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붕어빵과 스위트 레드.
3 곶감말이와 토카이. /사진 김상미
메밀묵과 김부각엔 카바
카바(Cava)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샴페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토착 청포도로 빚은 베이스 와인을 병에 담고 한 번 더 발효해 기포를 얻기 때문에 풍미가 우아하고 질감이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밝고 경쾌한 아로마에는 사과, 레몬, 복숭아 등 과일 향이 싱그럽고 은은한 꽃 향이 화사함을 더한다. 카바 중에서도 오래 숙성한 레제르바(Reserva)나 그란 레제르바(Gran Reserva)급은 토스트, 견과, 꿀 향이 발달해 풍미가 한층 깊다. 카바를 차갑게 식혀 메밀묵과 김부각에 곁들여 보자. 메밀묵은 김 가루와 들기름을 넣고 담백하게 무쳐도 좋고 송송 썬 김치와 매콤하게 버무려도 좋다. 카바의 과일 향이 메밀묵의 구수함을 끌어올리고 산뜻한 산미가 김치의 칼칼함을 시원하게 정리해 준다. 김부각과 즐기면 와인의 미네랄리티가 김의 감칠맛을 살리고 경쾌한 기포가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씻어 준다.
만두엔 발폴리첼라
한겨울 만둣집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만큼 따뜻한 겨울 풍경이 또 있을까? 행여 식을까, 퇴근길 코트 속에 만두를 품고 왔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따끈한 찐만두는 입안을 부드럽게 채우고 군만두는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이 일품이다. 여기에는 발폴리첼라(Valpolicella)처럼 가벼운 레드 와인이 제격이다. 이 와인은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Veneto) 지방에서 토착 적포도로 만든다. 우리에겐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가 익숙하지만, 포도를 말려서 만드는 묵직한 아마로네와 달리 발폴리첼라는 스타일이 산뜻하고 경쾌하다. 딸기, 체리, 자두 등 과일 향이 신선하고 허브 향이 생동감을 더하며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고 질감이 매끈해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찐만두에 곁들이면 와인의 과일 향이 배어들어 음식 풍미가 더욱 깊어지고, 군만두와 함께하면 와인의 상큼한 산미가 기름기를 정리하면서 고소한 맛을 끌어낸다.
군고구마와 군밤엔 크베브리 화이트 와인
와인 발상지로 알려진 조지아에서는 지금도 8000년 전부터 사용해 온 커다란 토기 항아리인 크베브리(Qvevri)로 와인을 빚는다. 성인 두 명은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크베브리를 땅속 깊이 묻고 포도를 넣어 으깨면 포도 껍질의 야생 효모가 자연 발효한다. 이 전통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오랜 세월 조지아의 삶과 함께해 왔다.
크베브리에서 만든 와인은 풍미가 독특하다. 특히 화이트 와인은 말린 살구, 귤껍질, 찻잎, 꿀, 견과류 같은 향이 풍성하고, 포도 껍질에서 우러난 타닌 덕분에 질감이 레드 와인처럼 탄탄하다. 이런 개성은 군고구마나 군밤과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린다. 와인의 말린 과일 향이 군고구마에 포개지면서 단맛이 더 선명해지고, 와인의 견과 향은 군밤의구수함과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와인에서 느껴지는 크베브리의 은근한 흙 향은 군고구마와 군밤에서 나는 불 향과 만나 포근한 겨울 풍경을 완성한다.
호빵과 붕어빵엔 돌체 나투랄레
차가운 계절일수록 단팥은 유난히 더 달콤하다. 말랑한 빵 속에 따뜻한 팥앙금을 품은 호빵, 한입 베어 물면 뜨거운 단팥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붕어빵, 모두 겨울이면 자주 찾는 간식이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 이탈리아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풀리아(Puglia) 지방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곳에서는 프리미티보(Primitivo)라는 적포도를 햇볕에 말려 달콤한 돌체 나투랄레(Dolce Naturale) 와인을 만든다. 자두잼, 말린 체리, 초콜릿, 바닐라 향이 농밀하고, 벨벳 같은 타닌이 입안을 묵직하게 채운다. 호빵이나 붕어빵과 함께하면 부드러운 빵 속으로 와인의 진한 과일 향이 녹아들고, 팥의 은근한 단맛이 와인의 감미로운 아로마와 만나 달콤한 맛의 하모니를 이룬다. 지중해 햇살이 한국의 겨울 속으로 따스하게 스며드는 느낌이다.
호떡과 곶감엔 토카이 아수 와인
헝가리 북동부 토카이(Tokaj) 지방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스위트 와인 산지다. 이곳에서는 포도가 나무에 달린 채 귀부균에 감염돼 수분을 잃고 향과 당분을 농축시킨 아수(Aszu) 포도가 생산된다. 이런 포도로 만든 달콤한 화이트 와인은 18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도 사랑했을 정도로 오랜 전통과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말린 살구, 오렌지 껍질, 꿀, 캐러멜 등 달콤한 아로마가 풍부하지만, 산미가 높아 스타일이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당도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되는데, 그중에서도 단맛이 강하지 않은 에데슈 사모로드니(Edes Szamorodni)가 호떡이나 곶감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호떡 속 설탕, 계피, 견과가 와인의 꿀, 캐러멜 향과 어울리고, 곶감의 쫀득한 단맛은 와인의 달콤한 과일 향과 절묘한 궁합을 펼친다. 좀 더 정성을 들이고 싶다면, 속을 호두와 치즈로 채운 곶감말이를 준비해 보자. 토카이의 우아함이 더해져 한식 디저트의 품격이 살아난다.
겨울 간식은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고 와인은 그 위에 향기를 덧입힌다. 달콤하거나 구수하거나 탄내처럼 여운이 남는 맛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을 다시 만난다. 올겨울, 거리의 별미에 와인 한잔을 곁들여 보자. 추억이 와인을 만나 한결 더 향긋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