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할 때 자산 불평등은 심하지만, 소득 불평등은 그다지 심하지 않다. 이는 전세 제도 덕분이다. 전세는 소득에서 고정적으로 지출해야만 하는 주거비를 국민 다수가 아끼도록 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세가 한국인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OECD가 발표한 ‘2024 더 나은 삶(BLI·Better Life Index)’ 지수를 살펴보면, 한국은 가처분소득의 14.7%만 주거비에 써 OECD 국가 중 국민 주거비 부담이 가장 작았다. 영국(23.2%), 캐나다(22.9%), 일본(21.8%), 미국(18.3%) 등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OECD 평균(20.5%)과 비교해도 유의미하게 낮다. 

우 위원은 “전세가 집값을 올리는 역할을 일정 부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집값을 끌어올린 주된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전세가 소멸하면 급격한 월세 상승, 주거비 부담 가중, 소득 불평등 심화 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세의 월세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양쪽에서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임대인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전세보다 월세를 놓는 것이 금전적으로 유리해졌다. 전세금을 돌려줘도 될 만큼 자금 여유가 있는 집주인부터 속속 월세로 전환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 사태 때문에 비(非)아파트인 연립·다세대주택을 중심으로 월세를 선호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아울러 전세 사기 사태 이후 정부가 2023년부터 ‘깡통 전세’를 막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공시지가의 150%에서 126%로 강화한 결과, 전세가 반전세로 전환되었다. 줄어든 보증 한도 내에서만 전세 보증금을 내고, 초과 금액은 월세로 전환해 내게 된 것이다. 이런 정부 정책도 전세의 월세화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한다.”

전세 소멸 시대의 후폭풍은.

“한국은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자산 불평등은 심하지만, 소득 불평등은 그다지 심하지 않다. 이는 전세 제도 덕분이다. 전세는 소득에서 고정적으로 지출해야만 하는 주거비를 국민 다수가 아끼도록 했다. 국내에서 전세가 소멸하면 OECD 국가가 겪고 있는 임대차 시장 문제점이 고스란히 발생할 것이다. 급격한 월세 상승, 주거비 부담 가중, 소득 불평등 심화 등 결과가 나타날 거다. 전세의 월세화는 그래서 안타깝다.”

전세가 집값을 끌어올렸다는 지적이 있다.

“전세가 집값을 올리는 역할을 일정 부분 한 것은 사실이다. 갭투자가 빈번했고, 특정 시기에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도 전세를 끼고 주택 2~3채를 매수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있었다. 전세를 활용한 갭투자가 집값을 단기 급등시키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세가 집값을 끌어올린 주된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현재 서울은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55~60%인데, 지방은 전세가율이 80~90%다. 전세가 집값 상승의 주된 문제라는 논리라면, 지금 서울이 아닌 지방 집값이 폭등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울러 전세는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제도로, 조선 시대 문헌에는 현재의 전세에 해당하는 전당(典當) 제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 - 서울시립대 세무학, 동국대 법학 석·박사, 2006년 제43회 세무사, 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 - 서울시립대 세무학, 동국대 법학 석·박사, 2006년 제43회 세무사, 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

전세는 과거부터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해 오랜 기간 존속한 제도이고, 집값 상승은 특정 시기에 다른 중요한 모멘텀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전세를 ‘없애야 하는 제도’라고 접근하는 방식은 잘못됐다. 똑같이 다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이라고 가정할 때 과연 전세를 놓으면 잘못이고 월세는 바람직한 걸까. 전세 대출을 과도하게 한 것도 문제지만, 정책적으로 전세 대출을 일정 수준 이하로 확 낮추거나 없애겠다는 접근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정책적으로 전세 소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지역을 구분해 전세를 지원해 주는 방향이 필요하다. 서울과 수도권은 집값 상승 기조가 이어지는 반면, 지방 집값은 완만하게 하락하거나 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하는 흐름이다. 서울·수도권과 지방 집값이 양극화되고 있다. 지방에서라도 저리(低利) 전세 대출을 지원하거나 종전처럼 공시지가의 150%까지 HUG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풀면서 지원하면, 전세가 해당 지역에서 한동안 더 유지되도록 할 수 있다. 집값 상승 우려로 서울·수도권에서 전세 대출을 풀기 어렵다면 지역을 구분하는 해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다주택으로 취득하더라도 종합부동산세 감면,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등 혜택을 준다. 지금도 이미 지방에서는 다주택자를 죄악시하지 않고 오히려 혜택을 주는 것이다. 똑같은 아파트인데도 지방 아파트에 차이를 둔다. 마찬가지로 지방 전세 지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2026년 전세 시장 전망은.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하는 현상은 꾸준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전셋값 상승이다. 서울의 중심부 한강 벨트나 그 주변에 있는 곳을 기준으로 보면, 최근 6개월 사이에 30평대 아파트를 기준으로 전셋값이 1억원씩 올랐다. 

2026~2027년에는 서울과 수도권에 아파트 입주 물량이 줄어, 전세 물량의 신규 공급이 부족하다. 2025년 하반기에 있었던 상승 그 이상으로 2026~2027년 전셋값 상승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2025년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이 규제 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는데, 이것이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이로 인해 서울·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사면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해서 집을 사더라도 전세를 놓을 수 없다. 전세 물건이 줄어드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Plus Point

전세의 기원은 조선 시대
“당시에도 전세 보증금 미반환은 상당히 중대한 범죄로 여겨져”

고성민 기자

전세는 우리나라 주택 시장에서 중요하고 특별하지만, 그 기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학계에서는 조선 시대에 이미 전세가 관습적으로 형성돼 있었다고 본다. 한국주택금융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 기원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전당 유래설, 두 번째는 환퇴(還退) 유래설이다. 두 견해 모두 전세가 관습적으로 형성된 시기를 19세기 말 조선 시대로 추정한다. 전당은 고려 시대부터 시행된 토지 담보 제도로, 기한 안에 자금을 변제하지 못하면 그 담보 소유권을 채권자에게 귀속시켰다. 고려 시대 논밭을 대상으로 하던 전당 제도는 조선 시대에 가옥으로 확장됐다. 그래서 전세의 기원으로 꼽힌다. 환퇴는 환매 권리를 유보하는 특약으로 토지 등을 매매하는 관습이다.

1700년대를 전후로 있었던 조선 시대 세매(貰賣) 관습이 전세의 기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세매는 집주인이 세전(貰錢)을 받고 집을 비운 뒤 본인 소유 집에서 임차인이 살도록 하되, 세전을 돌려주면 다시 집주인이 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형태의 매매 관습이었다. 당시에는 양반 가문이 경제적 궁핍에도 불구하고 본가나 가문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것에 대해 유교적인 관점에서 거부감이 있어, 세매 형태로 임차를 주고 낙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영상 한국주택금융공사 연구위원은 “조선 시대 세전 미반환 죄는 상당히 중대한 범죄로 여겨졌으며, 세전을 반환하지 못한 경우 높은 수준의 형법적 처벌이 있었다”면서 “1700년대 조선 후기에도 현재 같은 전세 사기 및 보증금 손실 위험이 상존했다”고 분석했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