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2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2025 시알 인터푸드 박람회’ 한국 전시관. 한국 농산물 수출 중소기업 ‘쿠디’가 시식용으로 딸기 한 팩을 내놓자, 순식간에 열댓 명이 몰려들었다. 인도네시아인 라나(26)는 “인도네시아 딸기는 신맛이 강한데, 한국산 딸기는 꿀을 넣은 것처럼 달고 상큼하다”라고 했다.
이날 인도네시아 신선 식품 수입사 ‘웨이스 트레이딩’은 쿠디와 200만달러(약 28억7700만원) 규모의 한국 딸기·포도·배 수입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웨이스 트레이딩 직원은 “한국 딸기의 인기가 매년 늘고 있어 이번 겨울에 꼭 수입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딸기가 풍부한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동남아시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국 딸기는 동남아산·중국산보다 비싸 프리미엄 과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 딸기를 찾는 사람이 많다. 참고로 한국 딸기의 2024년 전 세계 수출 규모는 6753만달러(약 971억4190만원)를 기록했다. 5년 전(4590만달러)보다 47% 증가한 것으로, 한국이 수출하는 모든 농산물을 통틀어 1위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최근 5년간 한국 딸기 수입액이 다섯 배 증가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동남아는 한국 딸기 수출 물량 90%를 차지하며 K-딸기 열풍을 이끌고 있다.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한국 딸기는 딸기라는 과일의 정의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고 딱딱한 과일’이었던 딸기가 ‘달고 부드럽지만, 씹는 맛이 있는 과일’이 되어 동남아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김현숙 딸기연구소(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 팀장은 “동남아에서 딸기는 주로 고산지대에서 나는 편이기 때문에, 딱딱하고 달지 않은 편”이라면서 “호주나 미국은 딸기를 주로 디저트로 먹어 생과로 먹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딸기 당도가 높지 않다”라고 말했다.
동남아 인플루언서도 韓 딸기 자랑
딸기 철이 되면 싱가포르·베트남·인도네시아 주요 프리미엄 마트 과일 코너는 한국 딸기로 채워진다. 베트남 딸기 수입액의 82%가 한국산이고, 인도네시아(70%), 싱가포르(41%)에서도 한국 딸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격은 만만치 않다. 롯데마트 인도네시아 법인에 따르면, 2025년 1월 한국 딸기 가격은 100g당 2520원으로, 인도네시아산(1420원), 중국산(2420원)보다 비쌌다. 그럼에도 딸기는 인도네시아인이 라면·김과 함께 가장 많이 구입하는 한국 제품이다.
동남아 인플루언서도 한국 딸기 열풍에 불을 지핀다. 인도네시아 유명 틱토커·유튜버는 한국 딸기를 먹거나 튀김·라면 요리에 활용하는 영상을 잇달아 올린다. “나도 한국 딸기를 먹고 싶다” “먹어봤더니 정말 달다” 등의 댓글이 이어진다.
연말이 되면 동남아 유통 업체와 수입업자는 한국 딸기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한다. 인도네시아 최대 한국 과일 수입 업체 ‘페테 부아 르스타리’의 리드완 응가시누르 대표는 “11월만 되면 유통 업체에서 한국 딸기를 찾는 연락이 쏟아진다”고 했다.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설향·매향·금실… K-딸기 열풍 씨앗 됐다
딸기를 전 세계에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멕시코, 스페인, 미국이다. 그런데 유독 동남아 국가는 한국 딸기에 열광한다. 한국 딸기 특유의 단맛도 인기 요인이지만, 품질이 고르게 유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유정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수출부 과장은 “동남아에서는 기후 특성상 딸기 재배가 어렵고, 미국·호주는 노지 재배 비중이 높아 품질 편차가 크다”면서 “한국 딸기의 품질과 당도는 독보적”이라고 했다.
그 배경에는 20여 년간 이어진 국내 연구진의 품종 개발이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국내 재배 딸기 90%가 일본 품종인 장희(아키히메)였다. 그런데 일본에서 로열티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국내 연구진이 국산 품종 개발에 착수했다. 첫 결실이 딸기연구소가 2005년 만든 ‘설향’이다. 설향은 일본 품종에 비해 겨울에도 잘 자라고, 키우기 수월하며, 열매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국내시장을 사로잡으며, 일본산 품종을 몰아내는 주역이 됐다. 현재 국내서 일본 품종 비중은 5% 아래로 떨어졌다.
국내 연구진은 설향 이후에도 ‘매향’ ‘금실’ ‘킹스베리’ 등 신품종을 계속 개발했다. 딸기 당도는 20년 전 8~9브릭스에서 11~13브릭스로 높아졌다. 과육이 단단한 금실은 수출 확대의 핵심 품종이 됐고, 킹스베리와 ‘알타킹’은 대과(大果)·소량 판매 유행을 만들었다. 흰 딸기 ‘백리향’ ‘만년설’ ‘피치베리’ 등은 이색 딸기 시장을 열었다.
금실 쏠림, 중국 공세는 극복 과제
다만, 한국 딸기 업계에 과제도 있다. 딸기 수출을 지금보다 더 확대하려면 수출 품목 쏠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수출되는 딸기 중 상당수는 금실 품종이다. 이는 딸기 수출 농가가 많은 경상남도에서 금실을 많이 키우기 때문이다. 수출이 특정 지역에서 나는 한두 개 품종을 중심으로 이뤄지면, 일부 농가가 기상 악화나 병충해 피해로 흉작일 때 전체 수출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경상남도 지역의 이상기후로 딸기 수출 물량이 전년보다 2.6% 감소했다. 김현숙 팀장은 “신품종은 점유율을 1% 늘리기도 어렵다”며 “연구 지원이 필요하고, 품종 개발 이후에는 재배 기술 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해서 수출품의 최상급 품질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동남아 현지 스마트팜 재배 확산이 한국 딸기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리드완 대표는 “한국산 과일 및 식품은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최상급 아닌 상품이 유통되면 중국산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못해 ‘한국산 프리미엄’ 이미지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농업계에서는 지속적인 종자 개발이 한국 딸기의 경쟁력을 지켜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승훈 aT 자카르타지사는 “신선식품은 품질을 따라잡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한국은 비타베리, 스노우베리 등 딸기 신품종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어 큰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동 기획: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