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민속오일장 입구. / 사진 최갑수
란민속오일장 입구. / 사진 최갑수

경기 성남시 모란민속오일장(모란전통시장‧이하 모란시장)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장터 중 하나다. 매월 끝자리가 4·9일인 날에 열린다. 장이 서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 8호선 모란역 5번 출구가 붐빈다. 새벽부터 상인들이 모여 농수산물, 건어물, 약초, 공구, 의류, 생활 잡화까지 줄줄이 좌판을 늘어놓는다. 평소에도 상설 시장 골목은 활기가 넘치지만, 장날엔 시장 전체가 커다란 축제처럼 달아오른다.

모란시장이 처음 선 것은 1961년쯤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평양이 고향인 예비역 육군 대령 김창숙씨가 재향 군인들과 함께 지금의 모란장터(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에서 하천 개간 사업을 하면서 장터를 만든 것이 모란시장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모란이라는 이름은 모란봉에서 따와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성남시 수정구 모란 예식장 주변에 있었으나 1970~80년대에는 성남 시외버스터미널과 성남 대로변에 형성됐다가 1990년에 지금의 성남동 대원천 복개지 1만㎡(약 3300여 평)으로 옮겨졌다.

고소한 달콤한 향이 가득한 기름 골목

‘백년기름특화거리’는 시장 입구에 있다. 골목 초입부터 사방에서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한다. 300m 구간에는 40여 개의 기름 가게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춘천·천안·화성·여주·강진기름집 등 간판만 봐도 전국 팔도 기름집이 모였다. 2022년 11월 성남시가 ‘대한민국 제1호 백년기름특화거리’로 지정했는데, 기름집 중 15개 업소가 최근 3년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백년가게(30년 이상 10개) 및 백년소공인(15년 이상 5명) 가게로 선정되는 등 특화거리로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백년 기름특화거리의 특징은 아무래도 시장이다 보니 가격이 저렴할뿐더러 가게 앞에 전시된 대형 착유기에서 기름 짜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것.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압착기에서 샛노란 기름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방금 볶은 깨를 막 짜니 신선할 수밖에 없다. 압착기로 기름을 짜내고 난 찌꺼기인 깻묵은 축산 농가에서 사료로 쓰도록 싼값에 판다.

최갑수 - 시인, 여행작가,‘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 시인, 여행작가,‘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기름 골목에서 만드는 기름은 주문이 들어오면 짠다. 참깨와 들깨를 고운 체로 다시 한 번 거르고, 드럼형 로스터에서 볶아 향을 깨운다. 볶음 시간이 너무 길면 쓴내가 배고, 짧으면 풍미가 얕다. 볶아 나온 깨는 식힘 통에서 김을 뺀 뒤 착유기로 들어가고 곧이어 투명 호스를 타고 갈색 선연한 기름이 되어 흘러나온다. 막 짜낸 기름은 점성이 살아 있다. 병에 담기기 전에 한 숟갈 맛을 보자고 하면, 상인은 소금 한 꼬집을 찍어 작은 종지에 내준다. 혀끝에서 먼저 고소함이 번지고, 뒤늦게 볶음 향이 길게 남는다. 이 ‘뒤끝’이 좋은 집이 오래 사랑받는다.

기름 골목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다. 진하게 볶은 ‘구운 향’의 참기름, 볶음을 최소화해 씨앗 고유의 풋내를 살린 생들기름, 산뜻한 조리용 콩기름 등 쓰임새가 다른 기름이 있다. 나물무침과 비빔밥엔 참기름 한 방울이 왕이다. 대신 가을무나 봄동처럼 잎이 연한 채소에는 생들기름이 더 잘 어울린다. 고사리와 고비 같은 산나물엔 볶음 향이 진한 참기름이 잡내를 눌러준다. 막 구운 감자나 구운 두부엔 들기름을 살짝 둘러 소금만 뿌려도 훌륭한 안주가 된다.

