그림이 있어야 한다. 미국식 HR 하면 당연하게 머릿속에 잡히는 개념이 있다. 우리는 그것이 없다. ‘속도’ ‘혁신’ ‘하이테크&휴먼터치(인간적 감성·공감)의 접목’ ‘비즈니스와 컬래버레이션’ 등 뚜렷한 방향성이 잡혀야 한다. 우리의 장점인 신속한 의사 결정과 실행력이 ‘졸속’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철학적 깊이를 더해야 한다.

둘째, 사람이 중심이었던 이전까지 전통에서 나아가 ‘성장과 성과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특유의 ‘정’ 문화와 팀워크는 조직의 응집력을 높이지만, 이것이 성과 평가의 객관성을 저해하거나 실용적 인재 육성을 소홀히 하는 구실이 돼서는 안 된다. 리더는 ‘사람 좋은 상사’를 넘어 ‘성과를 창출하고 인재를 성장시키는 존재’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우리만의 색(色)이 발현될 대표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하이테크 분석, 휴먼터치가 조합된 임직원 고용 주기 사이클에 맞춘 체계적인 인력 및 조직 운영 체크 포인트를 한 번 설계해 볼 만하다. 더 이상 쥐어짜거나 대응적 관리로는 ‘솔로 프리너(solopreneur·1인 기업가)’ 시대 구성원의 효과적 관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이테크 역량을 ‘인간 중심의 HR 혁신’에 활용해야 한다. 한국의 디지털 전환 수용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AI와 빅데이터가 직원 개인의 맞춤형 성장 경로를 제시하고 조직 전체의 역동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효율적 도구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의 빈도와 영역이 급증하는 시대, 조용한 퇴사, 신세대의 등장, 리더십의 위기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직원 경험이 중요해진 시대’ ‘속도가 더 중요해진 시대’ ‘하이테크가 더 주목받는 시대’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와 융합이 더 필요한 시대’ K-HR이 글로벌 중심에 설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이미 형성됐다고 본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