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세 제도는 주택을 금융적인 측면에서 활용한 독특한 혁신이지만, 동시에 시장 불안을 증폭시키는 왜곡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이하 쿠시먼)에서 아시아·태평양(APAC) 리빙(Living·주거) 부문을 총괄하는 코널 뉴런드(Conal Newland)는 한국의 전세 제도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전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임대 방식”이라며 “월세 중심 구조로의 전환은 한국 임대 시장이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런드 총괄은 한국 주거 시장을 미국·유럽·아시아 주요 도시와 비교하며 전세의 금융적 성격, 월세 전환이 가져올 구조 변화, 청년·고령층 등 비(非)핵심 경제활동인구를 위한 주거 모델의 진화 방향을 짚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주거 구조는 유럽·북미 등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가.
“한국은 임차 가구 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다. 가구의 약 35%가 민간 임대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쿠시먼 분석 결과, 서울의 경우 51.7%가 임차 가구로, 이 중 전세가 17.6%, 월세가 34.1%를 차지한다. 영국(19%), 호주(26%), 일본(27%)과 비교해도 한국의 임대 비중은 높다. 한국의 주택 소유율은 58.4%로 비교적 높은 편이며, 이 중 약 60%는 주택 담보대출을 끼고 있다. 서울의 경우 주택 담보대출 차주가 원리금 상환에 소득의 약 40%를 쓰고 있다. 또한 한국은 일본과 유사하게 공공(정부 지원) 임대 주택 비중이 아직은 작지만,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는 공공 임대 비중이 높은 유럽과는 대조적이다. 북미의 경우 공공 임대도 있지만, 주거 지원은 주로 보조금 형태로 제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관점에서 전세는 얼마나 독특한 제도인가.
“전세는 글로벌 기관 투자자가 바라보는 주거 시장 범주에서는 매우 독특한 제도다.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장 규모가 작고, 적용 범위가 제한된 상품으로 인식돼 왔고, 그 결과 투자 참여 접근성이 낮은 편에 속했다. 글로벌 연기금이나 기관 투자자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임대 수익,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연동되는 현금 흐름을 선호한다. 월세 중심 구조로의 전환은 한국 임대 시장이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전세를 금융 혁신으로 봐야 하나, 시장 왜곡으로 봐야 하나.
“금융 혁신과 시장 왜곡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본다. 전세는 분명한 금융 혁신이다. 집값이 오르고 금리가 높은 환경에서도 세입자가 월세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고, 자본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제도였다. 임대인에게는 무이자 자금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왜곡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임대인이 전세금을 재활용해 추가 주택을 매입하거나 기존 전세금을 상환하는 구조는 집값 하락이나 금융 환경 변화 시 유동성 리스크를 증폭시킨다. 계약 만기 시점에 리스크가 집중되고, 최근 전세 사기 사례처럼 범죄에 악용될 여지도 컸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은 어떤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까.
대출 기반의 임대 구조로 이동하면서, 일부 개인 임대인은 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다. 반대로 전문 운영 역량을 갖춘 기관 투자자에는 시장 진입과 통합의 기회가 생긴다. 최근 부동산투자신탁(REITs·리츠) 제도 개편 등으로 기관의 임대주택 참여 여건도 개선되고 있다. 다만 일부 세제 정책은 향후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세 중심 구조의 장단점은.
“월세는 세입자 입장에서 초기 부담이 적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전세는 보증금이 안전하다면 자본을 지키는 데 유리하지만, 그 전제가 무너질 경우 리스크는 매우 크다. 전세의 가장 큰 문제는 ‘보증금 손실 가능성’이다. 이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세입자가 월세를 선호하게 된 측면이 크다.”
청년·고령층·1인 가구에는 어떤 주거 모델이 적합한가.
“청년층과 1인 가구에는 코리빙(Co-liv-ing·공유 주거)이 적합하다. 개인 침실 공간을 갖추되 주방과 라운지 등 공용 공간과 커뮤니티, 관리 서비스가 결합된 형태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코리빙도 확산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200가구 이상 규모의 수직형 시니어 주거 단지가 늘고 있으며, 독립생활부터 치매·간호 케어까지 연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한국에도 적합한 모델로, 인구구조적 요인에 힘입어 기관 투자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청년층의 내 집 마련 어려움은 세계적 현상인가.
“선진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보면 그렇다. 서울, 홍콩, 시드니, 도쿄 등 APAC 주요 도시에서는 주택 가격 대비 소득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이는 글로벌 공통 현상이다.”
뉴욕·홍콩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어떤 주거 형태가 확산되고 있나.
“홍콩에서는 해외 유학생 증가 정책과 맞물려 학생 주택과 코리빙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호텔·오피스의 주거 전환도 활발하다. 뉴욕은 오피스-주거 전환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코리빙·커뮤니티형 주거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뉴욕에서는 임대 거주가 이미 장기적 선택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상 깊었던 각국의 주거 정책은.
“싱가포르의 BTO(Build-To-Order·분양 대기) 제도가 대표적으로 인상적인 주거 정책이다. 영국의 ‘공유 소유(shared owner-ship)’ 모델도 주목할 만하다. 노르웨이의 스타트론(Startlån)처럼 내 집 마련의 ‘다리’ 역할을 하는 정책도 참고할 만하다.”
향후 글로벌 주거 시장의 기회와 리스크는.
“리스크는 공급과 부담 가능성에 있다. 건설비 상승, 금융 비용, 규제 리스크가 가장 큰 변수다. 기회는 코리빙, 학생 주택, 고령자 주거, 기존 건물의 재활용에 있다. 특히 고령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시니어 주거는 가장 확실한 투자 테마다.”
정부가 만든 주거 사다리… 싱가포르·영국·노르웨이의 선택
싱가포르의 BTO 제도는 정부가 주도해 공공 주택을 공급하고, 무주택 실수요자가 청약 후 일정 기간을 기다려 분양받는 방식이다.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게 책정되고, 소득·무주택 요건을 엄격히 적용해 투기 수요를 차단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국의 공유 소유 모델은 주택 지분의 일부만 먼저 매입하고 나머지는 임대료를 내며 거주한 뒤, 소득 여건이 개선되면 지분을 단계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초기 자금 부담을 낮춰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진입을 돕는 제도다. 노르웨이의 스타트론은 지방정부가 주택 구매 능력이 부족한 청년·저소득층·한부모 가구 등에 저리 또는 조건부 대출을 제공하는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