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5년 1~11월 서울 아파트 월세 가격은 누적 3.29% 올라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갭투자’를 억제해 시장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던 10·15 부동산 대책이 시장 내에서 ‘비용의 전가(cost pass-through)’라는 경제학적 기제로 작동한 결과로 해석된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던 정책적 선택이 전세 중심이던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러한 전환 과정이 가파른 주거비 부담 확대를 수반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다.
엄밀히 말해 지난 반세기 한국 주택 시장을 지탱해 온 핵심 기제는 전세라는 독특한 사금융(private finance) 제도였다. 주택 담보대출이 척박했던 고성장기, 전세는 임대인에게는 무이자 자금 조달 창구였고 임차인에게는 주거 사다리였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목격한 전국적인 갭투자 열풍과 집값 급등의 뇌관으로 변질된 것은 2010년대의 특수한 경제·정책적 배경에 기인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하우스푸어’ 사태로 대중이 주택 매수를 주저하고 전세에 머물기를 택하자, 전세 수요 쏠림으로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갭(gap)이 좁혀졌다. 여기에 결정적인 불을 지핀 것이 2008년 정부 보증 확대로 물꼬를 트고, 2013년 9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 G)의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출시와 함께 본격화한 전세 대출의 제도화였다.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전세 보증금의 80~90%를 저리로 대출해 주는 시스템과 공적 보증이 결합하자, 막대한 유동성이 임대차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실제 2012년말 23조원 수준에 불과했던 전세 대출 잔액은 대출 한도가 최대 5억원(수도권)까지 늘어난 규제 완화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해 2021년 말 180조원에 육박하며 10년 새 여덟 배 가까이 폭증했다.
이렇듯 대출로 조달된 막대한 유동성은 전셋값을 밀어 올렸고, 높아진 전셋값은 갭투자자가 적은 자본으로 주택을 매집할 수 있는 강력한 ‘레버리지’가 돼 줬다. 결국 2016년 이후, 전세 대출이라는 유동성의 힘을 빌린 갭투자가 전국적 투자 유형으로 고착화됐고, 이것이 다시 매매가를 떠받치며 집값을 견인하는 거대한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이 메커니즘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면, 갭투자는 개인 임대인이 미래의 자본 이득(capital gain)을 기대하며 현재의 임대 수익(income gain)을 포기하는 구조였다. 임대소득을 자산 가격으로 나눈 비율을 자본환원율(cap rate)이라고 하는데, 서울 아파트의 자본환원율이 장기간 시중금리보다 낮은 1~2% 수준에 머물렀던 것은 집주인이 미래의 집값 상승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민간 영역에서 거대한 ‘암묵적 주거 보조금(implicit subsidy)’이 지급돼 온 셈이다.
그러나 10·15 부동산 대책을 포함한 일련의 규제 강화는 이러한 ‘보조금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 갭투자가 사실상 원천 봉쇄되면서 전세 시장의 주요 공급원의 신규 진입이 차단됐고, 이는 전세 공급의 구조적 위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가 꺾이고 보유세 같은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환경에서는 임대인 또한 자연스럽게 3~5% 수준의 자본환원율을 확보하려는 경제적 유인을 갖게 된다. 즉, 최근의 월세 급등세는 그동안 갭투자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낮게 유지됐던 주거 비용이 공급 축소와 비용 현실화 과정을 거치며 점차 제값을 찾아가는 구조적 전환의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문제는 이러한 임차 비용 상승은 지출 탄력성이 낮은 한국 가계의 재무구조에 상당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데이터에 따르면, 고물가 여파로 한국의 실질임금은 2024년 1.1% 감소하며 사실상 소득이 뒷걸음질 쳤다. 소득은 줄었는데, 쓸 곳은 줄지 않는다. 반면, 소득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필수 소비 지출의 비중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가계 지출 중 식료품비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계수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며 2010년대 초반보다 높은 수준까지 올라섰고, 사교육비 총액은 2024년 29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처럼 식비와 교육비처럼 줄이기 어려운 ‘하방 경직적’ 지출이 가계부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주거비 부담까지 빠르게 늘어난다면,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조사에서 우리나라 임차 가구의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RIR)은 대체로 16~19%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이것이 국제적으로 주거비 부담 판단에 자주 사용되는 임계치인 30%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높아진다면, 가계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유 자금은 상당 폭 줄어들 수 있다. 가처분소득 축소는 소비를 위축시키고, 이는 내수 부진과 성장세 둔화로 이어지는 거시 경제적 악순환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다.
결국 우리는 외통수에 걸린 형국이다. 집값을 잡기 위해 갭투자를 막으니, 임차인의 주거비가 상승하고 있다. 전세 제도가 제공했던 ‘낮은 주거비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소득수준과 복지 시스템은 아직 ‘높은 월세의 시대’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지금 정책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이 딜레마를 직시하고 ‘임대 시장 연착륙(soft land-ing)’ 전략을 짜는 것이다. 첫째, 보유세의 급격한 인상이 세입자에게 곧바로 전가되지 않도록 과세 속도를 조절하는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 둘째, 월세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해 중산층이 겪을 가처분소득 쇼크를 방어해야 한다. 공제 한도를 상향하고 소득 요건을 현실화해,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실질적인 ‘주거비 보전’ 정책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도시 재생 기구나 네덜란드의 주택 협회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중산층 임대 법인’을 육성해야 한다. 이는 민간 기업의 효율성을 갖추되 수익 극대화보다 주거 안정을 우선하는 ‘제3의 섹터’ 를 만드는 일이다. LH가 담당하는 저소득층 복지 주택과 민간 건설사의 고가 월세 시장 사이, 현재 텅 비어 있는 그 ‘중간 지대’를 채우는, 주거비 정상화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