좋은 기름을 고르는 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첫째, ‘오늘’ 혹은 ‘어제’ 날짜가 적힌 라벨을 찾으면 된다. 둘째, 향을 맡았을 때 텁텁하거나 눅눅한 냄새가 없어야 한다. 셋째, 한 모금 맛보았을 때 혀에 번지는 고소함 뒤에 쓴맛이 남지 않아야 한다. 색이 진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들기름은 올리브 빛을 띠는 연한 황금색부터 갈색까지 폭이 넓다. 집에 가져가면 갈색 유리병에 옮겨 담아 냉장 보관하고, 1~2달 안에 비우는 게 가장 좋다. 기름도 신선 식품이다. 오래 두면 향이 죽고, 공기와 빛에 닿으면 산패가 빨라진다.

1 기름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기름 골목. 2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모란시장. 3 저렴하면서도 풍성한 모란시장 먹거리. / 사진 최갑수
1 기름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기름 골목. 2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모란시장. 3 저렴하면서도 풍성한 모란시장 먹거리. / 사진 최갑수

가게마다 직화로 고소하게 볶은 참깨와 들깨, 곱게 빻은 들깻가루가 산처럼 쌓여 있다. 겨울엔 들깻가루 사 가는 손이 늘어난다. 들깨칼국수, 버섯전골, 시래깃국이 제철을 맞기 때문이다. 들깻가루는 요리 마지막에 넣어야 텁텁해지지 않고 향이 산다. 미숫가루도 인기 품목. 집에서 얼음 동동 띄워 꿀이나 우유와 타 마시면 한 끼가 된다. 기름과가루, 볶음 깨를 함께 묶은 선물 세트도 많아 명절이면 이 골목이 작은 포장 공장으로 변한다. 얇은 종이에 병을 말아 박스에 차근차근 눕히는 손놀림이 바쁘면서도 정겹다.

저렴하면서도 풍성한 먹거리

시장에는 산지에서 재배된 잡곡이 도·산매되고 약초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 강원도에서 직접 캐 온 것이라며 서툰 손놀림으로 작은 가방에서 정성스레 묶은 마 꾸러미를 꺼내 놓는, 점잖아 보이는 할아버지도 있다. 잡곡을 파는 구역을 지나 좁은 통로를 지나가면 옷과 이불을 파는 곳이 나온다.

뭐니 뭐니 해도 오일장의 가장 큰 즐거움은 먹거리다. 모란시장에 갈 때는 배를 비우고 갈 것! 장터 지천이 먹을거리다. 찬바람 불고 한기가 옷 속을 파고드니, 뜨거운 것이 당긴다. 꽈배기, 호떡, 뻥튀기, 팥죽, 칼국수, 수구레국밥까지 입맛 돋우고 속을 채워줄 먹거리가 천지다. 저렴한 값은 덤이다.

모란시장의 대표적인 먹거리 중 하나는 칼국수다. 시장 내 포차 거리에서는 직접 밀어 만든 면발과 진한 국물이 어우러진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다양한 해산물과 채소를 곁들인 칼국수는 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소 허파 볶음과 돼지껍데기 등 특색 있는 음식도 눈길을 끈다. 소 허파 볶음은 쫄깃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이 조화를 이루며, 돼지껍데기는 쫀득한 식감으로 많은 이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여행수첩

영진네 칼국수. / 사진 최갑수
영진네 칼국수. / 사진 최갑수
지하철 8호선·수인분당선 모란역에 내리면 된다. 5번 출구가 시장과 가깝다. 장날은 혼잡하므로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추천한다. 칼국수는 ‘영진네 칼국수’가 유명하다. 성남아트센터는 실내 공연장 3곳(오페라하우스‧콘서트홀‧앙상블시어터)과 야외 공연장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성남큐브미술관과 갤러리808에서 다양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있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국내 최초로 책을 주제로 꾸민 어린이 미술관이다. 국내외 그림책 6000여 권이 있고, 작가와 함께하는 워크숍, 다양한 기획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최갑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