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손잡고 약 11조원을 투자해 미국 테네시주에 전략 광물 제련소를 건설한다.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상무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 함께 ‘크루서블 합작법인(이하 JV)’을 세우며, JV는 고려아연 지분 약 10%를 확보해 고려아연 주주가 된다.
미국 전쟁부가 고려아연 주주가 되는 건 고려아연이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구축’ 전략에 핵심 파트너로 등극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이하 MBK·영풍) 연합의 경영권 분쟁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13종 광물, 年 54만t 생산⋯ 2029년 가동
고려아연은 12월 15일 이사회를 열고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약 65만㎡(약 20만 평) 규모 제련소를 건설한다고 의결했다. ‘미국 제련소(U.S. Smelter)’로 명명된 이번 프로젝트는 시설 투자만 66억달러(약 9조7482억원) 규모, 운용 자금과 금융 비용까지 포함하면 총 74억달러(약 10조9298억원) 규모다. 2026년 부지 조성을 시작으로 건설에 착수하며, 2029년부터 단계적 가동과 상업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연간 약 110만t 원료를 처리해, 54만t 규모의 최종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생산 품목은 총 13개 제품으로 △아연· 연·동 등 산업용 기초 금속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카드뮴·팔라듐·갈륨·게르마늄 등 핵심 전략 광물이다. 이와 함께 반도체 황산도 생산한다. 이 가운데 11종은 미국 지질조사국(USGS)을통해 발표된 미국 내무부의 ‘2025년 최종 핵심광물 목록’에 포함돼 있다.
제련소 프로젝트를 위해 고려아연과 미국 전쟁부·상무부, 미국 방산 전략 기업은 JV를 설립한다. 미국 전쟁부가 JV의 최대 주주(40.1%)로 참여하며, JV는 고려아연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려아연 지분 약 10%를 확보한다. 미국 정부가 해외 기업 지분에 투자하는 건 지극히 드문 사례다. 고려아연은 JV를 통해 투자금을 조달, 테네시주에 있는 기존 니르스타(Nyrstar) 제련소 부지를 인수한 뒤 이를 활용해 기반 시설을 재구축하고, 첨단 공정 기술을 적용해 제련소를 건설한다. 제련소 운영은 별개 법인인 고려아연의 미국 자회사 ‘크루서블 메탈스’가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에 따라 미국 장비 조달 및 그 밖의 목적을 위해 자금 2억1000만달러(약 3102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단순한 민간투자를 넘어 한미 경제 안보 동맹의 상징적 자산이 될 것”이라며 “중국이 장악한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탈피하려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에 고려아연이 핵심 파트너로 등극했다”고 평가했다. 고려아연은 “미국 내 제련 시설은 노후화하거나 폐쇄한 사례가 많아, 자국 내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이어서 구조적인 공급망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미국 전쟁부 및 상무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추진되는 제련소 건설은 미국 정부의 공급망 자립, 경제 안보 강화, 나아가 한미 간 공급망 협력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 장관도 환영의 메시지를 냈다. 러트닉 장관은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은 항공·우주, 국방,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터, 자동차, 산업 전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13종의 핵심·전략 광물을 대규모로 생산하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최첨단 프로젝트 투자를 통해 우리는 미국 내에서 핵심광물을 대량으로 생산함으로써, 외국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를 단호하게 강화하게 된다”고 했다. 스티븐 파인버그 미국 전쟁부 부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핵심광물을 미국의 국방 및 경제 안보에 필수적인 전략 자산으로 보고, 행정부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지시한 바 있다”며 “신규 제련소는 전략 광물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전력 증폭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 새 국면
이번 프로젝트는 고려아연과 MBK·영풍 연합의 경영권 분쟁에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당장 JV가 고려아연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려아연 지분 약 10%를 확보하면,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된다. 현재 MBK·영풍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44.24%를 보유하고 있다. 우호 지분을 포함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지분은 약 32%다. JV가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고려아연 발행 주식 약 10%를 확보하면, 총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MBK·영풍 연합은 40.2%, 최 회장 측은 29% 안팎으로 지분이 줄어든다. 대신 JV가 확보한 10% 지분은 최 회장 측 우군이 되기 때문에 최 회장 측 지분율은 최종 39% 안팎으로 올라간다. 최 회장 측 지분율이 MBK·영풍 연합과 비슷한 수준으로 오르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미국 정부와 파트너십은 고려아연 경영진에 강력한 명분을 제공한다” 며 “회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과 경제 안보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라는 논리는 향후 법정 공방에서 ‘경영권 방어용 제 삼자 배정 유상증자’라는 MBK·영풍 연합의 주장을 반박할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MBK·영풍,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경영권 방어 위해 韓 핵심 전략 자산 포기"
영풍은 앞선 12월 15일엔 “‘백기사’ 구하려고 대한민국 ‘아연 주권’ 포기하는 배신행위 즉각 중단하라” 는 입장을 냈다. 영풍은 입장문에서 “이번 안건은 미· 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엄중한 시기에 회사의 사업적 필요성보다 최 회장의 개인적 경영권 방어를 위해 대한민국의 핵심 전략 자산인 아연 주권을 포기하는, 국익에 반하는 결정”이라며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미국 정부에 내어주는 것은 자금 조달이 주목적이 아니라, 의결권을 확보해 최 회장 경영권을 방어해 줄 백기사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