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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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환점에 서면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자기, 또는 자아에 대한 되물음이다. 이 질문은 심리학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요즘 심리학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종교에서는 자기를 부인(否認)하라고 하거나, 그것이 환상이라며 무아(無我)를 강조하기도 한다. 사실 지나치게 강한 자기 개념을 경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사나 고객에게 ‘넵’만 반복해서 대답하는 직장인을 ‘넵무새’라고 하는 걸 보면, 현대인은 자아가 없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리더의 자기 정체성은 어떤가. 헬레니즘 문화는 영웅을 좋아한다. 리더십 담론도 위인 리더십으로 출발했는데, 영웅의 정복 서사는 서구 문화의 확장과 관련이 깊다. 위인 리더는 자기 색깔이 선명하다. 지금도 위인 리더십을 활용한 유튜브 콘텐츠나 책이 인기를 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연구해 보면 위인 리더십은 과학적 실체가 약하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지 않은가. 우리에게 ‘까방권(까임 방지권)’을 가진 존재로 여겨지는 세종대왕마저도 조선 경제사를 연구한 학자에게는 노비 제도를 근거로 비판받는다.

사회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리더는 익숙한 루틴을 깨고, 카멜레온처럼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조직심리학 연구에서 이런 리더의 강점을 ‘리더 자기 복잡성(lead-er self-complexity)’이라고 한다.

한태영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 - 뉴욕주립대 산업조직심리 박사, 현 삼성전자 자문 교수, 전 산업및조직심리학회 회장
한태영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 - 뉴욕주립대 산업조직심리 박사, 현 삼성전자 자문 교수, 전 산업및조직심리학회 회장

이는 사람들이 자아상을 만들어 가면서 타인 앞에서 수행하는 자기 역할을 상황에 따라 바꾸고,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다양하게 생각하는 정도를 말한다. 탁월한 장군은 전쟁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좋은 리더는 한 가지 정체성에 갇히지 않는다. ‘타고난’ 경영자, ‘뼛속까지’ 군인, ‘천상’ 엔지니어 등, 이런 수식이 어울리는 사람은 좋은 리더가 아니다.

자기 복잡성이 높은 리더는 강한 이념이나고정된 마인드셋에 얽매이지 않는다. 특히 오늘의 기업 조직에서는 과거를 향수하거나, 꼼꼼하게 기록하는 단정한 ‘대기업 김 부장’ 형 리더는 좋은 리더일 수 없다. 

“임자, 해보기는 했어?” 고(故) 정주영 회장은 유능한 임원이 부정적인 결론으로 보고할 때, 그들의 논리 체계에 도전했었다고 한다. 모범 답안을 내기보다 상황에 맞는 유연함을 실행하는 사람을 원한 것이다. 

결국 리더의 자기 복잡성은 상황에 따라 최적의 통솔 역할을 포착하는 힘이다. 따르는 사람들은 그 리더를 ‘실(實)하다’라고 한다. 2025년 말 국내 기업 임원 인사의 키워드로 ‘실행력’이 공통적으로 꼽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유연함이 원칙 없는 다양성을 뜻하는 건 아닐 게다. 기독교 위인인 바울은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라며 그 중심을 사람에 두었다. 리더 자기 복잡성의 원칙은 자신의 결정에 영향받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평가받는 지원자, 승진 소식에 기뻐할 가족, 규제에 힘들어하는 상공인 등 리더의 정체성은 자신이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존중할 때 진정한 유연성으로 발휘된다.

심리학은 행동을 결정하는 성장 과정이나 습관의 힘을 곧잘 설명한다. 하지만 좋은 삶은 과거가 만들어낸 습관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미래로 끌려 들어가냐는 거다. 특히 좋은 리더는 사람과 관계에서 미래의 역할을 포착한다. 해가 바뀌면, 그런 시도가 더 빛난다. 

한태영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