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나타난 급격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최근 5년 동안 30% 이상의 건축 공사비 상승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웬만한 수도권 재건축 사업장에서도 건설사와 조합 간 공사비 협상 탓에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건축에 대해 패스트 트랙으로 재건축 인허가 기간을 줄여주고, 용적률 상향 등 각종 인센티브로 사업성을 높여주려고 하지만, 이미 늘어난 공사비의 무게를 상쇄하기는 역부족이다.
꼭 집을 비우고 부수는 것만이 정답일까. 지은 지 30년이 지났어도 아직은 쓸 만해 보이는데, 멀쩡한 집을 허물고 새로 짓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다만, 그대로 살기에는 삶의 질이 떨어져 조금이라도 편리성(便利性)을 높여주고 싶다. 그렇다면 최근 떠오르기 시작한 이주 없는 리뉴얼(대수선)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 지금 리뉴얼인가
최근 재건축 시장에서는 ‘무(無)이주 리뉴얼’ 사업 모델이 화제다. 입주민이 계속 집에 살면서 외관·조경·인테리어·커뮤니티 시설을 신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모델이다. 성형수술에 빗대 얘기하면, 재건축은 ‘장기 입원(이주 필요)’이 필수인 전신 재건 성형으로,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크다. 리모델링은 ‘단기 입원(이주 필요)’으로 골격은 유지하지만, 역시 이목구비 구조를 성형하기에, 수술비가 비싼 편이다. 리뉴얼은 ‘통원 치료(이주 없이 거주)’ 가능한 안티에이징 시술로 기능 복구와 외관 업그레이드에 초점을 맞춘다. 성형 역시 수술·시술 범위, 기간, 난도 등에 따라 그 형태가 구별되는데, 형태와 관계없이 그 비용은 결국 환자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귀속된다.
공사비 쇼크로 인한 분담금 공포는 구축 아파트 단지 입주민으로 하여금 안전하고, 회복이 빠르며, 비용이 적게 드는 리뉴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특히, 큰 수술이 무서운 고령층 입주민일수록 혈액이 부족해 수술대 위에서 수술이 멈출 수 있는 끔찍한 장면을 상상하기 싫어할 것이다. 이에 반해 통원 치료하듯 살면서 저속 노화처럼 조금씩 고치거나, 짧은 기간에 당시의 시세대로 시술을 끝내길 더 바란다.
이는 사회·환경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원주민 이주 문제와 지역 공동체 해체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건축 폐기물 처리와 자원 낭비, 탄소 배출 등의 환경적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리뉴얼에 대한 관심 집중은 공급자인 건설사의 마케팅과 사업 의지도 한몫한다. 아파트 리뉴얼을 조선업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한 번 수주해 아파트를 짓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전 생애 주기 동안 지속적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운영 사업으로 보고 건설업의 가치 사슬로 확장하는 것이다.
리뉴얼, 신축보다 경제성이 있을까
거주자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이주하지 않고도 대대적으로 수선하는 이른바 리뉴얼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보다 경제적 타당성이 있을까. 과잉투자가 아닌 비용 대비 가치가 높은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투입 비용 대비 자산 가치 상승, 즉 증분 이익이 많이 발생하면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아파트의 효용 가치는 주로 ‘주거 쾌적성’에 기반한다. 주거 쾌적성은 토지에 귀속된 입지적 요인과 건물의 속성인 물리적 요인이라는 두 가지 핵심축으로 구성된다. 입지적 요인의 예는 지하철역과 거리, 학군, 상업·업무 시설과 접근성, 자연환경(조망 외) 등이고, 물리적 요인은 시공 업체 브랜드, 노후 정도, 건물 구조·마감 상태, 내부 평면 방식(bay), 주차 편의성, 커뮤니티 공간 등이다. 입지적 요인은 부동산의 지리적 고정성으로 인해 바뀌지 않는 상수인 반면, 물리적 요인은 투자 규모에 비례하는 가변적 성격을 띤다. 따라서 고정된 입지 조건 안에서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물리적 개선을 끌어내는 것이 투입 비용 대비 높은 가치를 끌어내는 본질인 것이다. 리뉴얼은 거대한 땅값(고정비)이 이미 버티고 있으므로, 투입될 공사비를 최소화하면서 비용 대비 부동산 가치 상승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가치가 5억원, 향후 분담금이 재건축은 5억원, 리뉴얼은 1억원이 예상되는 아파트가 있다. 사업 완료 후 가치가 재건축은 15억원, 리뉴얼은 7.5억원이 된다고 가정할 경우 재건축은 5억원을 들여 5억원의 증분 가치가 발생한 것이고, 리뉴얼은 1억원을 들여 1.5억원의 증분 가치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증분 이익÷증분 비용’을 따져보면, 재건축은 1.0이고, 리뉴얼은 1.5다. 사업 기간 장기화와 분양 및 철거·이주 리스크 등 아파트 재건축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안정성과 투자 효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리뉴얼이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모든 아파트 단지에 리뉴얼의 비용 효율성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아파트 구매 수요가 적은 지방, 규모의 경제 달성이 어려운 나 홀로 아파트, 300가구 미만의 소규모 단지, 구조적으로 재건축이 필요한 안전 진단 등급 단지, 건물 스펙상 주차·커뮤니티·외관 등의 개선이 불가능한 단지는 리뉴얼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
재활용의 미학
2000년대 이후 대거 공급된 브랜드 고층 아파트를 모두 40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할 수 있을까. 치솟는 공사비는 물론, 100년 넘게 견딜 수 있다는 콘크리트 내구성을 생각하면, 이제는 허물고 새로 짓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얼죽신’이라는 말은 ‘얼어 죽어도 신축 아파트’를 뜻하는 부동산 신조어다. 신축 아파트는 최신 트렌드와 디자인을 반영한 설계를 선보여 주거 시장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기술 진보로 건축 공법과 신소재, 경관 조명, 정보기술(IT) 기반의 관리 시스템이 융합돼 노후 아파트도 신축에 버금가는 주거 환경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여기에 리뉴얼은 건축물을 철거할 때 발생하는 막대한 탄소와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 재활용을 통해 후손에게 환경 가치를 불어넣고, 원주민 이주 문제와 지역 공동체 해체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착한 업사이클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리뉴얼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인센티브(용적률·금융·세금 등) 확대를 통해 30년마다 허무는 부동산 문화가 아닌, 관리하며 가꾸는 주거 문화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