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센터는 내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이 완만한 둔화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봤다. 미국의 관세정책, 중국 부동산 경기 위축, 인공지능(AI) 거품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 ‘중저속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각국 정부의 재정지출과 AI 투자가 둔화 폭을 제한하는 ‘완충’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금융센터가 12월 1일 발표한 ‘2026년 세계경제, 국제금융시장 전망 및 주요 이슈’ 에 따르면, 세계경제성장률은 2025년 3.2%에서 2026년 3.0%로 둔화할 전망이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올해 2.0%에서 내년 2.1%로 성장률이 소폭 오를 것으로 봤지만, 유럽연합(1.3→1.1%)·일본(1.1→0.7%)·중국(4.9→ 4.3%)·신흥국(4.3→4.0%) 등은 성장이 둔화할 것으로 봤다. 서울 중구 국제금융센터에서 만난 이용재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AI와 반도체 투자가 성장의 버팀목이 되겠지만, 정책 불확실성과 자국 우선주의 확산이 성장 동력을 제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세계경제 동향을 진단해달라.
“세계경제는 올해 정책 불확실성과 지정학 리스크, 관세 불안 등으로 경제 심리가 위축된 한 해였다고 본다. 미국의 실효 관세율은 주요국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약 17% 수준으로, 2024년 2.5%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고, 소비자신뢰지수 역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국 미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를 보면, 2024년 12월 74에서 2025년 6월 61, 11월에는 50까지 하락했다. 다만 10월 들어 미·중 갈등이 완화되고 관세 합의가 진행되면서 불안 심리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글로벌 AI 투자가 전년 대비 약 30% 증가하는 등 민간 투자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개선 흐름이 나타났다.”
내년 세계경제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올해(3.2%)보다 둔화한다고 본 이유는.
“내년에는 완만한 둔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5년 연속 성장률 둔화세를 보이는 중저속 성장이 일반화하는 국면이다. 미국은 물가 상승과 구매력 약화, 유로존은 수요 부진 속 재정지출 확대 효과 지연, 중국은 부동산 위축과 과잉생산 억제 정책 등이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주요국의 재정지출, AI 투자 확대 등으로 둔화 폭 자체는 제한될 것으로 본다. AI와 반도체 수요, 설비투자 증가, 서비스업 개선, 정부 지출 확대 덕분에 2026년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오히려 2.5%에서 3.0%로 상향 조정됐다.”
세계은행은 재정 악화, 공급망 분절, 자국 우선주의, 지정학 리스크 심화 시 세계경제성장률이 최대 0.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경제 하방 압력이 강한데.
“세계경제는 현재 상·하방 요인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재정 악화, 공급망 분절, 지정학 리스크, 자국 우선주의 확산 등은 모두 잠재적인 ‘기폭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AI 버블에 대한 경계가 확대돼 자산 시장이 급격히 냉각될 경우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함께 위축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요인이 동시에 불거질 때 세계경제 하방 압력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책 대응과 AI·서비스업 성장 잠재력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침체 국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APEC 2025 정상회의 이후 미·중 갈등이 일시적 휴전 양상을 보였다. 이런 변화가 국제금융센터가 제시한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에도 반영됐나.
“미국과 중국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이 약 26%, 중국이 약 17%를 차지하고 있고 공급망에서도 핵심 위치를 점하고 있다. 두 나라 관계는 세계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번 APEC 2025 정상회의에서 양국이 타협을 선택한 것은 분명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 일정 부분 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합의가 최소 1년 정도의 ‘시한부 봉합’ 성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양국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제재에 나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양측이 반도체·희토류 등에 대한 추가 제재를 6개월 이상 유지할 경우 세계경제성장률이 약 0.5%포인트 낮아질 수 있고, 남중국해·대만 문제로 인한 긴장 고조,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겹치면 세계경제성장률은 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데, 관세정책에 따른 미국의 수입 물가 전망도 궁금하다.
“미국의 경우 관세 인상 효과가 단계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면서 점진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재정 정책 완화 기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점진적 금리 인하, AI·반도체 등 특정산업 중심의 투자가 유지되면서 고용 부진에도 불구하고 총수요가 쉽게 약해지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주요 IB 등은 내년 1분기 관세 효과가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변수는 연준 의장 교체다. 친트럼프 성향의 인사가 연준 의장에 선임될 경우 성장과 고용을 우선시하는 완화적 기조가 강화될 수 있다. 이는 물가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도 정책금리 인하, 단기 국채 매입 확대 등 조치가 시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러한 대책이 총수요를 자극해 결과적으로 고물가 국면이 장기화할 위험도 있다.”
2026년은 미국 중간선거, 한국 지방선거 등 정치 일정과 맞물려 확장 재정 정책으로 인한 국가 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요국의 재정지출 확대가 각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어떠할 것으로 보나.
“팬데믹 기간 전 세계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출을 단행한 이후 재정 정책은 통화정책과 함께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핵심 화두가 돼 왔다. 팬데믹 종료 후 고물가 피해 대응, 경기 침체 방어, 인프라 확대, 사회 안전망 확충 등 재정지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재정 적자와 정부 부채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진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선진국의 GDP 대비 재정 적자는 2025년 4.6%에서 2026년 4.9%로, 정부 부채는 같은 기간 110%에서 112%로 늘어날 전망이다. 재정지출 확대가 경제·금융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으로는 국채 시장의 불안, 물가 상승, 재정 신뢰 훼손 등을 꼽을 수 있다. 다만 재정 지표가 악화한다고 해서 곧바로 국가 부도 위험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시장이 재정 또는 부채 위험을 크게 평가하는 시점은 재정 확대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보거나, 정책 효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다. 재정 건전성 유지와 함께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생산적 재정지출이 병행된다면 시장은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새해 역대 최대 정부 예산안 확정, 성장률 끌어올릴 수 있을까
국회는 12월 2일 본회의에서 역대 최대인 727조9000억원 규모의 2026년도 정부 예산안을 의결했다. 정부 지출이 늘어나면 GDP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GDP는 소비(C), 투자(I), 정부 지출(G), 순 수출(NX)의 합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을 확대하면 그만큼 G 항목이 커져 성장률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출된 재원이 기업과 가계 소득으로 흘러가면서 소비와 생산을 자극하는 ‘재정 승수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경기 침체기에는 민간의 소비·투자가 위축돼 있어 정부 지출의 파급력이 더 확대된다.
다만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이 계속되면 오히려 민간 부문을 위축시키는 ‘구축(驅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제기된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면, 금리가 상승해 기업 투자를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지출 확대가 단기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출의 방향과 효율성이 관건이라는 것이 경제학자의 대체적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