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동산 세제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라는 보유 과세의 틀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 운용은 늘 거래세(양도세·취득세 등) 강화, 금융 규제(주택담보대출비율·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가계대출총량규제 등), 혹은 입지 규제(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 등) 쪽으로 기울어져 왔다. 정치권은 좌우를 막론하고 단기적이면서 가시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억누를 수 있는 수단을 선호해 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한국의 부동산 정책에 있어 보유세 도입은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보유세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히 조세 저항뿐만이 아니다. 재산세·종부세로 빠져나간 돈이 우리 동네 학교나 도로, 공원 같은 일상적 서비스로 어떻게 돌아오는지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보유세에 대한 조세 저항의 뿌리에는 재산세·종부세가 어디에서 걷혀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는 채 느끼는 납세자의 구조적 박탈감이 자리하고 있다.
보유세 논란, 정치적인 이유는
지방 재정의 독립성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왜 보유세 논의가 매번 정치적 격론만 남기고 실질 도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지 뚜렷하게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수 국가에서 보유세는 지방정부의 고유 권한이다. 지방이 스스로 세율을 정하고, 걷고, 그 재원을 학교·도로·치안·복지 등 지역 서비스의 기둥으로 삼는다. 그래서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적 자산을 늘리는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 유지·관리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시민적 실천이 된다. 세금은 주민 투표와 지방선거에서 직접 심판받고, 세율을 조금 높여 마련한 재원이 곧바로 학교 리모델링이나 공원 정비로 돌아오면 주민은 납세 효과를 몸으로 느낀다. 보유세가 조세를 넘어 ‘점유의 책임’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획득하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고리가 중간에서 끊겨 있다. 재산세는 명목적으로 지방세에 들어가나,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부터 공정시장가액비율, 세율 구조 같은 핵심 장치는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다. 고가 주택을 대상으로 한 종부세는 아예 국세다. 지방정부의 재정은 자체 세원보다 중앙이 배분하는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에 크게 의존하고, 중앙정부는 이 재정 배분을 통해 지방을 사실상 하위 집행기관처럼 관리한다. 이런 구조에서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보유세 강화를 요구할 유인은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세율을 올리려 해도 권한은 제한적이고, 주민 비판은 지방정부가 감당해야 하며, 재정 효과는 다시 중앙정부가 조정해 버리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보유세 개편은 매번 동력을 잃고 만다.
보유세는 지방 인프라 토대돼야
지방 재정이 독립되지 않으면, 보유세가 본래 가진 철학은 실현되기 어렵다. 보유세를 올리는 대신 취득세·양도세를 낮추는 식의 구조 개편을 하려면, 그에 따른 재정 손익을 감당하고 설득할 주체가 필요하다. 지방정부가 자체 세원을 기반으로 주민에게 직접 책임지는 구조가 갖춰져야 ‘이 동네 인프라를 쓰는 만큼, 나는 이만큼의 보유세를 낸다’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 반대로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세율과 기준을 틀어쥔 채 지방정부를 보조금 체계에 묶어두는 한, 보유세는 장기적 도시·주거 정책의 축이 될 수 없다.
예컨대 미국의 보유세는 지방정부 재정의 가장 굵은 기둥을 떠받치는 세목이다. 주·지방 재정 약 15%가 재산세에서 나오고, 지방정부만 떼어 놓고 보면 그 비중은 3분의 1까지 치솟는다. 재산세로 거둔 재원은 학교 운영비와 교사 인건비, 도로·가로등·하수도 같은 생활 인프라의 유지·보수, 경찰·소방·응급서비스, 공원·도서관·커뮤니티센터 등 지역 공동체를 굴러가게 하는 거의 모든 공공서비스로 흘러 들어간다.
특히 학부모의 눈으로 보면, 공립학교 재정에서 보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미국 K-12 교육비(미국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교육과정에 들어가는 비용)는 주 정부 40%, 지방정부 40%, 연방정부 10%라는 삼각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 중 지방정부 몫 대부분이 보유세에서 나온다. 그러니 높은 세금 부담에 대한 주민의 불만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질적 향상, 예를 들어 새 교사 채용, 시설 개선, 방과 후 프로그램 확충 같은 눈에 보이는 변화로 상당 부분 상쇄되고 있다. 보유세가 단순한 조세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투자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는 단순한 부동산 과세가 아니라, 지역 인프라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삶의 질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 참여하는 시민적 행위에 가깝다. 다시 말해,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지역 공공서비스의 비용을 함께 떠안는 일이며, 보유세는 그 책임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다.
부동산 과세, 비틀린 균형 바로 세워야
혹자는 높은 보유세 수입 덕에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사이의 격차만 커진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비싼 지역에서 보유세가 많이 걷힌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격차 확대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런 지역은 애초에 토지비와 인건비, 인프라 유지비 자체가 높아, 같은 도로를 고치고 같은 학교를 운영하는 데도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세수가 많아 보이는 것은 그 높은 비용 구조를 떠안기 위한 불가피한 지출과 대부분 상쇄돼 버린다. 이 차이를 외면한 채 ‘부촌(富村)은 더 좋은 서비스를 누린다’는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평면화한 해석에 가깝다.
또 미국에서 보유세는 단순한 재정 수단을 넘어, 지역 간 경쟁을 촉발하는 전략적 도구로 작동해 왔다. 후발 주(州)나 성장 잠재력이 낮은 카운티는 재산세율을 과감히 낮춰기업과 인구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주의 미래를 설계한다. 초기 부담을 줄여 투자 매력을 높이고, 기업이 들어오면 부동산 가치가 서서히 상승하면서 장기적 세수 기반이 넓어진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남부와 중서부의 여러 카운티는 ‘낮은 세율+규제 완화’ 조합으로 제조업과 물류 기업을 유치해 지역경제에 숨을 불어넣었다. 재산세가 격차를 키운 것이 아니라, 뒤처진 지역에 도리어 성장의 발판을 제공한 셈이다.
한국의 보유세 논쟁은 단지 세율 몇 퍼센트를 손보는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보유와 거래, 중앙과 지방, 책임과 권한 사이에 오랫동안 비틀려온 균형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보유세가 단순한 재원 조달을 넘어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반이고, 지역 스스로 삶의 질을 선택할 수 있는 민주적 장치라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