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월 5일(이하 현지시각) 올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25인을 선정한 ‘2025 인플루언스 리스트(FT Influence List 2025)’를 공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 수지 와일스, 유아동 유튜브 크리에이터 미스 레이철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계로는 여성 축구 행정가 미셸 강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FT가 인플루언스 리스트를 뽑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이나 대기업 총수처럼전통적인 권력자가 아니라, 인공지능(AI) 인프라를 설계하거나 새로운 스포츠 시장을 만들고,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억 명의 인식과 정서를 바꾼 인물에게 초점을 뒀다. FT는 “좋든 나쁘든 이들이 오늘날 우리 삶의 방식을 형성하고 있다”라며 권력자가 아닌 실제 변화를 만든 사람을 조명했다.
선정 작업은 FT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올해 세상을 움직인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정치·비즈니스·미디어·예술·스포츠를 아우르는 인물 25명을 추린 뒤 △크리에이터(창작자들) △ 리더(지도자들) △히어로(영웅들) 세 그룹으로 나눴다. 각 인물의 프로필은 해당 분야 동료나 팬이 직접 썼다. 젠슨 황 CEO에 대한 글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미셸 강에 대한 글은 첼시 클린턴 클린턴 재단 부사장이 맡는 식이다.
젠슨 황, 한국계 미셸 강 등 명단에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단연 젠슨 황 CEO다. 국내외 언론은 FT 리스트를 전하며 “사실상 올해의 인물은 젠슨 황”이라고 표현했다. 젠슨 황 CEO는 생성 AI(Generative AI) 붐의 ‘최대 수혜자’를 넘어, AI 시대 인프라를 설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생태계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올트먼 CEO는 황 CEO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컴퓨팅 아키텍처(컴퓨터의 정보처리를 위해 설계된 구조·체계)에 대해 확신을 갖고 여기에 엔비디아를 걸었다”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디지털 지능의 토대를 닦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계 미국인 여성 사업가 미셸 강도 눈길을 끈다. 미국 의료 정보기술(IT) 기업 코그노산테 창립자인 그는 북미와 유럽의 여성 축구 구단을 잇달아 인수해 여성 스포츠 발전에 힘쓰고 있다. 미국여자프로축구(NW SL) 워싱턴 스피릿,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 페미냉, 영국 런던 시티 라이오니스 등의 구단주다. 첼시 클린턴은 “(미셸 강이) 여성 스포츠 투자가 자선이나 상징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전략임을 상기시켰다”며 “그의 성공은 게임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다”라고 했다.
정치가로는 미국 뉴욕시 최초의 무슬림 시장 조란 맘다니가 이름을 올렸다.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은 “맘다니는 억만장자 후원 대신 뉴욕 노동자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에 오른 수지 와일스도 FT가 꼽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영국에서는 나이절 패라지 영국 개혁당 대표와 영국 해외 정보국(MI6) 최초 여성 수장 블레이즈 메트루웰리가 선정됐다.
비즈니스·기술 분야에서는 비만 치료제(GLP-1 계열) 개발로 의학과 식문화에 파장을 일으킨 과학자 로테 비에레 크누센,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의 글로벌 확장을 주도한 스텔라 리 수석 부사장 등이 꼽혔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인수합병(M&A) 자문 수익 등의 증가로 주가를 끌어올린 공을 인정받아 명단에 포함됐다.
권력자 아닌, 실제 변화 만든 사람들
문화와 가치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인물이 조명됐다. 유튜브 어린이 콘텐츠 크리에이터 미스 레이철은 발달·언어 지연 아동을 위한 노래·수어 영상으로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했다. 단순 아동 콘텐츠를 넘어 분쟁 지역 아동 등 인도적 이슈로 메시지를 확장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패션 디자이너로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소속 명품 디올과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를 운영하는 조너선 앤더슨이 포함됐다. 그와 ‘퀴어’ ‘챌린저스’ 등에서협업한 영화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창의적인 과정을 삶의 최전선에 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작가 마거릿 애투드는 디스토피아와 페미니즘을 다룬 작품으로 정치·사회 논쟁의 상징적 존재로 꼽혔고, 스페인 가수 로살리아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뮤지션 배드 버니는 라틴음악과 팝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으로 “언어와 사운드 규칙을 다시 쓰는 인물”로 소개됐다. 이 밖에 호주 작가 헬렌 가너, 배우이자 사회운동가 제인 폰더, 골퍼 로리 매킬로이 등도 이름을 올렸다. 영향력의 무게중심이 콘텐츠·서사·가치관 형성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명단에는 러시아 국영 방송 RT의 편집장 마르가리타 시모냔처럼 서방에서 강력한 비판을 받는 인물도 포함됐다. 민주주의와 여성 참정권에 대한 도발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어 온 페이팔·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피터 틸도 마찬가지다. ‘좋은 영향력’만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흔드는 모든 영향력을 반영했다는 FT의 의도가 드러난다.
타임 '올해의 CEO', 닐 모한 유튜브 CEO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12월 7일 닐 모한 유튜브 CEO를 ‘2025년 올해의 CEO’로 선정했다. 닐 모한 CEO는 2023년 수전 워치스키 후임으로 취임한 뒤, 유튜브를 TV·스포츠·숏폼·팟캐스트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미디어’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임’은 그를 “수십억 명의 문화적 식단을 짜는 농부”라며, 자동 편집·더빙·요약 등 30여 개의 생성 AI 도구로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게 한 점, 광고와 구독 모델을 동시에 키우며 창작자 경제를 확장한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유튜브는 시청 절반이 TV 화면에서 이뤄지며, 숏폼 서비스 쇼츠(Shorts)는 월간 로그인 이용자 20억 명을 확보했다. 2025년 1~3분기 광고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했다.
이와 함께 ‘타임’은 ‘올해의 연예인’으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선정했다. 그는 올해 개봉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보여준 연기와 수십 년간 스크린 아이콘으로서 문화적 영향력을 지속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타임’은 그가 특정 프랜차이즈나 히어로물에 기대지 않고, 위험 부담이 큰 오리지널 각본과 예술적 실험에 꾸준히 몸을 던져왔다는 점에 주목했다.‘타임’은 매년 12월 중순 ‘올해의 인물’을 발표한다. 지난해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