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유통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면서 CBDC 도입 시 개인의 자유로운 금융거래가 정부 감시 아래 두는 통제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CBDC는 블록체인이나 분산 원장 기술 등을 사용해 전자 형태로 저장하며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높은 반면 디지털 장부에 기록되는 특성 때문에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결제했는지 기록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CBDC를 잠재적인 통제 수단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국가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정보 보호 이슈를 불식시키고 디지털 통화 화폐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CBDC는 은행의 이익 극대화 및 위험 감수 기업 활동으로부터 결제 시스템을 보호할 잠재력이 있다”면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데 앞장서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2024년 4월 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상점에서 휴대폰에 설치한 즉시 결제 시스템 픽스(Pix) 앱을 통해 결제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2024년 4월 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상점에서 휴대폰에 설치한 즉시 결제 시스템 픽스(Pix) 앱을 통해 결제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돈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돈이 돈을 낳는다는 사실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최선의 방법은 수 세기 동안 전통적인 은행이 해왔던 것처럼, 돈 만드는 기계를 통제하는 것이다. 공적 통화로 표시된 신용화폐를 만들어냄으로써, 상업은행은 누가 어떤 조건으로 신용화폐를 받을지 결정한다. 평상시에는 유동성을 공급하고, 경기가 나쁠 때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중앙은행이 이들의 화폐 창출을 뒷받침한다는 건 더 좋은 점이다. 

① 하지만 이 같은 사업 모델은 민간이 발행하는 암호화폐와 중앙은행 CBDC의 부상이라는 두 방향에서 위협받고 있다. 이 중 CBDC가 더 만만치 않은 도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은행은 (규제 범위 내에서) 자체적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하거나 투자함으로써 암호화폐 업계와 경쟁을 피할 수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원하는 유일한 화폐인 국가 발행 통화를 발행할 수는 없다. 은행은 국가가 디지털 화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중개자인 은행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카타리나 피스토르 -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자본의 코드' 저자
카타리나 피스토르 -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자본의 코드' 저자

수 세기 동안 국가는 양도 가능한 어음부터 은행이 만든 화폐에 이르기까지, 민간이 운용하는 결제 시스템을 지원하고 그것에 의존해 왔다. 이 같은 방식은 편리했고 경제성장 촉진에 도움 됐다. 하지만 그런 편리함에는 대가가 따랐다. 결제와 저축 시스템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막강한 역할로 인해 은행은 위기 상황에서 경제를 인질로 잡을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용을 확대하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됐다.

국가도 이런 문제를 자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② 대공황 이전 금융 위기에 대응해 마련된 미국의 글라스 스티걸 법(Glass- Steagall Act)을 생각해 보라. 이 법은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했다. 투자은행을 운영하는 기관은 고객과 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지만, 상업은행은 저축자와 결제 시스템을 그런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엄격한 규제와 감독을 받았다. 그러나 금융 업계의 압력으로 미 의회와 클린턴 행정부는 1999년 글라스 스티걸법을 폐지했고, 이는 2008년 금융 위기의 발단이 됐다. 

그러나 지금의 CBDC는 은행의 이익 극대화 및 위험 감수 기업 활동으로부터 결제 시스템을 보호할 잠재력이 있다. 중앙은행은 국민의 디지털 지갑을 보유하고 직접 즉시 결제를 수행할 수 있으며, 은행은 예금 기반이 축소돼 자체 자원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한이 있어도 대출 및 기타 금융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마침내 은행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통화 시스템을 구축할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중앙은행은 이 문제를 조심스레 회피하고 있다. CBDC 도입에 대해 본격적인 계획을 마련한 중앙은행은 극히 소수이며, 그들조차도 상업은행에 위협이 되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유럽에서는 은행 예금에 대한 한도가 없음에도 고객이 보유할 수 있는 디지털 유로화 규모에 상한을 두자는 제안이 있었다.

중앙은행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표면적인 이유는 상업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금융 불확실성이 발생하거나 심지어 붕괴 사태를 촉발해 결국 다시 자사의 대차대조표에 부담이 될까 두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중앙은행이 민간 은행을 반드시 구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몇 중앙은행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국 내 은행 부문이 그다지 강력하지 않은 데다 CBDC가 통화 주권을 확보할 방안이기 때문일 것이다. ③ 예를 들어 브라질 중앙은행은 모든 국민·기업·정부기관을 위한 즉시 결제 시스템인 픽스(Pix)를 만들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9년을 목표로 디지털 유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이니셔티브에 대한 반응은 많은것을 시사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불공정 거래 관행(관세 또는 비관세 진입 장벽 조성)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픽스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가 세계 각국에 일방적인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질서를 흔들어 온 것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유럽에서 은행은 소매용 디지털 유로가 자기들의 사업 모델을 위협하고, 유로존 전용 신용카드 도입 노력에도 타격을 준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이 유로 신용카드를 개발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에 기반을 둔 지배적인 결제 서비스 제공 업체와 경쟁을 촉진할 합당한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 대안이 반드시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로운 기술은 결제와 신용 시스템을 혁신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은행이 수 세기 전 정치적 타협에서 비롯된 사업 모델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창조적 파괴는 사회·경제적 진보를 위한 중요한 동력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데 앞장서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정부의 책무는 은행에 앞서 국민을 향해 있다.

Tip

CBDC는 중앙은행이 전자 형태로 발행하는 법정화폐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같은 정의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은행 계좌를 통해 오가는 통화도 디지털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이에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지급 결제, 시장인프라위원회(CPMI)는 CBDC를 ‘전통적인 지급준비금이나 결제 계좌상 예치금과는 다른 전자 형태의 중앙은행 화폐’로 정의하고 있다. 발행 주체는 중앙은행으로 전자 형태를 갖되 법적 형태는 단일·분산 원장 방식 기술로 구현된다. 사용 주체는 모두가 사용 가능한 소액 결제용(또는 일반 사용형)과 은행 등 금융기관의 자금 결제용으로만 쓰이는 거액 결제용(또는 거액 거래형)으로 구분된다. 

글라스 스티걸법은 1933년 미국의 글라스 스티걸 의원의 발의로 제정된 법률로, 상업은행의 투자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29년 주가 대폭락과 대공황 원인으로 상업은행의 방만한 경영과 이에 대한 규제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고 상업은행이 고객 예금으로 주식 투자를 할 수 없게 하는 게 골자였다.

당시 유력한 은행이자 증권사였던 JP모건의 증권 부문이 모건스탠리로 독립돼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법 때문이었다.

그러나 법 제정 70년 만인 1999년 11월 그램 리치 블라일리법이 통과되면서 글라스 스티걸법은 폐지됐다. 월가의 금융 규제 완화 요구와 금융 백화점 창설을 노린 시티그룹의 로비 등에 따른 것으로 법이 폐지되면서 상업은행도 투자 업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글라스 스티걸법 폐지로 투자은행의 자기자본 투자 경쟁은 과도하게 이뤄졌고 결국 2008년 금융 위기를 초래했다. 

픽스는 브라질 중앙은행에서 제공하는 즉시 결제 시스템(Instant Payment System)의 브랜드명이다. 2020년 10월 출시 이후 사용자가 급속히 늘면서 지금은 브라질 성인 95%에 달하는 1억6300만 명이 사용하는 국민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월간 거래량은 80억 건에 근접하고 있으며, 올해 총거래액은 전년 대비 34% 늘어난 약 6조7000억(약 9854조원)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타리나 피스토르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정리=이용성 국제전문기자, 김주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