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1~11월 기준) 체결된 전국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 비중은 62.7%를 기록,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임대차 거래 10건 중 6.3건은 월세였고, 3.7건만 전세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월세 비중은 △2021년(이하 1~11월 누계 기준) 43.3% △2022년 51.8% △2023년 54.8% △2024년 57.4%로 몇 년 새 급속도로 상승했다.
집을 빌릴 때 집주인이 세입자를 면접하는 시대가 가까워졌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는 2026년 상반기 중 정보기술(IT) 기업 및 신용평가기관과 손잡고 ‘임대인·임차인 스크리닝 서비스’를 출시한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호 동의를 전제로, 집주인은 세입자의 반려동물, 차량, 흡연, 동거인 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선 낯선 방식이지만 월세가 주류인 외국에선 세입자 면접제가 보편적이다. 전세 품귀로 임대인 우위 시장이 되자, 한국에서도 ‘세입자 면접제’가 도입될 조짐이 보인다.
한국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나타나며 발생한 사례다. 월 임대료를 내지 않고 보증금을 목돈으로 맡기는 전세는 한국만의 독특한 임대차 제도다. 볼리비아와 인도 등 일부 국가에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한국처럼 보편적으로 이용되지는 않는다. 전세는 오랫동안 ‘내 집 마련’을 위한 ‘주거 사다리’로 쓰였지만, 이제는 월세에 밀려 임대차 시장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잃었다. ‘이코노미조선’은 국내외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전세 소멸의 원인과 임대차 시장의 지각변동을 분석했다.
1인 가구 증가, 갭투자 규제에 전세 급감
전세는 17~18세기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임대차 방식이다. ‘전세’라는 단어가 공문서에 처음 등장한 건 1910년이다. 조선총독부 ‘관습조사보고서’는 “전세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가옥 임대차 방법이며, 전세 금액은 가옥 가격의 반액 내지 7·8할이 통례”라고 적었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995년에는 임차 가구 중 67.2%가 전세였다. 2020년은 39.9%만 전세 가구로 나타났다. 이는 전세 소멸이 구조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원인은 1인 가구 증가가 꼽힌다. 해당 기간 1인 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는데, 1인 가구는 주로 소형 주택에 거주하며 초기 목돈 부담이 큰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월세에 사는 1인 가구 비중(42.3%·자가 포함 전체 주거 형태 기준)은 전체 가구(23.4%)보다 18.9%포인트 높았다.
또 저금리가 지속하며 집주인이 전세금을 운용해 얻는 수익이 줄어, 매달 꾸준한 현금 수익을 창출하고자 월세를 선택한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세입자도 2022년 말부터 전국에서 불거진 ‘전세 사기’ 사태로 원룸 및 다세대주택을 중심으로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관점에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202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정부 정책이 전세를 줄이고 월세화를 가속했다고 분석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주택자를 규제하면서 ‘똘똘한 한 채’가 사회적 기조로 자리 잡았고, 그 결과 전세 물건이 줄었다”며 “2020년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도입)까지 더해지면서 임대인 입장에서는 임대 사업을 지속할 유인이 줄었다”고 했다. 2025년 6·27 대출 규제는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 대출’을 전면 금지하며 갭투자를 막았는데, 이는 신축 아파트 입주 무렵 공급되는 전세를 급격히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10·15 부동산 대책은 서울·수도권에서 2년 실거주 의무를 부과, 기존 아파트에서도 신규 전세 물건이 줄었다.
전세, 주거 사다리인가 투자 사다리인가
전세는 매달 월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아 고정 주거비를 최소화한다는 장점이 크다. 전세로 거주하는 동안 차곡차곡 자금을 모을 수 있어, 주거 사다리로 애용됐다. 동시에 전세는 주택을 투자 목적으로 매수하는 갭투자 수단이다. 전세가 존재하는 한 갭투자는사라질 수 없고, 갭투자는 장기적으로는 집값을 끌어올린다. 이런 관점에서 월세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앤서니 장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세는 중산층이 고소득층에 투기적 주택 매입을 위한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라며 “집주인 입장에서 전세는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한 투기”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2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전세 대출로 가계 부채 비율이 너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하며, “전세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레버리지가 계속 확대되므로, 고통이 있어도 끊어야 할 시점” 이라고 밝혔다.
반면 월세 확산이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 가처분소득을 줄이고 생활고를 가중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전세가 사라질 경우 매달 고정 월 임대료를 부담해야 하는데, 이는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전세는 국민 다수가 고정 주거비를 아끼도록 했다”면서 “전세가 소멸하면 급격한 월세 상승, 주거비 부담 상승, 소득 불평등 심화 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2025년 1~11월 새로 임대차 계약을 맺은 서울 아파트 월세액은 평균 130만9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3% 상승했다. 해당 기간 신규 전세 계약의 평균 보증금이 5억7666만원에서 6억3439만원으로 10% 오른 것과 비교하면 월세 상승 폭이 더 가팔랐다.특히 급등한 집값을 고려하면, 주거 사다리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5년 1~12월 서울 아파트값은 11.3% 올랐다. 2024년 상승률(2.8%)과 비교하면 네 배가량 뛰었다. 수도권 집값은 상승하는 반면, 비수도권 집값은 하락하는 지역별 양극화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11월 말 기준 43.3%로 역대 최고였다.
대응책으로는 월세 시대를 받아들이고 한국도 외국처럼 기업형 임대주택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전세 공급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정부 정책을 철회하고, 전세 공급을 늘려 주거 사다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코널 뉴런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아시아·태평양(APAC) 리빙 부문 총괄은 “한국은 임차 가구 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라면서 “월세 중심 구조로 전환은 한국 임대 시장이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가 2025년 국내 디벨로퍼 엠지알브이(MGRV)와 손잡고 국내에서 기업형 임대주택 개발에 나서는 등 모건스탠리, KKR 같은 대형 글로벌 자본이 속속 국내에 진입하고 있다. 반면 이 연구위원은 “기업형 임대로 당장 대체하기는 어렵다”며 “전세 공급이 늘어날 만한 시장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월세화, 전셋값 상승 지속 전망
2026년에도 전세 축소 및 월세 확대는 이어질 전망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택 수요가 많은 도심 아파트 시장을 제외하면 전세 시장 유지는 쉽지 않을 것” 이라면서 “전세 축소는 지방 비아파트 시장에서는 이미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라고 말했다. 당장 신규 전세 공급도 적다. 직방에 따르면, 2026년 전국 입주 예정 물량은 17만7407가구로, 2025년 23만9948가구 대비 2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입주 물량은 2025년 약 11만 가구에서 2026년 8만7000여 가구 수준으로 낮아진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신규 입주 감소 △매수세 둔화 및 전세 수요 유입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인한 전세 매물 감소 등을 이유로 2026년 전국 전셋값이 4%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전국 전셋값이 연간 5.1% 상승한 이후로 역대 최고 수준 상승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수도권 전셋값이 연간 5.0% 이상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