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는 부와 권력을 한껏 누리면서도 더 갖길 원했다. 그는 손에 닿는 모든 걸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소원은 이루어졌고 그는 잠시 행복했다. 하지만 곧 그 재능이 끔찍한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음식도, 사랑하는 딸도 황금으로 변했다. 그는 마법을 없애 달라고 신에게 다시 빌어야 했다.
아렌델 왕국의 공주 엘사도 마법의 손을 갖고 있다. 그녀가 손으로 만지는 것이 얼음과 눈으로 바뀌었다. 미다스의 황금 손과 달리 그건 시간과 함께 무르익어 활짝 꽃피워야 할 타고난 재능이자 축복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렸던 엘사는 마법을 이용한 눈놀이 중, 동생 안나가 다치는 작은 사고가 발생하자 자기 능력이 재앙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감춰야 해, 느끼면 안 돼, 아무도 몰라야 해’ 하고 되뇌며 엘사는 마음의 문을 닫는다. 감정을 누르고 장갑을 끼고, 마법의 능력을 비밀에 부친다. 행여 그 능력을 누군가 알아차릴까 두려워서 관계를 차단한다. 사랑하는 동생조차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불안, 공포, 분노, 슬픔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마음의 온도를 급격히 낮춘다. 그 결과 자신은 물론 세상까지 얼어붙게 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눈과 얼음으로 빚은 환상적인 동화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가,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하면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는가, 그 길을 속삭인다.
눈과 얼음, 겨울과 추위 자체가 악(惡)일 리 없다. 눈과 겨울은 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재앙이지만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타고, 첫눈을 기념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자 행운이다. 꽁꽁 얼어붙은 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왕국의 얼음 장수에게는 생존 수단이자 생활이다. 그래서 추위는 사납지만 너그럽고, 차갑지만 존중해야 할 힘이라고 그들은 노래한다.
미다스의 황금 손이 탐욕의 결과라면 엘사의 얼음 손은 두려움의 산물이다. 적당한 욕망을 넘어선 탐욕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지만, 두려움과 불안은 그 원인을 이해하고 해결해야 하는 감정이다. 인류는 공포를 느낄 수 있었기에 수많은 위험을 피하고 살아남았다. 문제는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을 외면하거나 그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할 때 생긴다.
엘사가 성문을 꼭 닫아걸고 두려움에 갇혀 있는 동안, 주위는 평온한 듯 보였다. 하지만 엘사의 마음 안에서는 후회와 슬픔, 외로움과 원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엘사는 웃지 못했고 노래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도 없었고 세상으로 걸어 나갈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엘사가 왕위에 오르는 날, 마침내 성문이 열린다.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엘사는 두려웠다. 결국 그녀의 공포심은 억눌러왔던 모든 감정을 폭발시키며 마법을 사람들 앞에 드러낸다. 왕국은 한순간에 겨울에 갇히고, 엘사는 또 한 번 자기 능력을 혐오하며 사람을 피해 산으로 도망친다.
어린 시절의 사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안나는 엘사가 왜 자신을 피하는지 알지 못했다. 언니와 재미있게 다시 놀고 싶었고, 성문을 열고 나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대관식 날, 언니의 비밀을 알게 된 안나는 그간의 사정을 이해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언니를 되찾기 위해, 얼음 왕국으로 변해버린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엘사의 흔적을 따라간다. 그 여정에서 순박한 청년 크리스토프와 순록 스벤 그리고 눈사람 올라프를 만나고 그토록 바라던 사랑과 모험을 시작한다.
산에 오른 엘사는 처음으로 크게 숨을 쉬고 장갑을 벗어 던진다. 더 이상 숨지 않겠다고, 더 이상 감추지 않겠다고 외치는 그녀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을 등지고 섰을 때 세상에 남은 건 혹독한 추위와 몰아치는 눈보라, 차가운 얼음뿐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완전히 혼자였다.
엘사는 눈이 오게 할 수도 있었고 얼음 성을 높이 쌓아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눈이 그치는지, 얼음이 녹는지, 어떻게 해야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꽃이 피게 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엘사의 진정한 두려움이었다. 겁에 질린 엘사는 함께 왕국으로 돌아가자며 힘들게 찾아온 안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더 깊은 절망에 빠진다.
엘사를 얼어붙게 한 것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다. 무서워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마음, 상처를 줄까 봐 겁먹은 마음,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움츠러든 마음이다. 그러나 엘사의 마음에 두려움과 차가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가 엘사가 만든 올라프다. 늘 따뜻한 여름을 꿈꾸는 눈사람, 안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녹아 사라질 걸 알면서도 불을 피우는 올라프는 엘사 안에 있는 선하고 따뜻한 마음이다.
하얗게 얼어붙은 왕국과 죽음의 문턱에 선 안나 그리고 자책 속에서 더 깊은 두려움으로 가라앉던 엘사를 구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겨울왕국’은 사랑이 바로 그 정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익숙한 동화처럼 멋진 왕자님의 입맞춤이나 수동적으로 선택받는 구원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미다스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법을 포기했지만, 엘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봄을 불러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이란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기다리는 대신 달려가는 용기이며 능동적인 선택이다. 사랑받고 있다, 사랑한다고 느끼며 세상을 끌어안는 순간, 엘사를 가두고 있던 불안과 두려움의 얼음 성은 녹아 사라진다. 이제 엘사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랑의 눈길로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본다.
물이 얼음이 되는 게 마법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마법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에 와서 숨 쉬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생 또한 마법이다. 언제까지 두려워하며 도망칠 것인가. 삶을 차갑게 얼리는 마법도, 다시 꽃피게 하는 마법도 우리의 선택이다. 그 선택이 삶의 계절을 결정한다.
겨울왕국(Frozen, 2013)
장르|애니메이션, 판타지, 뮤지컬
국가|미국
러닝타임|약 108분
감독|크리스 벅, 제니퍼 리
출연|크리스틴 벨(안나), 이디나 멘젤(엘사), 조나단 그로프(크리스토프), 조시 게드(올라프), 산티노 폰타나(한스)