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공개됐다.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도 정교한 미장센은 놀랍도록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뜻밖의 창조물을 발견하게 된다. 196㎝의 거대한 신체에 꿰매진 흉터, 고독과 갈망으로 일렁이는 눈빛. 배우 제이컵 엘로디(Jacob Elordi)가 연기한 ‘괴물(The Creature)’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제이컵 엘로디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슬픔을 지닌 존재, 아름답고 비극적인 크리처를 재창조해 냈다.
괴물 분장을 벗어낸 제이컵 엘로디는 근사한 신의 창조물이다. 196㎝의 압도적인 키, 긴 팔과 다리, 지나치게 벌크 업하지 않은 균형 잡힌 근육과 날씬한 허리, 볼륨 넘치는 헤어와 짙은 눈썹과 살짝 처진 커다란 눈망울까지, 그야말로 조각상 같다. 호주 출신의 제이컵 엘로디는 영화 ‘키싱 부스’와 화제의 HBO 시리즈 ‘유포리아’로 슈퍼 루키가 됐다. ‘유포리아’는 젠데이아, 시드니 스위니, 헌터 샤퍼 그리고 제이컵 엘로디를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이름이 되게 했다.
LA 프리미어에서는 또 달랐다. 제5회 아카데미 뮤지엄 갈라에 참석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짙은 초콜릿 브라운 컬러로 통일한 룩을 선보였다. 울 소재 셔츠와 트윌(twill·표면에 사선 무늬가 나타나도록 짠 직물) 슈트의 조합은 따뜻하면서도 깊이감이 있었고, 여기에 클래식한 레이스업 슈즈(Lace-Up Shoes·끈으로 묶는 정장 구두)를 신어 무게감을 더했다. 이번 투어에서 제이컵 엘로디는 과도한 장식보다 소재의 질감과 실루엣에 집중하며 콰이어트 고딕(Quiet Gothic)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었다.
제이컵 엘로디는 2024년 5월, 보테가 베네타의 공식 앰버서더로 임명된 이후 브랜드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았다. 2025년 11월 공개된 캠페인 ‘꿈이란 무엇인가?(What Are Dreams?)’ 속에서, 제이컵 엘로디는 보테가 베네타의 철학적 깊이를 대변하는 피사체로 빛난다. 전설적인 사진작가 듀에인 마이클(Duane Michals)가 뉴욕 자택에서 촬영한 이 캠페인은 패션 화보라기보다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예술영화에 가깝다. 흑백 프레임에서 그는 르네 마그리트나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 속 인물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이컵 엘로디는 남자 백의 미학을 새롭게 재정의하기도 했다. 그는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남녀 성의 경계를 오가는 스타일) 패션의 최전선에서 남성 액세서리의 해방을 이끌었다. 젠지(Z 세대·1997~2010년생)는 그에게 ‘베이비걸(Babygirl)’이란 닉네임을 붙여주기도 했다. 196㎝의 거구인 그가 작은 샤넬 백이나 펜디 바게트 백을 쥐고 있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그 기묘한 간극과 사랑스러움이 베이비걸 미학의 핵심이다. 그의 가방 컬렉션은 루이비통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퍼렐 윌리엄스 데뷔작인 옐로 ‘스피디 P9’ 백부터, 발렌티노의 ‘로코’ 백 그리고 그의 시그니처가 된 보테가 베네타 ‘인트레치아토(얇은 가죽을 엮은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적 수공예 기법)’ 백까지 방대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 가방을 드는 이유다. 그저 물건을 잃어버리기 싫고, 책, 필름 카메라, 펜 등 집을 나설 때 챙겨야 할 게 많아 백을 즐겨 들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개인적 필요에 따라 여성 전유물이었던 핸드백을 자연스럽게 남성 스타일의 일부가 되게 했다.
(오른쪽) 영화 '프랑켄슈타인' LA 프리미어 룩. /사진 보테가 베네타
그는 또한 자신의 긴 다리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23년 밀라노 패션위크, 발렌티노 쇼에서 보여준 ‘쇼츠 슈트(Shorts Suit)’ 룩은 남성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길이의 쇼츠에 블레이저와 타이를 매치한 그의 모습은 ‘스쿨 보이’의 장난기 섞인 매력과 성인 남성의 섹시함을 동시에 발산했다. 그렇게 제이컵 엘로디는 미남 배우의 전형을 탈피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바이브로 새로운 기준을 세워가고 있다.
제이컵 엘로디의 젠더 플루이드 룩은 웬디 페레이라(Wendi Ferreira)와 니콜 드줄리오(Nicole DeJulio) 자매 스타일리스트에 의해 더욱 섬세하게 완성됐다. 여성복 스타일링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은 남성복의 경직된 룰을 과감히 깼다. 여성복 컬렉션의 블라우스를 입히거나 스카프를 두르게 하는 유연한 발상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연출해 냈다.
또한 제이컵 엘로디는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열정적인 사진가로도 유명하다. 라이카(Leica) M 시리즈나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같은 클래식 카메라를 목에 건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패션이 된다. 주머니에 꽂힌 책 한 권, 손에 들린 낡은 카메라 그리고 빈티지한 티셔츠가 결합된 그의일상 패션은 트렌드만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제이컵 엘로디는 최근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까르띠에(Cartier)의 새로운 캠페인 ‘러브 언리미티드(LOVE Unlimitied)’에 등장하며, 또 하나의 패션 크라운을 썼다. 그는 영화 ‘프랑켄슈타인’ 프레스 투어에서 여성용처럼 작은 페이스의 초록빛 ‘까르띠에 탱크 아 기셰’와 ‘탱크 루이 까르띠에’를 착용해 시선을 끌었다.
제이컵 엘로디의 매력은 기묘하다. 신체 조건이 누구보다 남성적이지만, 묘하게 여성적인 젠더리스 룩을 소화해 낸다. 그는 마초적 남성성에 갇혀 있던 슈트를 부드럽게 순화시키고, 여성용 핸드백과 작은 시계를 자연스럽게 남성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며 남성 스타일의 경계를 넓혀가고 있다. 제이컵 엘로디의 스타일 여정은 연기 커리어처럼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배우이자 스타일 아이콘으로서 제이컵 엘로디가 써갈 다음 챕터를 설렘으로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