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비욘세(오른쪽)가 테일러 스위프트로부터 베스트 컨트리 앨범상 트로피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2025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비욘세(오른쪽)가 테일러 스위프트로부터 베스트 컨트리 앨범상 트로피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4년 전, 놀랍게도 그래미 트로피를 들어본 적 있다. 말 그대로 들어본 거다. 수상한 건 아니고. 물론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아니고, 만나기로 한 그래미 수상자가 트로피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미 트로피는 TV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다만, 들어보니 생각보다 묵직했다. 두 개쯤 받아서 양손에 들고 운동하면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제대로 나올 것 같은 무게다. 그래미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그래미 트로피의 무게는 약 5파운드(약 2.26㎏)다. 재질은 아연합금. 미국 콜로라도주의 빌링스 아트워크에서 수제로 생산하는데, 제작에 개당 약 15시간이 걸리며 제작비는 800달러(약 118만원)로 추정된다. 가로세로 약 15㎝의 밑변 위로 약 24㎝ 높이를 자랑하는 이 트로피의 문화적·경제적 가치를 단순히 제작비나 무게로만 계측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래미란 애초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세계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으로도 불리는 그래미 어워즈는 1959년 탄생했다. 영화계에 오스카(아카데미상), TV에 에미상이 있다면, 음반계에서도 따로 상을 만들어 서로에게 수여해 보자는 게 그래미 어워즈를 만든 1950년대 음반 업자의 생각이었다.

임희윤 - 문화평론가,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 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임희윤 - 문화평론가, 현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예술기: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한국 대중 음악 명반 100(공저)' 저자

美 리코딩아카데미 회원 투표로 후보·수상자 결정

‘그래미’라는 해괴한 단어의 출처는 어딜까. 그래미는 그래머폰(gramophone)을 줄여 만든 말. 그래머폰은 우리말로 축음기다.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인류 최초의 축음기 격인 포노그래프(phonograph)를 만들었다. 하지만 천하의 에디슨도 늘 옳은 건 아니었다. 그가 개발한 실린더(원통)형 음반은 마모와 충격에 취약했다. 대안은 10년 뒤인 1887년, 독일계 사업가 에밀 베를리너가 개발한 그래머폰에서 나왔다. 얇은 원반(디스크) 형태여서 보관이 편하고 재생도 균일했으며 내구성마저 좋았다. 이게 ‘음반’의 표준이 된다. 그래미상을 만들 때, 음반 업자들은 애초에 독일 하노버 출신의 베를리너보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친숙한 ‘우리의’ 에디슨에게 맘이 기울었었다. 상 이름을 ‘에디상’으로 하려 할 정도였다. 잘 알려진 ‘방송계의 오스카상’인 에미상과 비슷해 알리기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논쟁 끝에 상용화된 베를리너의 그래머폰이 이겼다. 그래서 그래미가 됐다.

즉, 그래미는 태생부터 작품성·예술성·실험성보다 시장성·상업성·실용성에 더 무게를 둔 셈이 된다. 다만, 투표인단이 양심에 따라 ‘좋은 음악’에 표를 던지는 시스템이 그래미에 상대적 권위와 언론의 관심을 부여했다. 판매 차트를 보면 삼척동자도 대충 수상자 윤곽을 그릴 수 있는 다른 음악상에 비해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95개로 세분한 시상 부문을 보면, 그래미가 음악의 다양한 부문에 얼마나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미 후보와 수상자 선정은 투표로 결정한다. 미국 리코딩아카데미 회원에게 투표권이 부여되는데, 현재 투표 위원은 약 1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종래 1만 명 선이었지만 최근 ‘그래미가 너무 하얗다, 너무 보수적이다’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근년에 풀을 대폭 늘렸다. 특히 리코딩아카데미는 올해만 각국 음악 관계자 3800명을 신규 회원으로 받았는데, 추가 인원 중 40세 미만이 절반을 차지했고, 58%는 유색인종, 35%는 여성에게 할당했다. 한국에서도 그래미 투표 위원이 느는 추세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방탄소년단 멤버 7명 전원, 프로듀서 피독·지코·범주 등, 세븐틴 멤버 2명,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 1명, 한미 합작 그룹 캣츠아이 멤버 6명 전원도 그래미 투표 위원이다.

로제(오른쪽)와 부르노 마스가 'APT.'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로제(오른쪽)와 부르노 마스가 'APT.'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최우수 신인상 수상 후 음반 판매 1000% 늘기도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한때 30~40%대를 오가던 중계방송의 TV 시청 점유율이 20%대(시청률은 2%대)까지 내려간 현실도 있다. 다른 레거시 차트, 레거시 시상식, 레거시 페스티벌처럼 새로운 세대를 잡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컨트리를유독 사랑한다고 정평이 난 그래미가 라틴 팝은 물론, K-팝까지 기웃거리게 된 데는 소셜미디어(SNS) 시대의 트렌드 반영 필요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 있는 복수의 그래미 투표 위원을 만나 투표를 둘러싼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캠페인’이 살벌하게 이뤄진다는 게 공통된 진술이었다. 한국에 조용히 있어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와 이메일을 포함해 다양한 경로로 ‘나를 찍어달라’ ‘우리 아티스트를 고려해달라’는 홍보 글이 쇄도하며, ‘자, 우리 가수 찍어 줘, 그럼 나도 너희 가수 찍어줄게’ 하는 노골적인 메시지도 답지한다고 한다. 그래미 캠페인 대행사가 제시하는 매우 기본적인 캠페인 패키지가 5만달러(약 7300만원)부터라고 한 위원은 귀띔했다.

“미국 내에서는 수많은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서 네트워킹과 일종의 선거전이 1년 내내, 또 투표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투표 위원 A씨).”

이렇게 아등바등 그래미 후보 선정이나 수상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수십 년간 이어지는 명예와 산업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정작 그래미 자체에는 상금이 없다. 800달러짜리 트로피만 주면, 끝이다. 그러나 ‘그래미 이펙트’ ‘그래미 부스트’란 말이 있다. 그 효과는 덜 알려진 가수일수록 크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 매체 ‘롤링 스톤’에 따르면, 재즈 보컬리스트 사마라 조이는 2023년 최우수 신인상 수상 뒤 음반 판매량이 989%, 음원 스트리밍 횟수가 670% 증가했다. 싱어송라이터 허(H.E.R.)는 2021년 그래미 ‘올해의 노래’ 수상 당일에 해당 곡 ‘I Can’t Breathe’의 곡 판매량이 전일 대비 6771% 늘었다.

2026년 2월 1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리는 제68회 시상식 수상자로 래퍼 켄드릭 라마가 올해 최다 부문(9개) 후보에 올랐고, 레이디 가가도 7개 부문에 오르며 수상 기대를 높인다. 더욱이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Golden’ 이 주요 부문 후보에 올라, 한국에선 더 관심이 쏠린다. 최우수 신인상 후보에 캣츠아이가 드는 파란도 일어났다.

2026년 2월, 그래미 부스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한 길 사람 속도 모르는데 1만5000명의 ‘표심’을 어떻게 알까. 확실한 것은 12월 12일, 그래미 투표 위원의 최종 투표가 시작됐다는 것. 총성은 울렸다. 결승선은 아직 안갯속이다. 

임희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