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판결에는 명백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 상식과 법리에 비춰볼 때 한국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봤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벌인 13년 소송을 승리로 이끈 김갑유 피터앤김 대표 변호사는 최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1세대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지연 책임을 주장하며 한국 정부에 2012년 소송을 제기했을 때부터 이 사건을 맡아왔다. 마침내 11월 18일(현지시각)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취소위원회(이하 취소위)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약 4000억원을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론스타와 악연을 끊어냈다.

김갑유 - 피터앤김 대표 변호사, 서울대 법과대 학·석·박사,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사법연수원 17기, 현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위원회 위원장, 전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부원장 / 사진 피터앤김
김갑유 - 피터앤김 대표 변호사, 서울대 법과대 학·석·박사,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사법연수원 17기, 현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위원회 위원장, 전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부원장 / 사진 피터앤김

ICSID에서 진행된 판정 취소 사건 수백 건 중 ‘전부 취소’ 결정이 나오는 건 1.5~1.6%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패배를 예상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승소 확신의 근거로는 ‘절차적 하자’를 꼽았다. 1심 판정부가 한국 정부가 당사자가 아닌 국제상업회의소(ICC·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판정을 결정적 근거로 삼고도, 한국 측 반박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첫 판정의 하자를 지적한 브리지 스턴(Brigitte Stern) 파리 제1대 명예교수의 소수의견을 보고 “해볼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취소위도 “적법 절차와 방어권이 위반됐다”며 한국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다음은 일문일답.

승소 확신 근거로 절차 하자를 꼽았는데.

“과거 취소 사례를 보면 승률은 1.5%에 불과했다. 일반 사람은 가능성 없는 게임 확률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법률가 시각에서는 절차적 하자가 1.5%의 벽을 깰 수 있는 힘이라고 판단했다. 만약 패소했다면 충격에 변호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 상식과 법리적 기준에서 볼 때 결함이 명백하다고 봤다.”

한국 정부 측 주장에 취소위 반응은 어땠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지난 1월 런던 심리에서도 취소위 위원이 한국 정부와 론스타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쟁점을 깊이 살피는 모습이었다. 무관심했다면 희망을 품기 어려웠겠지만, 우리 측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리 이후에도 900쪽에 달하는 의견서를 꾸준히 제출하며 취소위 위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론스타가 불복해 별도의 중재 절차를 제기한다면.

“추가 항소 절차는 없다. 론스타가 할 수 있는 것은 취소된 부분에 한해 새로운 중재를 제기하는 것뿐이다. 조세 등 이미 확정된 쟁점은 다시 다툴 수 없다. 새 소송을 제기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론스타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번 승소의 숨은 공신은.

“금융위원회부터 국세청, 법무부 등 각 부처 공무원 모두가 한 팀이 돼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본다. 담당 공무원에게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밤을 새워 준비할 정도로 열심히 움직였다. 새로운 담당자가 와도 태도는 똑같았다. 우리나라 공무원 조직이 이렇게 헌신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내가 대리인단을 대표해 많은 인터뷰를 하지만, 이 사건을 위해 밤을 새워 일한 많은 변호사와 법률 의견을 써준 교수 그리고 직접 증언을 해준 이가 많다. 공을 말한다면 그 모든 이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론스타 소송 성과와 관련해, 정치권의 숟가락 논란이 있다.

“취소 신청을 검토하던 단계에서 공동 대리인단이 판정 취소를 요청했고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그 권고를 수용해 결정을 내린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 일하는 동안 전문가의 판단이 묵살되거나 무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3년에 걸친 소송 과정에서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고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두 번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일관된 결정을 내린 탄탄한 정부 시스템도 큰 역할을 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취소 소송에 앞서 2016년 심리를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에 갔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평화궁은 1907년 고종이 보낸 ‘헤이그 밀사’가 참석하지 못했던 만국평화회의 이후 지은 건물이다. 99년 전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나라가 이제는 헤이그에서 국재중재를 치르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심리가 진행된 공간의 이름이 ‘재패니즈 룸’이었는데, 그 안에 태극 문장(紋章)의 한국 대표석이 놓여 있었다. 사건을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진 순간이었다.”

13년간 이어진 소송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너무 큰 상황에서 우리가 아무 설명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언론과 여러 채널에서 의구심과 조언이 쏟아졌지만, 이 사건은 양측이 비밀 유지에 합의한 분쟁이라 우리가 어떤 전략을 쓰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말할 수 없었다. 분쟁 전략을 공개한 채 상대와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결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압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각 부처 공무원과 검사가 우리의 법률적 조언을 존중하고 일관된결정을 내려준 점은 매우 고마웠다.”

기업이 아닌 국가를 대리한다는 점에서 애로 사항은 없었나.

“(웃음) 한국 정부는 상당히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다. ‘시어머니가 여러 명 있는’ 것처럼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누구에게나 흠 잡히지 않아야 하니 요구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비용 관리 역시 엄격하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결과는 완벽해야 한다. 그만큼 자부심이 컸다.”

한국 1세대 국제중재 전문가로서 후배 변호사에게 하고 싶은 말은.

“10년 전부터 ‘K-리걸(K-legal)’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K-팝, K-푸드처럼 한국 법조인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 법조계는 매우 뛰어난 인재가 많고 그 실력은 해외 법조인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Plus Point

국제중재 전문 로펌 피터앤김
세계 30대 로펌으로 선정… 아시아권 유일

피터앤김은 국제중재 전문 로펌으로, 김 변호사가 볼프강 피터 변호사와 2019년 공동으로 창업한 곳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0년대로 거슬러 간다. 당시 국제중재재판소에서 김 변호사는 변호사로, 피터 변호사는 중재인으로 만난 것이다. 김 변호사를 눈여겨 본 피터 변호사가 먼저 공동 창업을 제안했고 피터앤김을 창업하게 됐다. 현재 피터앤김은 서울, 스위스 취리히·제네바, 싱가포르, 호주 시드니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피터앤김이 그간 성과를 낸 사건도 많다. 2021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중국 안방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계약금 5억8000만달러(약 7000억원) 반환 소송을 승소로 이끌었다. 2022년에는 인천 송도 국제 업무 단지 개발을 두고 포스코건설이 미국 부동산 개발 회사 게일인터내셔널과 벌인 23억달러(약 3조3000억원) 규모 분쟁에서 포스코건설의 승소를 받아냈다. 영국 국제중재 전문 매체인 GAR(Global Arbi-tration Review)은 지난 4월 피터앤김을 세계 30대 로펌 중 한 곳으로 선정했다. 아시아권 로펌 중에서는 유일하다. GAR은 “피터앤김은 세계 각지에서 복잡하고 고부가가치 중재 사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적은 인력으로도 탁월한 효율성과 전문성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김우영 조선비즈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